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김영지 조명탄] ‘꼴’대로 살기

입력 2021. 11. 03   16:46
업데이트 2021. 11. 0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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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불안이 마음속에 요동치는 날
각자 개성대로 착실하게 살고 있는
이들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김영지 프리랜서 디자이너
김영지 프리랜서 디자이너


유독 이상한 하루였다. 오전에는 바리스타 일을 하는 지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두세 달 정도 한 카페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제주도에서 한달살이를 하기도 하고, 하동으로 떠나 차에 관해 공부하기도 했다. ‘현대판 히피’는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닐까? 그날도 두 히피 강씨와 이씨는 지난 몇 주간 여유롭게 겪은 나날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들에게 나의 하루는 너무나 바쁘고 쫓기는 삶이었다.

오후에는 회사에 다니는 지인을 만났다.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퇴근 후에는 틈틈이 자기 작업을 해서 작은 브랜드를 론칭했다. 누구보다 바쁘게 살며 안정과 커리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했고 실제로 잡아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퇴근 후에 공부하며 준비하는 내용에 대해 들려주고, 또 회사에서 배워가는 내용에 대해 들려줬다. 그와 대화를 나누니 내가 너무 게으르게 살고 있나 싶었다.

저녁에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한 친구는 의대를 졸업하고 시골 의사가 됐다.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왔지만 하루를 너무 지루해 했다. 그는 일상을 ‘따분하다’고 표현했고 그에게 유일한 낙은 주식 차트를 들여다 보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하는 일들을 듣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게 정말 수익에 유리한지 생각해 봐라’라고 조언했다. 또 한 친구는 고시 준비를 하다가 포기하고 늦깎이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친구 모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갈 즈음에야 사회생활에 첫걸음마를 뗐지만 그런대로 만족하고 있었다.

밤에는 스타트업을 다니는 선배와 통화를 했다. 그는 대학교 졸업 즈음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에 들어가 작은 회사를 일궈냈다. 그 전화는 이러했다. 그의 회사가 최근 17억 원을 투자받았고 사람을 고용하고 싶은데 사람이 없다는 것. 그래서 얼마나 힘든지가 내용의 핵심이었다.

하루 만에 너무 다른 삶을 사는 네 부류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누구는 균형과 여유 속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누군가는 부지런히 자신의 꿈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비록 지루할지언정 누가 봐도 안정적인 기반을 쌓아가고 있었고, 조금 늦더라도 자신을 위한 결단을 내리는 이도 있었다. 누군가는 남들이 보기에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나 일에 치여 괴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사이에 내가 있다. 나는 그 네 부류의 사람들 어디에도 끼지 않았다. 오전에 만난 히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을 부러워하다가 오후·저녁이 돼서 만난 이들의 부지런함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또 밤에는 일에 치일지언정 상상도 못할 금액을 만져본 선배가 부러워지기도 했다. 내 삶에서 같은 학교, 같은 직장을 거치며 만난 이들인데 몇 년 사이에 그들의 삶의 갭도 커지고 나와 그들의 삶의 갭도 커져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삶도 다른 어떤 삶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자 개성대로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과 조금 다른 궤도를 그리고 있는 나의 일상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또 속도와 정도를 생각하며 스스로와 비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이상한 하루,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그런 비교가 어떤 의미가 있나 싶다. 아마 그들에게도 나는 별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일 뿐일 것이다. 가끔 불안이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날, 나는 이 이상한 날을 떠올린다. 우리 모두 각자 생긴 꼴대로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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