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서정욱 미술토크

눈에 보이는 형태보다 그 안의 에너지를 보라

입력 2021. 11. 30   16:54
업데이트 2021. 11. 3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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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들라크루아와 오르세

열정·공포·증오 등 감정 속 열기 표현…형태 아닌 에너지 묘사
사자·인간 간의 대결 주제…넘쳐나는 에너지 담은 초안 눈길


‘사자 사냥’
(완성본)
‘사자 사냥’ (완성본)
‘사자 사냥’(초안)
‘사자 사냥’(초안)
우리의 눈은 형태를 먼저 본다. 그래서 눈을 감으면 까만색밖에 없다가, 뜨면 앞에 있는 것이 사람인지 동물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몇 명인지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도 그렇다. 형태를 본다. 우리가 눈으로 본 것과 똑같은 것을 사진에 담아 준다. 화가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형태를 그린다. 현대미술에 와서는 달라졌지만, 눈앞의 형태를 그리는 것은 아주 오래된 방식이다.

그런데 오늘 소개할 화가는 형태에 관심이 없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에너지다. 열화상 카메라가 있다. 엑스레이 카메라도 있다. 열화상 카메라는 형태보다는 온도의 높낮이를 찍는다. 엑스레이 필름은 겉모습보다는 깊은 속을 찍어준다. 우리가 눈으로 직접 못 보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오늘 소개할 화가 작품도 그렇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것은 바로 대상 속에 흐르는 에너지다. 그 에너지는 과학에서 사용하는 물리적 에너지가 아니다. 정신적 에너지다. 어색한 표현이긴 하지만,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 화가는 작품을 그리기 위해 에너지가 흐르는 대상을 사냥꾼처럼 찾아다닌다. 그리고 포착했다 싶으면 그린다. 오늘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의 작품 제목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대표작들 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격노한 메데이아’ ‘토끼를 잡아먹는 사자’가 있다. 세 가지 작품을 형태로 구분하자면 공통점은 없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프랑스 7월 혁명을 그린 것이고, ‘격노한 메데이아’는 신화의 한 장면이며, ‘토끼를 잡아먹는 사자’는 말 그대로 토끼를 잡아먹는 사자를 그리고 있다. 화가는 이 세 가지 장면 속에 많은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이런 제목의 작품이라면 절대 그리지 않을 것이다. ‘쉬고 있는 자유의 여신’ ‘평화로운 메데이아’ ‘숲 속의 토끼’ ‘잠자는 사자’. 에너지가 흐르지 않는 지루한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대충 짐작이 가는가? 그는 세상에 흐르는 열정, 증오, 공포, 미움, 살기, 불쾌함 같은 모든 생명체의 감정 속에 흐르는 에너지들을 그리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이 본질인지도 모른다. 눈앞에 한 쌍의 남녀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자체가 뭐가 중요할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사랑하는 사이인지, 미워하는 사이인지, 싸우고 있는 건지, 희생하고 있는 건지,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 아닌가?

그런 모든 열기를 그리려고 했던 화가의 이름은 들라크루아다. 사람들은 그를 낭만주의 화가라고 불렀다. 그는 열기가 흐르는 또 하나의 주제를 찾았다. ‘사자 사냥’이다. 들라크루아를 모르고 제목만 들은 사람이라면 관심 없을 것이다.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사냥 정도로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자 사냥은 다르다. 일단 사자와 사람 간 직접 대결이다. 멀리서 사용하는 총을 쓴다면 열기는 떨어지겠죠? 그가 생각하는 사자 사냥은 인간과 사자의 일대일 구도다.

물론 사람은 말을 탈 수도 있다. 하지만 말 역시 피가 흐르는 생명체다. 열정 참여자다. 생각해 보죠. 사자 입장에서 죽임을 당하느냐 죽이느냐에 관한 절박한 순간이다. 온몸에 털이 서고 모든 감각은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하나하나에서는 열기가 나오겠죠? 사람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죽지 않더라도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초집중 상태다. 들라크루아에게 이런 사자 사냥이라는 주제는 흥미로웠다. 그래서 여러 점을 그리죠. 그가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초안을 볼까?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사자 사냥’ 초안이다. 첫눈에 실망감이 몰려오지 않는가? 그림을 보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너무 실망하지 마시기 바란다. 처음에 말씀드렸듯 우리의 눈은 형태를 먼저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에너지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들라크루아는 초안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에너지 위주로 그려놓았다. 하지만 오늘은 설명을 들었으니 한번 찾아보자.

먼저 사자가 있을 것이다. 그림 가운데서 약간 왼편으로 사자가 보인다. 사자의 열기는 입으로 표출되었다. 입을 벌릴 수 있을 만큼 벌리고 몸을 잔뜩 움츠렸다. 입을 벌려 포효한다는 것은 형태에 소리를 더해 제압하겠다는 뜻이고, 몸을 움츠렸다는 것은 다시 펴며 공격하겠다는 뜻이다. 자세히 보면 사자 왼쪽에 이미 제압당한 사람과 말이 보인다. 말은 쓰러져 고개가 꺾여 버둥거리고, 사람은 말과 함께 넘어졌다. 사자 왼발이 사람의 등을 누르고 있다.

사자 오른쪽에서는 두 번째 사람과 말이 2차 공격을 하려고 한다. 하얀 말은 앞다리를 크게 들어 올렸고, 그 위에 탄 사람은 칼로 사자를 찌르려고 한다. 그것을 확인한 사자는 턱을 들어 노려본다. 그림 오른편에는 검은 말과 위에 탄 사람이 보인다. 말 머리를 보니 도망가려고 하는군. 유심히 보면 검은 말 엉덩이에 암사자 한 마리가 들러붙어 있다. 말은 고개를 하늘로 쳐들며 비명을 지르고, 말에 탄 사람은 달라붙은 암사자를 떼어 내려고 애를 쓴다. 그림 아래에는 부상당해 쓰러진 사람과 다시 공격하려는 사람도 그려져 있다.

보통 화가라면 이러지는 않는다. 형태 위주로 그린다. 세밀한 부분은 나중에 넣어도 되니까. 그래서 초안이 완성본보다도 알아보기가 쉽다. 그러니 못 찾으셨다고 해도 실망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런데 그림에 꽉 차 있는 에너지는 느끼지 않았는가? 우리 눈은 항상 형태를 찾고 있다. 그래서 확인되지 않으면 답답하거나 불안하다. 여러분의 그 마음을 해결해 줄 완성작을 보여 드린다. 이 작품은 스웨덴 국립미술관에 있다. 어떤가? 에너지에 더해 형태도 어느 정도 그려놓았죠? 여러분은 이제 들라크루아가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이해하셨을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두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호랑이 사냥’이다. 오늘 설명을 듣지 않은 분이라면 “뭐 이렇게 비슷한 것을 자꾸 그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여러분은 안다. 이런 좋은 소재는 또 없다. 포착했으면 그려야죠. 뒷다리를 넓게 벌린 검은 말이 보인다. 검은 말을 탄 사람은 호랑이를 공격하려고 창을 들고 있고, 말은 그 순간 앞다리를 높이 올렸다. 이때 호랑이가 허리를 펴며 말의 오른쪽 앞다리를 꽉 깨물었다. 말은 온몸을 비튼다. 지금이 기회다. 찔러야죠. 바로 뒤에는 칼을 든 한 사람이 화급히 뛰어오고, 그 뒤에는 흰 말을 탄 또 다른 사냥꾼이 창을 들고 거의 호랑이를 다 잡은 이 사람을 돕기 위해 서두른다. 그림 오른쪽 위에 산과 산 사이에 살짝 보이는 파란 하늘은 이날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듯하다.

눈만 뜨면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형태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중요하지는 않다. 때로는 그 속의 어떤 열기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들라크루아는 그런 말을 하며 우리가 좀 더 지혜로워지기를 바라는 것 아닐까? 이미지=필자 제공
<서정욱 아트앤콘텐츠 대표>

서정욱 미술토크 유튜브 채널.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찍으면 관련 내용을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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