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 등장하는 로봇 조종사들은
비밀 지구방위대 소속이지만
현실의 대형 로봇 조종사들은
건설 작업 돕는 회사의 직원들
만화보다는 덜 화려하나
멋진 일이라는 생각 들어
애니메이션이나 SF TV극에 자주 나오는 것이 커다란 로봇이다. 악의 무리가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면 정의의 용사들은 그에 맞서 싸우게 되는데 절정 즈음에 집채만 한 로봇이 등장해 싸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커다란 로봇일수록 화면으로 보았을 때 화려하므로 고층 빌딩만 한 로봇이 등장해 악당 괴물과 격투하는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세월은 흘러 흘러 2021년, TV에서 거대한 로봇들이 활약하는 장면이 등장한 지도 수십 년이 지났는데, 그 로봇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로봇 청소기는 대중화돼 가정에 꽤 많이 퍼져 있다. 산업 현장에서 기계를 조립하거나 자재를 가공하는 로봇들의 발전도 빠른 편이다. 몇몇 회사들은 안내용 로봇이나 애완용 로봇을 개발해서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어릴 때 보던 육중하고 멋진 대형 로봇은 아니다. 기껏해야 사람보다 조금 더 큰 정도다. 로봇의 임무도 청소를 하거나 자동차를 조립하는 용도지, 지구를 수호하는 역할은 아니다.
지구를 지키는 대형 로봇과 가장 비슷한 제품을 현실 세계에서 찾아보라면, ROV(Remotely Operated underwater Vehicle)라는 장비를 소개해 보고 싶다. 이 장비는 20년 이상 현장에서 실용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기계다. 가끔 주가 정보나 기업 동향에 관한 소식을 보면, 한국의 어느 회사에서 T800이라는 ROV 장비가 활약하고 있다거나, 그보다 더 좋은 신형 장비는 무엇이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T800은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 주인공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한 암살용 로봇의 이름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 회사에서 사용하고 있는 T800이 미래 전쟁에서 로봇들이 이기기 위해 보낸 비밀 무기는 아니다. 이름만 같은 동명이로봇이다. 현실의 T800은 바닷속 깊은 곳에 들어가서 공사 작업을 한다. 모습도 슈워제네거와는 전혀 달라서, 육중한 중장비 모양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로봇 팔 같은 것이 둘 달린 거북이나 가재를 닮았다. 물속에 무엇인가 건설해야 할 때가 있는데, 사람이 작업하기에는 곤란한 일도 많다. 그럴 때, 물속에서 숨 쉴 필요가 없는 이런 로봇을 쓴다.
특히 T800은 바닷속에 인터넷·통신선을 건설하는 데 오랫동안 활용돼 왔다. 세계를 연결하는 요즘 인터넷 통신선은 로봇들이 설치해 놓은 것이다.
건설 작업용 ROV로는 그동안 미국이나 영국 회사 제품이 인기였다. T800도 수입품이다. 그러나 국내 기술진의 도전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경북 포항시 흥해읍에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수중건설로봇사업단 기지가 있다. 작은 탱크와 맞먹는 35톤 크기의 자체 개발 ROV가 머무는 보금자리다. 이 로봇은 우주의 침략자와 맞서 싸우지는 않지만, 육지에서 섬으로 연결되는 상수도 관로를 바다 밑에 건설하는 일을 해냈다. 덕분에 섬 주민들이 수돗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 이만하면 그럭저럭 평화의 수호자 역할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만화에 등장하는 로봇 조종사들은 신분을 감추고 지내다가 위기가 발생하면 변신하는 비밀 지구방위대 소속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실의 대형 로봇 조종사들은 건설 작업을 돕는 회사의 직원들이다. 멋진 음악과 함께 변신하는 비밀 요원이 아니라 로봇을 싣고 다니는 배 위에서 외롭게 지내며 묵묵히 작업을 수행하는 기술인들이다. 현실이 만화보다는 덜 화려하다 할 수 있겠지만, 땀 흘리며 노력하는 와중에 꿈이 가깝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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