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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대 국방사] 화해·대비 병행…포괄·자주·미래지향적 정책 추진

입력 2021. 11. 05   17:16
업데이트 2021. 11. 0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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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대 국방사 <1> 1990년대 전환기 안보환경과 국방정책
 
안보 대상 미래 불특정 위협까지 확대
국가 총체적 역량 동원 포괄적 정책 추진
‘한국방위의 한국화’로 자주국방 기반
1991년 국방정책 전략발전위 설치
미래 환경 대비 국방 근간 바로 세워

 

1990년 9월 4일 남북 총리를 단장으로 서울에서 개최된 남북고위급회담 모습. 1990년대에는 한국 주도 하의 통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급격히 확산되는 가운데, 북한의 막강한 군사력과 군사도발의 위협이 상존하는 등 전략환경의 이중적 흐름이 있었다.  사진=제6공화국실록
1990년 9월 4일 남북 총리를 단장으로 서울에서 개최된 남북고위급회담 모습. 1990년대에는 한국 주도 하의 통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급격히 확산되는 가운데, 북한의 막강한 군사력과 군사도발의 위협이 상존하는 등 전략환경의 이중적 흐름이 있었다. 사진=제6공화국실록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1990년대 대한민국 국방 역사를 담은 국방부 공간사(公刊史) 『국방사 제6집』(1991~1997)을 펴냈다. 군사편찬연구소는 신뢰할 수 있는 국방부사 작성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국방사 6집은 1990년대 동·서 냉전 구조 와해와 미·소 양극체제 소멸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전환기적 안보환경에 대처해온 군의 노력을 담았다. 과거를 통해 미래 국군의 좌표와 방향을 설정하는데 귀중한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할 국방사 6집의 주요 내용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안보환경과 국방과제


1990년대 우리 국방이 당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전략환경이 서로 상반되는 이중적 흐름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동서냉전 구조의 와해와 탈냉전 추세, 북방정책의 성과에 의한 중국과 소련의 대북 군사지원 제한,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 및 외교적 고립, 그리고 한국의 국력 및 국제적 위상 강화와 정치적 민주화 등의 상황은 국민의 안보의식을 이완시켰다. 또 한국 주도의 통일 가능성에 대한 기대까지 급격히 확산시킴으로써 국방비를 축소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반면 주한미군의 철수, 일본의 군사대국화, 걸프전과 같은 제한 국지전의 돌발 가능성 증대, 북한의 막강한 군사력과 군사도발 위협, 남북대화에 대한 북한의 이중적인 자세 등 실질적인 안보위협 요인의 상존은 지속적인 군사적 경계태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처럼 ‘화해(和解)’와 ‘대비(對備)’의 이중적 상황 논리가 상충하는 여건하에서 국가 보위의 최후 보루인 군의 정책적 선택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즉 우리 군으로서는 ①현존 위협상황에 대한 확고부동한 국방태세를 강화함과 동시에 평화 지향적인 미래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비해야 했으며, ②주한미군과의 군사협력관계를 현실적으로 강화해 나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주한미군의 감축 내지 철수가 불가피할 경우에 대한 정책적 대비를 추진해야 했다. 또한 ③대북 전력 격차의 해소를 위한 전력증강을 추진해 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통일시대까지도 고려한 군비통제 방안도 발전시켜야 했고, ④기존 우방(미·일)과의 군사협력관계를 강화함과 더불어 새로운 이웃(중·러)과도 군사관계를 개선해 나가야 했다. 이와 함께 ⑤적정 국방비 확보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가운데 국방의 탈성역화 추세에 따른 국방비 삭감논의에도 대비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다.


전환기 국방정책

1990년대 노태우·김영삼 정부는 국방정책의 추진과정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전환기 안보환경의 이중성으로 인한 유동성, 불안전성 및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화해 지향 국방정책과 대비 지향 국방정책을 병행하되, 대비에 방점을 두고 포괄적·자주적·미래지향적인 국방정책을 추진했다.

1990년대 이전에도 국방정책에 포괄적 개념이 적용됐으나, 안보대상은 북한위협에 국한됐다. 따라서 이전의 국방정책은 한반도의 군사력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북한의 군비증강 및 도발위협과 미국의 안보지원 등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 기간 중에는 안보대상의 범주가 북한 위협과 미래의 불특정 위협으로 확대됐다. 21세기 한국의 국방정책은 북한 위협은 물론 탈냉전과 전쟁양상 변화로 대두된 새로운 안보위협, 그리고 동북아 국제정세의 불확실성 및 지역 내 불특정 안보위협에 대한 대비를 요구했다.

군은 이러한 포괄적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군사적 해결만을 강조하기보다는 국가의 총체적 역량을 동원한 포괄적인 국방정책을 추진했다. 즉 정예화된 군사력 건설, 강력한 한미 동맹관계 유지 등 대비분야 국방정책을 추진하면서도 남북한 신뢰구축, 주변국과의 교류협력 강화, 지역다자안보협의체 구축, 국제평화활동 참여 등 화해분야의 국방정책을 확대 추진해 안보의 불확실성에 대비했다.

특히 남북관계에서 매우 탄력적인 포괄성을 보였다. 북한을 경쟁과 대결의 상대가 아니라 대화의 상대, 민족의 일부로 포용함으로써 남북대화를 통한 군비통제정책을 추진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비현실적인 문제로 간주됐던 북한과의 군비통제 추진으로 남북한은 1990년대 초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 ‘불가침 부속합의서’ 등 군사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했다.

한미관계에서는 한미 동맹과 연합방위체제에 의존하기보다는 ‘한국방위의 한국화’ 구상에 따라 유엔군사령부 군정위 수석대표에 한국군 장성 임명,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책임의 일부 환수, 한미 야전사 해체,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방위비 분담 증대 등 한반도 방위의 주도적 역할을 확대해 나갔다.

우리 군은 1960년대부터 미국의 주한미군 정책 변화에 따라 우리의 국가안보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자주성 개념을 국방정책에 반영했지만, 한미 연합방위체제의 특성상 대미 의존성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의 자주국방정책은 이전 시기와 달랐다. 1990년 다시 추진된 주한미군 감축 상황에서 국방부는 한미 행정협정 개선, 작전통제권 단계적 인수 등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명실상부한 한국적 자주국방정책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로 인해 방위비 분담, 전시주둔군협정 체결에 의한 군수지원 부담 등이 증대됐지만, 한미 군사협력관계가 과거 후견자와 피후견자의 관계에서 동반자 및 협력자의 관계로 변모했다.

특히 국방부는 자율성 확보를 위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전력증강 및 국방개혁에 집중했다. 818계획(장기 국방태세 발전방향)을 통해 한국적 특성에 적합하고 미래전에 부응해 통합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군사전략, 군 구조와 지휘체계, 무기체계 등을 개편하고, 전시작전통제권 인수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준비했다. 이를 근거로 대북 억제전력과 미래 첨단전력도 확보해 나갔다. 아울러 조직과 운영체계의 비효율적 요소를 과감하게 배제하는 국방개혁을 추진해 실질적인 전투력 향상을 도모했다. 과거 한국군은 국방예산을 스스로 편성할 수조차 없었지만, 90년대에는 동맹 의존도를 줄이고 자주 국방력을 키웠다. 나아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주변국은 물론 지역 외 국가들과의 국제평화활동 및 지역다자안보협력에도 동참해 자주적 역량을 확대·발전시켜 나갔다.

전환기적 안보 상황 속에서 한국군은 북한의 현실적 군사위협과 미래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국방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준비하기 시작했다. 국방부는 1991년 6월 5일 국방정책 전략발전위원회를 설치해 안보 및 국방정책기조 재정립, 군사전략개념 발전, 군사력 건설 조정 및 군 하부구조 정비, 한미 안보협력체제 조정 발전, 군비통제정책 발전, 방산정책 발전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연구했다. 그 연구결과는 기간 중 보완을 거듭하면서 군사전략, 군 구조, 지휘체계, 군사력, 무기체계, 인력구조, 운영체계 등 전 분야에 걸쳐 미래지향적인 국방정책으로 발전됐다.

군이 추진한 미래지향적인 국방정책의 핵심은 ‘국방개혁’이었다. 자주국방과 전작권 환수를 뒷받침하는 토대가 바로 국방개혁이기 때문이었다. 노태우 정부의 818계획과 김영삼 정부의 문민개혁은 군의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하고 미래 환경에 대비할 수 있도록 국방정책의 근간을 바로 세웠다.


이 미 숙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이 미 숙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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