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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다면적 자체 기술로 함대 각 영역 혁신 도모

입력 2021. 12. 17   16:28
업데이트 2021. 12. 17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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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군의 ‘효율적 대비’, 네메시스
 
19세기 中 격파 전함 이름 딴 프로그램
1841년 천비해전 네메시스 앞세워 승전
영국 공업 기술력 응집 첨단 증기철선
흘수선 낮아 수심 얕은 해안서도 민첩
저중량 고출력으로 역풍에도 종횡무진
2.7㎞까지 날아가는 로켓 발사대 장착

 

영국 해군은 네메시스 산하 기술개발 촉진 프로그램인 네이비 엑스(NavyX)에 따라 무인 수상함 매드폭스의 해상 시험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필자 제공
영국 해군은 네메시스 산하 기술개발 촉진 프로그램인 네이비 엑스(NavyX)에 따라 무인 수상함 매드폭스의 해상 시험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필자 제공

영국 해군에게 네메시스라는 단어는 이제 효율적인 준비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국 해군은 자체 기술 촉진 프로그램을 네메시스라고 부른다. 네메시스는 영국 해군이 180여 년 전 건조해 탁월한 능력을 선보인 전함 네메시스를 연상케 한다.

영국 해군은 최근 함대 각 영역에 대해 궁극적으로 영향을 미칠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노력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 개발 노력의 전체를 네메시스로 칭하고 있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네메시스는 여러 기술개발 촉진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는 자율 수상함정 시험 계획인 네이비 엑스(NavyX), 디지털, 데이터,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넬슨 프로젝트(Project Nelson), 정보 전쟁을 대비한 마워크스(MarWorks), 기술 개발 혁신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어(DARE)가 포함돼 있다. 영국 해군은 산업계, 학계와 협력해 필요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이들 아이디어 차원의 기술을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통합과 시험을 하면서 개발을 촉진하고자 자체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참고로 네메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복수의 여신이다.

네메시스는 과거 영국 전함의 명칭으로 사용됐다. 네메시스 전함은 지금으로부터 181년 전인 1841년 1월 7일 아편전쟁 당시 주강 하구의 천비(穿鼻) 해전에 투입됐다. 이 해전의 결과는 무인지경처럼 누비고 다닌 네메시스의 활약으로 영국군의 압승이었다. 전투에서 영국군은 전사자 없이 38명 부상으로 그쳤다. 청군은 전사 277명, 부상 467명, 포로 100명으로 집계됐다. 청나라의 정크(범선) 군선은 15척 가운데 11척이 완파됐다. 아침에 시작한 전투는 정오쯤 싱겁게 끝났다. 이 전투로 광둥을 지키던 청나라 군대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해 1월 20일에 사실상 항복 조약에 서명했다. 1844년 윌리엄 달라스 버나드가 쓴 책에서는 “네메시스는 여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역할을 했으며, 다른 군함 칼리오페·히아신스·라른·설퍼·스탈링 가운데 일부가 협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네메시스는 최초의 증기 철선이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양은 산업혁명 성과로 범선에서 벗어나 여러 형태의 군함이 모색되던 시기였다. 새 군함으로 증기선, 철선, 장갑함이 연속적으로 등장했다. 당시 전함 네메시스는 아편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중국(당시 청나라)과의 전쟁에 적합하도록 영국 공업 기술력을 활용해 건조된 최첨단 함정이었다.

당시 천비 해전은 2차 해전이었다. 1년여 전에 벌어진 1차 천비 해전에서 동서양의 현격한 기술 격차에 충격을 받은 흠차대신(欽差大臣) 임칙서는 긴급 자금을 마련해 서양제 화포 300문을 도입해 주강 강안에 구축한 포대에 배치했다. 그렇지만 임칙서의 이러한 나름의 대비책도 네메시스 공격에 차례로 파괴됐다. 임칙서는 미국제 증기선까지 사들였지만, 증기선을 제대로 운용할 인력이 없어 네메시스 군함에 의해 박살났다.

네메시스의 장점은 첫째, 낮은 흘수선(선체가 물에 잠기는 한계선)이다. 만재한 네메시스의 물에 잠기는 부분의 높이는 1.8m로 낮은 편이었다. 여기에 적재하는 무게를 가볍게 하거나, 순풍으로 수면을 미끄러지듯 항해하거나, 엔진을 최대로 올려 속도를 높이면 흘수선을 더욱 낮출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군함은 흘수선이 높아 바다에서만 활동하지만, 네메시스는 수심이 얕은 해안이나 강에서도 신속히 움직였다. 주강 하구에는 많은 작은 섬이 있으며, 이들 섬에서 모래톱이 뻗어 나와 있다. 정크 군선들은 무거운 영국 군함들이 얕은 수역으로 다가올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여기에 진을 쳤다. 그러나 네메시스는 거리낌 없이 다가가 사정거리에 도달하면 대포 탄환을 날렸다. 또 강안의 청나라 포대도 원거리 함포 사격은 명중률이 떨어지기 때문에 안심하고 있었지만, 네메시스는 강안으로 최대한 접근해 정확도를 높였다. 주강 하구는 강물의 퇴적층인 삼각주가 발달한 지형이며, 이들 삼각주 사이에 좁고 얕은 수로가 오밀조밀 놓여 있었다. 중국 군선들은 이들 수로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영국 군함을 상대로 ‘치고 빠지는’ 전술을 펼칠 계획이었지만, 네메시스는 주강을 거슬러 올라가 광저우로 접근하면서 추격전을 벌이며 닥치는 대로 공격했다. 중국인들은 겁에 질렸고 네메시스를 ‘악마의 배’라고 불렀다. 이전까지 주강 삼각주에 서양 전함이 들어간 적이 없었지만, 네메시스는 중국의 강에서 벌일 전투를 대비해 특별히 설계된 것이었다.

둘째, 네메시스는 60마력짜리 증기기관 두 대로 각각 연결된 외륜을 회전시켰다. 네메시스의 중량은 660톤으로 작은 전함이지만, 총 120마력의 출력에 대해 윌리엄 홀 함장은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네메시스는 두 개의 돛을 주된 추력으로 활용하고, 증기엔진을 보조 추력으로 이용했다. 네메시스는 역풍이 불면 증기엔진을 주로 사용했다. 특히 전투가 벌어질 경우 네메시스는 증기엔진으로 전후좌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셋째, 네메시스는 간단한 형태의 로켓 발사대로 우리나라의 신기전과 비슷한 화약 등을 적재한 로켓을 발사했다. 버나드의 저서에서는 2차 천비 해전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네메시스에서 첫 번째 발사된 로켓이 대형 정크선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의 직후에 엄청난 폭발과 함께 정크선은 날아갔다. 거대한 덩치가 순식간에 파괴되자 양측 모두는 전율하는 듯했다.’

네메시스가 사용한 콩그리브 로켓은 앞부분 탄두에 기름과 천을 넣은 화공용과 화약과 파편을 넣은 작렬용이 있었다. 탄두 중량 32파운드짜리가 가장 많이 사용됐으며, 비교적 먼 거리인 2.7㎞까지 날아갔다. 당시의 로켓은 별다른 조준장치가 없어 명중률이 낮았지만, 네메시스의 로켓은 이날 운 좋게도 초탄부터 명중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네메시스는 선체 전체를 철판으로 제작했다. 당시 청나라 포탄은 발사된 힘으로 목표물에 충격을 주는 방식이었다. 청나라 포탄이 네메시스에 떨어져도 별다른 타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목선인 청나라 정크선은 영국 전투함의 포탄에 맞으면 부서져 나갔다. 그야말로 목재와 철의 대결이었다.

소형 함정이지만 네메시스의 등장으로 아편전쟁의 부도덕성과는 별개로 동서양 양강의 군사력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지금의 영국 해군도 기술력 변화의 시기에 효율적인 변신을 꿈꾸고 있다.


필자 김성걸(정치학박사)은 오랜 기간 한겨레신문 기자로 국방부 등을 출입했고,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국방정책을 연구했다. 군사·안보 전략에 주된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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