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양승훈 조명탄] AI와 사람의 자리

입력 2021. 11. 19   16:37
업데이트 2021. 11. 19   16:52
0 댓글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 교수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 교수


인공지능(AI)과 로봇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람들에게 가장 주목 받는 주제는 AI가 사람의 일을 대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달리 말해 ‘사라지는 일자리’라는 주제다. 2016년 구글의 딥마인드가 만든 바둑 AI 프로그램 알파고가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 이세돌을 4대1로 꺾었다. AI를 탑재한 로봇이 바둑 기보를 보며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자 우려와 기대 섞인 반응이 나왔다. 기계가 사람의 많은 일을 담당할 수 있는 ‘제2의 기계시대’가 열릴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2013년에는 인간이 수행하는 노동 중 47%가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AI는 데이터를 먹고 산다.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AI의 대표주자인 딥러닝의 경우 빅데이터를 넣고, 분류할 수 있는 라벨을 ‘사람’이 붙여주면 거기에 맞춰서 계속 상관관계를 파악해 학습한다. SNS에 사진이 무지막지하게 많이 올라오면 개와 고양이, 남자와 여자, 친구들 각각을 구분해 주는 것이 딥러닝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 자율주행차는 도로 표지와 지형지물, 신호등, 다양한 종류의 차를 구분할 수 있게 학습시켜 사람 대신 운전하는 AI 알고리즘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진과 동영상 데이터가 필요하다. 데이터는 비단 막대한 양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질도 중요하다. 딥러닝을 실제로 활용하는 데이터 과학자들은 종종 GIGO(Garbage In, Garbage Out)라는 말을 종종 쓰는데, 저질 데이터를 아무리 많이 입력해 봤자 저질 의사결정만 나온다는 말이다.

어떤 데이터가 저질인지 고품질인지를 AI는 알아채지 못한다. 누군가 왜곡된 데이터를 잔뜩 입력해 편향을 만들기가 쉽다. 또 데이터를 많이 학습시킨 알고리즘을 로봇에 탑재해 사람을 대체하거나 도우려고 해도, 가르쳐줘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예컨대 다섯 살 어린이를 어린이집에서 귀가시킬 때 사람에게 설명해야 할 것은 어린이집의 위치와 집의 위치뿐이다. 나머지는 ‘융통성’을 발휘해서 임기응변으로 해낼 수 있다. 하지만 로봇에게는 어린이와 친한 다른 어린이를 떼어 놓고 와야 할지 함께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할지 알려줘야 한다. 손을 잡아야 할지, 안아야 할지 또는 어린이에게 물어봐야 할지도 모두 규칙을 정해줘야만 한다. 어린이가 가면을 쓰거나 어린이집 방의 가구 뒤에 숨었다면, 가면의 종류와 어린이집 가구의 배치를 학습시키지 않는 이상 로봇은 어린이를 찾지도 못할 것이다. 가르쳐줘야 하는 것이 끝이 없고, 한정된 컴퓨터의 용량이 AI의 발목을 잡는다. 이걸 사고범위 문제라고 한다. ‘심층 학습(deep learning)’은 하는데 ‘심층 사고(deep thinking)’는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자리’는 궁극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자율주행차가 비 오는 날 고속도로에서 헤매고 있으면 운전자는 곧바로 핸들을 잡아야 한다. 야전부대에서 전방 유인 초소를 줄이고 AI에 기반을 둔 과학화경계감시장비를 운영하더라도, 귀순과 침입 상황이 발생하면 전우들이 대응해야 한다. 고장 난 AI와 로봇을 AI 스스로가 고칠 수도 없다. AI가 터미네이터처럼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마시라. 인간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어설프게 사람의 단순한 동작과 사고를 베끼고 있는 동안, 우리가 더 많은 시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사람의 자리’의 가치를 어떻게 더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가에 있지 않나 싶다. 전우들의 기여를 치하하고 다양한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게 감지 센서와 AI에 대한 투자만큼 중요하단 말이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