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환
“좋은 식단 위해 고민…정성 쏟는 것이 맛의 비결”
각 부대 최고 실력자들 10개 팀 참가
공통 메뉴 카레돈가스·짬뽕찌개 조리
자율 부문 비장의 요리 기술 선봬
조리 방향성·개성 따라 각양각색
맛·비선호 재료 활용 등 평가
신병교육대 ‘신교반점’ 팀 우승
사단 ‘최고의 맛집’ 명패 수여
매월 사단 급식개선위원회 개최
신규 메뉴 조리방법·발전 사항 공유
장병 급식 품질 향상 끊임없이 노력
날이 선 칼날들이 도마를 연속으로 두드리는 소리는 마치 기관총 사격음 같았다. 속이 깊은 프라이팬에서는 거대한 화염이 치솟았다. 총성과 불길이 가득한 조리대는 최고의 요리를 만들기 위한 조리요원들의 자존심이 걸린 또 하나의 전쟁터였다. 육군55보병사단이 장병들에게 더욱 맛있고, 영양가 높은 급식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 26일 조리경연대회를 개최했다. 그 현장을 찾아 조리요원들의 열정과 정성이 듬뿍 담긴 요리를 맛봤다. 글=김철환/사진=조종원 기자
“부대 전투력 발휘의 핵심은 여러분과 같은 ‘조리 전투원’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없다면 전투원들이 힘을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봉화부대 최고의 셰프를 찾아라! 조리경연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한기원(대령) 행정부사단장의 개회 선언과 함께 조리경연대회 막이 올랐다. 부대 강당인 ‘김윤후관’에서 열린 대회에는 예선을 통과한 10개 팀 40명의 조리 전투원이 참가해 요리 실력을 겨뤘다.
사단은 매주 대대장급 지휘관 주관으로 급식관계관과 장병이 참여하는 ‘병영식당 운영회의’에서 메뉴를 조정하거나 자율운영 부식비를 활용해 반찬을 추가하는 등 장병 급식 품질 향상에 힘쓰고 있다. 또 매월 사단 급식개선위원회를 개최해 신규 메뉴 조리방법과 원활한 취사장 운영을 위한 발전 사항을 공유하는 등 장병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번 대회 역시 그 연장선이다. 더불어 각 부대 최고 실력자들이 자신 있게 선보이는 일품요리 조리법을 공유하기 위해 대회를 추진했다.
최고 실력자들 일품요리 조리법 공유
참가팀들은 기본기를 평가받는 공통 메뉴이자 대회 당일 부대 점심 메뉴이기도 했던 ‘카레돈가스’와 ‘짬뽕찌개’를 조리했다. 또 가장 자신 있는 자율 메뉴로 비장의 요리 기술을 선보였다.
용성여단의 ‘앙! 맛있조!’ 팀은 조리학과 재학, 호텔 근무, 민간 조리대회 입상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여러 참가팀 가운데 ‘자취 8년 차’라는 현실감 넘치는 이력을 내세워 눈길을 끌었다. ‘앙! 맛있조!’ 팀의 대표 메뉴는 고급 중국요리인 ‘동파육’을 부대에서 손쉽게 맛볼 수 있도록 조리법을 단순화한 ‘동파수육’이었다. 군에 보급되는 돼지고기는 10㎜ 두께로 썰려 있어 고기를 삶은 뒤 추가로 써는 노력이 필요 없으면서도, 두툼한 고기의 풍미를 느끼기에 적당하다는 장점을 살린 것. 고기를 다 삶은 양념 육수에 장병들이 좋아하는 달콤 짭짤한 소스를 추가해 바짝 졸여 만든 양념을 수육에 코팅하듯 두르면 완성이다.
김건후 중사는 동파수육에 대해 “지금은 만날 수 없게 된 귀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만 정성껏 만들었던 요리”라며 “자취 8년의 노하우를 집대성했다”고 자부했다.
비봉대대 ‘뽕’s Kitchen’ 팀은 부대 브런치 데이에 내놔 호평을 받았던 ‘셀프 바(self bar) 푸실리’를 선보였다. 정연수 하사는 “군 급식 분야에서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 브런치 데이에는 병사들이 민간에서는 쉽게 먹을 수 있는데, 군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메뉴를 제공해야 한다는 고민을 한다”며 “푸실리 파스타는 뷔페나 패밀리레스토랑 셀프 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근하면서도 선호도가 높은 메뉴”라고 설명했다.
셀프바 푸실리의 최대 장점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는 점. 100인분 제작에도 4~5만 원이면 충분한 수준이라고 한다. 호텔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뽕’s Kitchen’ 팀 일원인 최용엽 일병은 “장병들은 병영식당을 찾아온 나의 손님이다. 고급 요리를 기대하고 호텔을 찾은 손님을 대하듯 조리에 임하고 있다”며 좋은 급식을 위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화려한 경력으로 치면 화룡대대 ‘화룡점정’ 팀을 빼놓을 수 없다. 출전 병사 3명 중 두 명은 조리학과, 한 명은 식품영양학과 출신이다. 한식 또는 일식·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꽃게·홍합·차돌박이 등을 푸짐하게 넣은 짬뽕찌개로 공통 메뉴부터 차별화했다. 반면 자율 메뉴는 ‘오징어채 튀김’이라는 실용성 있는 반찬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김진영 일병은 “민간에 견줘도 손색없는 최고의 요리로 부대원들을 살찌워주겠다”고 말했다.
산성여단 ‘산성과 충용을 위하여’ 팀은 월남쌈, 백마대대 ‘엄마와 세 아들’ 팀은 감자 오꼬노미야끼, 서희대대 ‘맛남의 서희’ 팀은 골뱅이 오이무침, 용마대대 ‘용마 오픈키친’ 팀은 사천식 돼지고기 가지 덮밥, 포병대대 ‘요리킹, 조리킹’ 팀은 사계절 도토리 묵밥, 신교대 ‘신교반점’ 팀은 차슈덮밥, 본부대 ‘조벤져스’ 팀은 대패삼겹살과 순대볶음을 선보였다.
“전우들이 먹는 급식이 단연 최고”
참가 팀들이 조리한 음식을 중앙 심사 테이블에 진열하자, 부대 강당은 풍성한 만찬장이 됐다. 공통 메뉴인 ‘카레 돈가스’와 ‘짬뽕 찌개’도 각 팀의 개성과 조리 방향성에 따라 각양각색이라 마치 완전히 다른 음식을 보는 것 같았다. 보기만 해도 땀이 나는 얼큰하고 시뻘건 국물부터, 맑지만 재료가 우러나 시원한 국물까지 짬뽕의 맛도 모양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배현국(소장) 사단장을 포함한 심사위원단은 각 팀 조리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며, 조리도구 준비상태와 위생 습관, 팀워크를 통한 적정 시간 내 조리 등을 엄정히 평가했다. 이어 완성된 요리를 맛보며 ‘익힘 정도’ ‘간’ 등 맛의 기본요소, 심사위원단 호응도, 비선호 재료의 지혜로운 활용 등을 체크했다. 특히 맛있는 요리도 실제 병영식당에서 대량 급식이 가능한지를 중점적으로 진단했다.
치열한 경합 끝에 우승은 신병교육대 ‘신교반점’ 팀이 차지했다. 준우승은 용마대대 ‘용마 오픈키친’에게 돌아갔다. 이들의 수상 비결은 민간조리원들이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건강에는 좋지만 장병들이 선호하지 않는 식재료를 어떻게 맛있게 조리하면 잘 먹을까’를 깊이 고민했다는 점이다.
준우승팀 ‘용마 오픈키친’ 팀의 사천식 돼지고기 가지덮밥은 여름에 많이 보급되는 식재료 ‘가지’를 잘 활용했다. 허숙희 조리원은 “고기를 볶다가 채소를 이용해 깔끔한 감칠맛을 내는 채수물과 야채를 넣고, 간장·굴 소스 등 갖은 양념을 추가해 사천식으로 약간 매콤한 맛을 냈다”며 “우리 부대뿐만 아니라 타 부대 장병도 좋아해 주셔서 조리법을 공유하기 위해 참가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승팀 ‘신교반점’의 차슈덮밥은 간단한 조리과정과 입맛 없을 때도 가볍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부드럽게 손질한 돼지고기에 짭짤한 간장 소스를 더해 맛을 냈다. 오랜 기간 유명 호텔에서 조리장으로 활약한 정영미 민간조리원은 “병사들이 깻잎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잘게 잘라 돼지고기라는 어울리는 짝과 함께 내놓으면 맛있게 먹는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신교반점 팀은 민간조리원과 병사들이 강한 신뢰로 똘똘 뭉쳐있는 모습을 보여줘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다. 외식경영학과 출신으로 한식·양식·중식 조리사 자격증을 보유한 장지웅 상병은 정 조리원에 대한 존경심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장 상병은 “훈련병 시절에 신교대 병영식당 맛을 보고 ‘무슨 군대 밥이 이렇게 맛있어?’라고 감탄했었다”며 “함께 조리 임무를 수행해보니 언제나 좋은 식단을 위해 고민하고 정성을 쏟는 모습에서 맛의 비결을 알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우승팀에게는 사단 최고의 맛집 명패가 수여됐으며, 본선 진출팀 병사에게는 모두 2일의 포상휴가를 부여했다.
배 사단장은 “장병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식당 불을 밝히는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여러분들과 급양관리관, 지휘관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동료이자 전우들이 먹는 급식이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치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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