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국방일보-국방대 안보연구소 공동기획] “일방선택 ‘상수’보다 유연한 ‘변수’…전략가치 높여야”

입력 2021. 11. 11   17:06
업데이트 2021. 11. 1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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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신냉전과 한국 외교전략


중, 금융위기 이후 독자적 발전 모색
미, 국가안보 위협 이유 중국 제재
복잡한 상호작용…인접국도 맞물려

조 바이든(왼쪽 셋째)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왼쪽부터)와 함께 ‘쿼드(Quad)’ 정상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의 대중국 견제 협의체인 쿼드 첫 대면 정상회의가 이날 백악관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왼쪽 셋째)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2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왼쪽부터)와 함께 ‘쿼드(Quad)’ 정상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의 대중국 견제 협의체인 쿼드 첫 대면 정상회의가 이날 백악관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적 공생
미·중 관계는 최근 ‘신냉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냉각됐다. 미·중 전략경쟁이 통상적인 강대국들 간의 갈등과 구별되는 점은 긴밀한 상호의존성에서 배태됐다는 점이다. 냉전기 미·소 관계는 이데올로기적인 극한 대립에 뿌리를 두고 있었고, 두 진영의 체제경쟁 속에서 상호작용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미·중 갈등은 소위 ‘키신저 질서’하에서 지난 40여 년간 누적된 복잡한 상호작용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특히 중국이 미국 주도 세계화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미·중 양국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인접국들까지 복잡한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 맞물리게 됐다.

1997~1998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지역 분업구조의 가장 낮은 단계로 편입된 중국은 미국의 기술과 자본, 그리고 소비시장에 의존해서 급속한 경제성장에 성공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에는 미국의 금융 호황에 편승해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거듭났다. 미국 중심의 국제 정치경제 질서로 완전히 편입된 중국은 미국 주도 세계화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파트너이자 경쟁자로 부상했다. 특히 중국은 수출달러를 다시 미국의 금융시장, 특히 미국 국채에 투자함으로써 미국이 막대한 적자 누적에도 불구하고 통화·금융 권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상호의존성에 내재된 적대와 모순
이런 공생관계는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한 관계이기도 했다. 특히 한 국가가 보유한 자산가치가 기축통화 발행국의 통화가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매우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를 내포하고 있었다. 미국은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국제수지 적자를 누적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려왔는데 중국 인민은행 총재 저우샤오촨(周小川)은 미국이 갖는 이러한 특권으로 인해서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2007~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 패권의 취약성과 미·중 상호의존성의 한계가 드러나는 계기였다. 위기가 발생하자 미국은 단기적인 차원에서는 위기를 수습하고, 통화·금융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했다. 나아가 중·장기적인 차원에서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패권을 쇄신할 수 있는 대안을 확립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 세계전략의 중심축을 동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한 오바마 행정부의 재균형 전략(Rebalance toward the Asia-Pacific)은 바로 이런 전략적 고려의 산물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변하지 않았고 코로나19로 인해 양국의 갈등은 더 악화됐다.

중국도 2007~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압력이 강화되자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비하고 독자적인 발전 경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중국제조2025 같은 발전전략을 통해 첨단기술에서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일대일로 같은 기획을 통해 영향권을 구축·확대하려는 강력한 시도를 전개했다. 미국이 이에 강하게 대응하면서 미·중 관계는 신냉전으로 지칭될 정도로 악화되기에 이르렀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미·중 관계
바이든은 취임 후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중국을 패권 도전국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힘을 통해 이를 억제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은 취임 직후 연방정부의 미국산 제품 구입을 의무화하고, 국내생산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 자본에 대한 감시, 그리고 중국의 통신장비·반도체 기업에 대한 제재도 더 확대됐다. 제재의 근거는 국가안보 위협이었다.

또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군사적 도전을 강력히 응징하겠다고 강조했다. 2021년 ‘국방수권법’에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력 증강을 규정한 ‘태평양 억지구상’이 신설됐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트럼프식 일방주의의 폐기와 가치에 기반한 동맹관계 복원이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가치동맹이 기술·생산동맹으로 진화하는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중국을 배제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해 동맹관계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더 직접적으로 통제하고자 하는 조치도 시행됐다. 2021년에만 세 차례 개최된 ‘반도체 공급망 복원에 관한 CEO회의’가 대표적 사례다. 여기에서 핵심 국가들은 일본, 타이완, 한국 같은 동아시아의 동맹국이었다.

가치동맹이 기술·생산동맹으로 확대되면서 신냉전적 대립구도는 더 강화됐다. 미국은 G7을 축으로 대서양 동맹을 재건하고, 이를 반중동맹의 틀과 결합하려 했다. G7 국가들과 공동으로 일대일로를 대체할 새로운 인프라 투자 지원 프로젝트로 기후·환경, 노동,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향하는 B3W(Build Back Better World)를 제안했고, 영국·호주와 3자 군사동맹 오커스(AUKUS)도 체결했다.

중국 또한 미·중 상호의존성의 틀에서 이탈하려는 시도를 가속화하면서 기술적 독립성의 확보를 더 강조하기 시작했다. 2020년 19기 5중 전회와 14차 5개년 계획에서 중국이 가장 강조한 것은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산업과 과학기술에 대한 막대한 투자와 기술혁신이었다. 2021년 중국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의 핵심 화두 또한 ‘기술의 자립·자강’이었다. 최근 중국은 반중동맹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훈련과 작전을 대폭 확대하며 기술·인프라·군사 부문에서 러시아와의 협력도 강화했다.

세계질서의 진로와 한국 외교전략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패권경쟁의 전개는 미·중 상호의존성의 종언, 즉 탈동조화(decoupling)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미·중 패권경쟁은 ‘봉쇄’ 혹은 ‘화해·교류’라는 단순한 해법이 적용될 수 없는 복잡한 쟁점을 내포하고 있다. 전자를 선택한다면 그 비용이 지나치게 커지고, 후자 또한 조건 없이 지속되기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과 같은 교착과 갈등의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국은 미국의 핵심 군사·안보 동맹국이다. 동시에 중국의 팽창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접국이기도 하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미·중 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이 불가능한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고 있다. 미·중 갈등 격화로 인해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을 경우 두 강대국 사이에서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가치·기술·생산 동맹에 기초해 반중 전선을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의 시도는 동맹국에 과도한 부담을 줄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상황은 패권국 미국의 강력한 수정주의 전략으로 인해 세계질서의 불안정성이 심화되는 패권 불안정의 상황이 도래할 위험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미·중 갈등의 주요 전장이며, 두 국가와 모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에는 중대한 도전이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이 이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두 강대국의 갈등을 최대한 순치시키고, 신냉전적 줄서기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전략을 기본적인 생존 차원에서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한국 외교의 원칙을 큰 틀에서 아래의 네 가지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신냉전과 패권경쟁의 시대, 지정학적 혼란의 시대에 자조(self-help, 自助)를 도모할 수 있는 국력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외교의 유연성과 실용성을 제고해야 한다. 특히 미·중 가운데 일방과의 관계에 본질적 가치를 부여하거나, 일방만을 선택하는 ‘상수’가 되기보다는 스스로 유연한 ‘변수’로 자리매김해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이를 위해서는 한국 외교를 확고한 원칙을 통해서 정당화하고, 이를 통해 미·중 양국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넷째,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중 사이에 끼인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해, 이들과 함께 미·중 갈등을 완화하거나 중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미·중 신냉전의 상황은 한국의 미래에 중대한 도전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외교전략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국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의제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국제적 위상을 높여 나간다면, 현재의 위기는 한국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 민 석 교수 제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공 민 석 교수 제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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