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교수실에서

[김현집 교수실에서] 인성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질 수 있는가

입력 2021. 11. 22   16:16
업데이트 2021. 11. 2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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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중위(진)
김현집 공군사관학교 교수부 역사철학과·중위(진)

고대 아테네의 장군이자 정치가였던 테미스토클레스, 아리스테이데스, 페리클레스도 사랑하는 아들 생각을 하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최고의 스승을 모셔다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다 가르쳤다지만 정작 중요한 건 가르치지 못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아들은 말 등 위에 두 발로 서서 창을 던질 줄도 알았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도 완벽하게 외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뿐이다. 아버지의 명성과 달리 그의 아들들은 이름 외에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소크라테스는 ‘선생’으로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좋은 인성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물려줄 수 있는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길 잃은 소처럼 뿔뿔이 흩어져 덕을 찾아야 하는가?” 교육의 한계를 고민하는 것이다.

강의를 준비하면서 나 역시 교육을 고민한다. 시몬 베유(1909∼1943)를 읽으며 문제를 짚는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시몬 베유는 프랑스 최고 명문인 고등사범학교에서 공부했지만, 우리가 아는 ‘공부’ 대부분은 소용이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공부를 잘못 이해하는 까닭이다. 베유는 진정한 공부는 ‘관심’을 기울일 줄 아는 데서 시작한다고 봤다.

여기서 ‘관심’은 프랑스어 ‘attention’을 말한다. 이 단어 어원인 라틴어 ‘attendere’는 ad(~향해)와 tendere(쭉 뻗다)의 합성어다. 관심이란 대상을 향해 뻗어 나가는 것이다. 베유 말로는 관심을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된’ 사람이다.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이웃을 돕는 게 아니다. 관심을 기울이는 것 자체가 사랑이다.

불행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통째로 의심 없이 편견 없이 받아들여 줄 사람이 필요하다. 돈도 아니고 도움도 아니고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남에게 순수히 관심을 주기는 어렵다. 관심을 기르는 방법 중 하나가 ‘공부’다.

베유는 이마를 찡그리고 생각을 모으는 것은 관심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건 집중이다. 근육을 수축하는 것이다. 집중은 몸으로 힘쓰고 고통스러운 일을 견디는 데 좋다. 시험공부를 하는 데 좋을 것이다.

관심과는 무관하다. 관심은 기쁨에 차 있고, 달콤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면 몸이 피곤하지도 않다. 관심은 애쓰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끌리는 것이다. 공부는 억지 없이 기쁘게 해야 한다. 어려운 훈련이다.

공부해서 관심의 힘을 키우고, 남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곧 좋은 인성을 가진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 이상의 ‘운’은 없다고 본다. 스승은 학교의 스승뿐만 아니고 가까운 친구일 수도 있고, 좋은 작품이거나 사상일 수도 있다. 난 그런 의미에서 운이 좋은 편이다. 이제껏 좋은 스승을 만났고 또한 아직도 찾고 있으니 말이다.

학생들에게 ‘공부를 기쁜 마음으로 하세요’라고 주문할 수는 없다. 대신 시몬 베유 얘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베유도 다시 읽어본다. 내가 좋아했던 스승들을 떠올려보면 ‘강의가 좋았다’기보다 대신 ‘이런 삶도 가능하다’라고 보여주신 분들이었다. 현장에서 보이는 게 최고의 교육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다, ‘눈이 아름다운 것을 보면, 손은 그것을 따라 그리고 싶어한다’고.

인성은 관심의 힘을 키우며 기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이유로 공부한다. 하지만 가까이에 좋은 사람을 두는 게 최선이다. 베유의 책을 백 번 읽는 것보다 10분의 만남이 더 마음을 흔들 것이다. 베유는 곁에 없지만 ‘관심’에 대한 공부로 아쉬움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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