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사자성어로 읽는 mil story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 공감·소통… 위기가 기회다

입력 2021. 09. 08   16:18
업데이트 2021. 09. 0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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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충언역이와 열 번째 사람
逆 耳 忠 言
충성 충 말씀 언 거스를 역 귀 이 

진심 어린 말은 귀에 거슬린다

 
10명 중 1명의 반대 의견 경청
교황청 ‘악마의 변호인’ 원리서 유래
이스라엘 생존으로 이끈 원동력
한쪽 의견 기울지 않는 지혜 필요

 

작전 수행은 ‘블루팀’이 한다. 반대편에서 문제점을 찾는 가상 적군인 ‘레드팀’은 열 번째 사람의 역할을 한다.  필자 제공(일러스트 한가영)
작전 수행은 ‘블루팀’이 한다. 반대편에서 문제점을 찾는 가상 적군인 ‘레드팀’은 열 번째 사람의 역할을 한다. 필자 제공(일러스트 한가영)

탈레반의 카불 점령 후폭풍이 거세다. 9·11테러 20주기 추모와 혼돈이 교차한다. 평화협정은 휴짓조각이 됐다. 다수가 지배하는 집단지성의 오류나 한 사람의 독선은 큰 피해를 낳는다. 한쪽 의견에 기울지 않고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지혜가 요구된다. 열 번째 사람의 귀에 거슬리는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거슬리는 말과 쓴 약의 이로움


기원전 2세기 진시황이 사구에서 객사했다. 다시 천하가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진나라 타도를 외치는 반란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다. 유방과 항우가 힘을 겨뤘다. 유방이 항우보다 간발의 차이로 수도 함양에 먼저 들어갔다. 유방이 왕궁에 들어가 보니 값진 보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는 왕궁의 재물과 안락함에 유혹돼 칼을 놓고 머물고 싶었다.

부하 번쾌가 “아직 천하가 통일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 더 중요하니 이곳을 떠나 적당한 곳에 진(陣)을 치고 다음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유방이 그의 말을 듣지 않자 장량은 “천하를 위해 남아 있는 적을 없애려면 마땅히 검소함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진나라 왕궁에서 편안과 욕심은 ‘걸(桀·하나라 포악한 왕)처럼 나쁜 짓을 하는 것’이다”라며 “원래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동하는 데 이롭다(忠言逆於耳 利於行·충언역어이 이어행).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효력이 있다(良藥苦於口 利於病·양약고어구 이어병)”고 했다.

유방은 크게 깨닫고 왕궁에서 나가 패상(覇上·함양으로부터 우측으로 16㎞ 지점)에 진영을 쳤다. 이 말은 『사기세가』의 ‘유후세가(留候世家·장량 일대기)’에 나온다. 원래 공자가 나라·가정·친구에게 충고를 아끼지 말라는 뜻에서 한 말로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실려 있다. 독선과 경청 결과 차이는 엄청났다.


독선, 승산 제로 전쟁에서 패배

일본은 독선과 맹종 때문에 태평양전쟁에서 큰 희생을 치렀다. 전쟁을 일으킨 주범은 당시 총리 도조 히데키다. 그는 일왕의 “외교 협상으로 전쟁 회피 방안을 찾으라”는 명령을 무시하고 개전을 선택했다. 육·해군 지휘관은 상급자 의도에 반박하지 않았다. 군 내부는 인맥에 따른 파벌에 무조건 따랐다. 수상과 육·해군 3인이 병립된 채 일관된 전쟁 지도 시스템이 없었다. 군비증강과 작전계획에 다른 의견과 비판은 허용되지 않았다.

전쟁 도화선이 된 진주만 폭격 때다. 일본 함대사령관 야마모토는 참모들이 건의한 작전계획을 단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다. 참모들이 수정한 계획도 고작 위엄에 찬 얼굴로 확인하면서 사령탑만 지켰다. 1944년 2월 도조 히데키는 불리한 전황을 타개하려고 참모총장을 겸직했다. 행정·군정·군령권까지 손에 쥐었다. 그의 곁에는 간신과 어리석은 인물만 있었다. 그중에서 사토 겐료는 육군성에서 도조의 정책 결정에 핵심 역할을 했다. 그는 자기 신념이 강한 독선적인 인물로 대미 강경파였다. ‘미군 장교들은 전략 전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유치한 수준’이라는 자신의 오판을 숨겼다. 엉터리 미국통이 일본에 큰 해악이었다.

군 수뇌부의 무능과 현실감각 결여에 대한 불만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졌다. 결국 원자폭탄 비극을 불렀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에 터진 원자폭탄 ‘리틀보이(Little boy)’ 위력은 엄청났다. 사흘 뒤 나가사키에 ‘팻맨(Fat man)’이 또 떨어졌다. 두 도시는 사흘 밤낮으로 불탔고 사망자는 22만 명이나 됐다.


반대 의견 경청이 승리 요결

1973년 10월 이스라엘군 지휘부는 오판했다. 아랍군의 국경 접근을 통상적 훈련으로 여겼다. 며칠 후 아랍군의 파상 공세로 완전한 기습을 당했다. 이스라엘군은 전멸 위기에서 겨우 살아난 뒤 전략을 바꿨다. ‘충언역이’를 달게 들었다. 10명 중 9명이 찬성해도 1명의 반대 의견을 반드시 물었다. ‘열 번째 사람(the tenth man) 원칙’이다. 다른 관점의 의견은 획일적 찬성 여론에 대한 휩쓸림을 막았다. 이 시스템은 사방이 적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을 생존으로 이끈 원동력이 됐다. 13세기 로마 교황청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 원리에서 나왔다. 이들 임무는 외부인 눈으로 성인 후보자들의 흠집 찾아내기였다.

열 번째 사람은 영화 ‘월드워Z’에도 나온다. 좀비 창궐로 인류가 생존 위협에 직면했다. 유엔 역학조사관 제리는 이스라엘 관료 유르겐에게 “왜 좀비가 나타났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믿고 도시에 벽을 쌓았느냐”고 물었다. 유르겐은 “If nine of us look at the same information and arrive at the same exact conclusion, it’s the duty of the tenth man to disagree(만일 우리 중 9명이 똑같은 정보를 보고 같은 결론을 내리면, 10번째 사람은 결론에 반대하는 것이 의무다)”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좀비가 퍼진다는 정보 수집과 동시에 대책을 강구했다. 모두가 좀비 존재를 믿지 않았으나 좀비가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받아들였다. 이스라엘 전체에 커다란 벽을 세워 좀비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 공감하고 소통을 핵심 가치로 삼을 때 위기는 기회가 된다.


오홍국 국제정치학박사
오홍국 국제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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