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벅 재단은 소설 ‘대지’의 작가 펄 벅(1892∼1973) 여사가 1965년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으로 다문화가정과 자녀의 복지 증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재단에서는 지난 6월 줄리 헤닝의 자서전 『A Rose in a Ditch』의 한국어판을 발간했다. 저자는 6·25 전쟁 중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아메리시안(미국과 아시아계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을 일컫는 것으로 펄 벅 여사가 만든 말)으로 성장했다. 어머니가 가난과 편견이라는 고통 속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후 그녀는 중학생 때 펄벅 여사에게 입양돼 미국으로 건너갔다. 펄 벅 여사가 작고한 후에는 또 다른 미국인 부모를 만나 살고 있다. 그녀가 한미 양국에서 세 명의 엄마와 ‘구순이 줄리 콤포트 윌시 프라이스 헤닝’이라는 긴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은 개인사를 넘어 한 사회의 문화와 역사이기도 하다. 미국 펜실베니아에 거주하고 있는 헤닝 여사가 보내온 서면 인터뷰 답변이다.
“책(자서전)은 어떻게 출간하게 되셨나요?”
-저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배우는 기쁨을 알게하기를 좋아하는 수학교사입니다. 그럼에도 책을 쓴 것은 써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과 나의 마음에 영향을 끼친 숱한 사건을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책을 읽은 분들의 반응도 접해 보셨는지요?”
-수많은 독자로부터 편지와 전화, 페이스북 메시지, 메신저 글을 받았고 초청 강연 요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얼마나 그 책을 사랑하게 됐는지, 그들을 웃기고, 울리고, 영감을 주었으며 밤 새워 읽기도 했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독자들이 자서전을 읽을 때 자기 자신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원했는데 그렇게 했다고 믿습니다.
“책을 쓰는 과정은 어땠나요?”
-제가 받은 카드들과 한국에서 가져온 모든 것들을 간직해뒀었습니다. 그것들이 연도와 순서를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엄마 얘기를 쓸 때면 자주 제 눈은 눈물로 가득 찼습니다. 빈곤과 굶주림, 차별 속에서도 엄마와 저 사이의 크나큰 사랑, 저에 대한 그녀의 희생적인 사랑이 떠올랐습니다. 펄 벅 어머니와의 행복했던 날들은 훨씬 쓰기가 수월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즐거운 기억으로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혼혈아로서 한국에서 겪은 일들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행복한 결혼을 하고 멋진 가족이 있으며 68세가 된 지금까지도 그때를 회상하면 눈물이 납니다. 여전히 자신의 불안정성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도와주셨던 사람들의 선함(goodness)이 삶을 달라지게 했고 마찬가지로 저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지내실 때와 미국에 가고 나서 주변의 시선이 많이 달랐는지요?”
- 무지가 공포를 낳으며, 때로 공포가 편견을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저를 다르게 보는 눈길을 느끼곤 합니다. 자신과 연결되기 위해서, 상대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가 어떻게 보이든 서로 사랑할 수 있고 다름을 수용하며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언어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소를 많이 지었습니다. 저는 미소가 우주적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도 우주적 언어입니다. 수학교사가 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다시 왔을 때는 어땠나요?”
-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경험한 모든 감정을 말로 표현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은 제가 태어난 곳이고, 자란 곳이고, 사랑하는 엄마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제 모습이 빚어진 땅입니다. 저에게 한국의 대통령 영부인이 펄벅인터내셔널의 ‘올해의 여성상(Woman of the Year Award)’ 증정자 역할을 주셨습니다. 이 일들이 한국의 아메라시안(Amerasian)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것인지를 생각했을 때 너무 감사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젊은이들 그리고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여러분은 아름답고, 특별하게 창조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금언 중 하나는, “자신이 심어진 곳에서 꽃을 피워라”와 “우리의 맥박이 뛰고(살아) 있는 한, 우리는 (살아야 할) 목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계획도 궁금합니다.”
- 지난해 9월에 펄벅인터내셔널에서 ‘올해의 여성상(2020 Woman of Influence Award)’을 수상하는 영예를 주었습니다.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이 플랫폼을, 어려운 아이들이 동등하게 교육받도록 지원하면서 그들의 대변자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친아버지는 군인이셨습니다. 평화와 자유를 확보하려는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드립니다. 박지숙 기자
펄 벅 재단은 소설 ‘대지’의 작가 펄 벅(1892∼1973) 여사가 1965년 설립한 사회복지법인으로 다문화가정과 자녀의 복지 증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재단에서는 지난 6월 줄리 헤닝의 자서전 『A Rose in a Ditch』의 한국어판을 발간했다. 저자는 6·25 전쟁 중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아메리시안(미국과 아시아계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을 일컫는 것으로 펄 벅 여사가 만든 말)으로 성장했다. 어머니가 가난과 편견이라는 고통 속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후 그녀는 중학생 때 펄벅 여사에게 입양돼 미국으로 건너갔다. 펄 벅 여사가 작고한 후에는 또 다른 미국인 부모를 만나 살고 있다. 그녀가 한미 양국에서 세 명의 엄마와 ‘구순이 줄리 콤포트 윌시 프라이스 헤닝’이라는 긴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은 개인사를 넘어 한 사회의 문화와 역사이기도 하다. 미국 펜실베니아에 거주하고 있는 헤닝 여사가 보내온 서면 인터뷰 답변이다.
“책(자서전)은 어떻게 출간하게 되셨나요?”
-저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배우는 기쁨을 알게하기를 좋아하는 수학교사입니다. 그럼에도 책을 쓴 것은 써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의 삶과 나의 마음에 영향을 끼친 숱한 사건을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책을 읽은 분들의 반응도 접해 보셨는지요?”
-수많은 독자로부터 편지와 전화, 페이스북 메시지, 메신저 글을 받았고 초청 강연 요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얼마나 그 책을 사랑하게 됐는지, 그들을 웃기고, 울리고, 영감을 주었으며 밤 새워 읽기도 했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독자들이 자서전을 읽을 때 자기 자신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원했는데 그렇게 했다고 믿습니다.
“책을 쓰는 과정은 어땠나요?”
-제가 받은 카드들과 한국에서 가져온 모든 것들을 간직해뒀었습니다. 그것들이 연도와 순서를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엄마 얘기를 쓸 때면 자주 제 눈은 눈물로 가득 찼습니다. 빈곤과 굶주림, 차별 속에서도 엄마와 저 사이의 크나큰 사랑, 저에 대한 그녀의 희생적인 사랑이 떠올랐습니다. 펄 벅 어머니와의 행복했던 날들은 훨씬 쓰기가 수월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즐거운 기억으로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혼혈아로서 한국에서 겪은 일들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행복한 결혼을 하고 멋진 가족이 있으며 68세가 된 지금까지도 그때를 회상하면 눈물이 납니다. 여전히 자신의 불안정성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도와주셨던 사람들의 선함(goodness)이 삶을 달라지게 했고 마찬가지로 저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지내실 때와 미국에 가고 나서 주변의 시선이 많이 달랐는지요?”
- 무지가 공포를 낳으며, 때로 공포가 편견을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저를 다르게 보는 눈길을 느끼곤 합니다. 자신과 연결되기 위해서, 상대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가 어떻게 보이든 서로 사랑할 수 있고 다름을 수용하며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언어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소를 많이 지었습니다. 저는 미소가 우주적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도 우주적 언어입니다. 수학교사가 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다시 왔을 때는 어땠나요?”
-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경험한 모든 감정을 말로 표현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은 제가 태어난 곳이고, 자란 곳이고, 사랑하는 엄마의 희생적인 사랑으로 제 모습이 빚어진 땅입니다. 저에게 한국의 대통령 영부인이 펄벅인터내셔널의 ‘올해의 여성상(Woman of the Year Award)’ 증정자 역할을 주셨습니다. 이 일들이 한국의 아메라시안(Amerasian)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 것인지를 생각했을 때 너무 감사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젊은이들 그리고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여러분은 아름답고, 특별하게 창조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금언 중 하나는, “자신이 심어진 곳에서 꽃을 피워라”와 “우리의 맥박이 뛰고(살아) 있는 한, 우리는 (살아야 할) 목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앞으로 계획도 궁금합니다.”
- 지난해 9월에 펄벅인터내셔널에서 ‘올해의 여성상(2020 Woman of Influence Award)’을 수상하는 영예를 주었습니다.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이 플랫폼을, 어려운 아이들이 동등하게 교육받도록 지원하면서 그들의 대변자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친아버지는 군인이셨습니다. 평화와 자유를 확보하려는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에 감사드립니다. 박지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