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곽재식 조명탄] 명태 과학의 신비

입력 2021. 10. 25   15:29
업데이트 2021. 10. 2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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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작가·공학박사
곽재식 작가·공학박사


세계에서 수산물을 가장 많이 먹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답은 한국인이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68㎏이 넘는다. 어른 한 명 몸무게만큼을 먹어치우는 셈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은 무엇일까? 오징어처럼 어류로 분류되지 않는 수산물을 제외하고 물고기 중에서만 살펴보면 가장 많이 소비하는 어종은 멸치다. 멸치는 생선을 잘 먹지 않는 사람도 밑반찬 삼아 먹을 때가 있고, 액젓이나 국물을 만드는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 멸치 다음으로 많이 소비하는 생선은 명태다. 멸치로 만든 음식을 보고 생선 요리라고 하는 것은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하니까, 한국인에게 생선 중 가장 흔하고 친숙한 식재료는 명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만도 하다. 명태는 잡은 그대로의 상태를 생태, 얼린 것을 동태, 말린 것을 북어, 특별한 방법으로 말린 것을 황태, 반쯤 말린 것을 코다리, 새끼를 노가리라고 하는 식으로 별명이 많은 생선이다. 이 밖에도 명태 업자들 사이에 쓰이는 말 중에는 선태, 간태, 짝태, 백태, 먹태, 깡태, 파태, 애태, 대태, 일태, 이태, 서태, 오태, 망태, 조태 등의 다른 이름이 얼마든지 있다.

그만큼 여러 형태로 소비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생태탕처럼 고기를 먹기도 하지만, 창난젓이나 명란젓처럼 내장과 알이 젓갈로 소비되기도 하고, 맛살 같은 각종 가공식품의 원료로도 쓰인다. 옛날 도시락 반찬으로 많이 사용되던 분홍색 소시지는 돼지고기보다는 생선살을 주재료로 만들었는데, 가격이 내려갈 때면 여기에도 명태 살이 사용됐다.

하지만 우리가 명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1981년만 하더라도 한 해에 16만톤씩이나 되는 많은 양의 명태를 잡았지만, 2007년 이후 국내에서 잡히는 명태의 양을 집계해보면 채 1톤이 되지 않는 해가 대다수다. 16만분의 1 이하로 줄었다는 이야기다.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힌 자료는 드물다.

한때는 지구온난화로 바다의 온도가 따뜻해지면서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명태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는 설이 주목받기도 했고, 요즘에는 과거에 어린 명태를 너무 많이 잡아서 씨가 마른 것이라는 설이 주목받기도 하지만 어느 것도 명쾌하지는 않은 것 같다. 요즘은 명태를 되살리기 위해서, 정부에서 매년 수십만 마리의 새끼 명태를 인공적으로 길러서 동해에 내보내는 사업을 한다. 하지만 그 새끼 명태들이 과연 어디로 가는지 이런 작업의 성과도 확실치 않아 보인다.

명태 연구가 어려운 이유는 깊은 바다에서 사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명태는 어른으로 자라나 일상생활을 할 때는 수심 120m 이하의 깊은 바다에서 산다. 그런 상태로 10년 이상 지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 맨몸으로 잠수할 수 있는 깊이는 10m 정도에 불과하고 숙련된 해녀라도 20m 정도 잠수하면 깊이 들어간 것으로 본다. 그러니 바다 깊은 곳에서 사는 명태들이 어떻게 사는지 조사하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해군이 보유한 잠수함 장보고함의 작전 수심이 250m 정도라고 하니, 어쩌면 지금 장보고함이 움직이는 깊이에서 한국의 명태들이 같이 따라다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식탁에 명태가 올라오면, 아무도 보지 못한 바다 깊은 곳의 신비를 보고 온 동물이 와 있다고 생각해도 좋겠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궁금해서 파헤쳐 볼 만한 가치 있는 질문은 가까운 곳에도 얼마든지 있다. 또한 쉽게 지나갈 만한 하잘것없어 보이는 것도 조금만 달리 보면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명태가 알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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