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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하지만 강력한…심해 속 ‘공포의 대상’

입력 2021. 08. 26   16:26
업데이트 2021. 08. 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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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잠수함


세계대전 이후 해전 흐름 바꿔
‘사일런트 헌터’ ‘콜드 워터스’ 등
냉전 배경 은밀한 단독 작전 다뤄
2000년대 국산 게임 ‘네이비 필드’
대전략 게임 속 비대칭전력 주목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사일런트 헌터 5’는 상당한 그래픽으로 바다를 표현하지만, 정작 잠수함은 물속에 주로 위치하는지라 뛰어난 그래픽을 볼 상황이 많지 않다.   필자 제공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사일런트 헌터 5’는 상당한 그래픽으로 바다를 표현하지만, 정작 잠수함은 물속에 주로 위치하는지라 뛰어난 그래픽을 볼 상황이 많지 않다. 필자 제공
유사 이래 전장으로서의 바다는 지상전과 마찬가지로 2차원 평면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바다 위라는 평면의 전장을 함선들이 헤치고 다니며 펼치던 작전은 20세기 들어 비행기에 의해 3차원으로서의 공중이 전장의 영역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차원을 맞이했다. 하늘이 비행기에 의해서였다면, 바다는 잠수함으로부터였다.

3차원의 해전, 스텔스의 잠수함
바다에서 벌이는 전투인 해전은 기본적으로 함선을 사용하는 전투였다. 인간은 굳이 물속이 아니더라도 물 위에 떠 있는 것만으로도 바다 위에선 움직이기도, 버티기도 어렵다. 하물며 적과 싸우는 고강도의 행동을 수행하는 것은 육상과 비슷한 환경을 제공하는 배 위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부력을 이용해 수면 위에 떠서 물 밖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함선 덕분에 가능해진 해전은 따라서 당연하게도 해수면이라는 평면 위를 상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따금 적 항구에 몰래 잠입해 배 밑에 구멍을 뚫는 등의 간단한 잠수 활동이 있긴 했지만, 큰 바다에서 물속이라는 공간을 전장으로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오랫동안 해전은 당연히도 수면 위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적이 예상하지 못한 경로는 전쟁에서 최고의 전술이기에 바닷속을 향한 아이디어는 그치지 않았고, 기술의 발전은 서서히 이를 가능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목재에서 강철로 선박의 주재료가 변화하기 시작했고, 노와 범선 대신 동력기관으로 배가 움직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물속의 함선, 잠수함의 의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기 잠수함은 전면적인 잠수함이라기보다는 수상함이면서 필요에 따라 잠수가 가능한 형태였다. 당장 물속에서 오래 버티기 위한 산소의 공급이 원활치 않았고, 비중과 압력이 높은 수중 상황에서 속도를 내기도 어려웠기에 초기 잠수함은 모두 잠수 가능한 수상함의 형태로 구현되었다. 세계대전기 유명세를 탔던 독일의 U보트도 오늘날 잠수함의 모습에 가까워지긴 했지만 완전한 잠수기동만으로 움직이는 함선은 아니었다.

그러나 잠수 상태에서 전술기동이 가능하다는 점은 세계대전기부터 점차 해전의 흐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특히 잠수함은 비대칭전력으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드러냈는데, 당장 세계대전기 독일이 잠수함을 크게 채택한 이유가 영국에 비해 해군력이 크게 모자란다는 점에서부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잠수함의 등장은 일종의 스텔스와 같은 개념으로 다가왔다. 보이지 않는 바다 밑에서 갑자기 발사되는 어뢰는 별도의 대잠 장비를 갖추더라도 쉽게 파악되지 않는 위협 요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별다른 탐측 장비가 없었던 20세기 초에 잠수함은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잠수함은 발전한 기술 덕분에 과거보다 훨씬 더 강력해졌다. 고속 내연기관들을 도입하며 잠수 상태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순항이 가능해졌고, 더욱 오랜 시간을 물속에서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원자력 기술의 출현은 특히 잠수함을 완전히 새롭게 업그레이드했는데, 별도의 연료 보급 없이도 원자력을 통해 생산한 전기로 바닷물을 분해하고 산소를 만들어내기까지 하며 물속에 은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예 핵미사일을 탑재한 채로 깊은 물속에 엎드린 전략핵잠수함은 비대칭병기를 넘어선 전략 병기로 오늘날 의미 지어진다.

냉전기 잠수함을 다룬 톰 클랜시의 소설 ‘레드 스톰 라이징’을 게임화한 ‘레드 스톰 라이징’은 지금 보기엔 조잡한 그래픽이지만, 잠수함의 고독함을 드러내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필자 제공
냉전기 잠수함을 다룬 톰 클랜시의 소설 ‘레드 스톰 라이징’을 게임화한 ‘레드 스톰 라이징’은 지금 보기엔 조잡한 그래픽이지만, 잠수함의 고독함을 드러내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필자 제공

어둡고 고요한 심해가 가져오는 고독함
게임 속에 등장하는 잠수함들은 잠수함만이 가진 특징들을 드러내면서 그 존재감을 만들어간다. 잠수함이 단독 주인공 격으로 등장하는 게임들이 강조하는 것은 그중에서도 특히 잠수함 특유의 고립감이다.

21세기 게이머들에게 잠수함 게임으로 가장 유명할 시리즈인 ‘사일런트 헌터’는 제목부터 게임 플레이까지 잠수함에 요구되는 정숙성과 고요함, 그리고 고독함이 넘쳐나는 게임이다. 2차 세계대전의 북유럽 해역을 주요 배경으로 하는 ‘사일런트 헌터 5’에서 플레이어가 독일 유보트 함장이 되어 펼치는 작전은 함대 단위가 아니라 잠수함의 단독 작전으로 주로 이루어지며, 망망대해에서 적 상선이나 수송선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고독한 인내의 시간을 요구하며 잠수함의 운용이 어떤 상황인지를 잘 드러낸다.

2017년에 출시된 ‘콜드 워터스’는 국내에서 유명한 게임은 아니지만 냉전 시대의 잠수함전을 다룬 게임으로 손꼽힌다. 시야가 제한된 바닷속에서 수중의 소리를 통해 적함을 찾아내는 고독한 잠수함의 탐색전이 생생하게 재현되며 특히 전면전이 아닌 냉전이라는 배경 속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잠수함전의 의미가 더욱 배가된다.

냉전기와 잠수함은 여러모로 분위기가 맞아떨어지는 통에 잠수함 게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매칭인데, 1992년에도 이미 고독한 잠수함의 대결이 게임으로 나온 바 있었다. 시뮬레이션 게임의 명가였던 마이크로프로즈가 제작한 ‘레드 스톰 라이징’은 밀리터리 마니아들에게 익숙한 동명의 소설을 게임으로 각색한 것으로, 냉전기를 배경으로 한 가상의 3차 세계대전 상황을 직접 핵잠수함 함장의 시점에서 탐색해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앞서 소개한 ‘콜드 워터스’의 정신적 선조 격 게임이기도 하다.

잠수함이 주인공이 되는 게임들이 주로 심해의 고독을 드러냈다면, 해전이나 대전략을 다루는 게임에서 잠수함은 비대칭전력이라는 의미를 드러내는 유닛으로 주목받는다. 2000년대 초 인기를 끌었던 국산 해전 게임 ‘네이비필드’에서 잠수함은 잠항 시 별도의 음탐병을 추가하지 않은 적 함선으로서는 위치 확인도 쉽지 않은 은신 능력으로 사기 소리를 듣는 함급으로 위명을 떨친 바 있었다.

대전략 게임의 대표작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에서 잠수함은 전형적인 비대칭병기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보여준다. 해군 운용에서 주력이 되는 순양함, 전함, 항공모함 등의 대형 함급은 함선 1척의 건조에만 몇 년이 들어가고 자원량도 무지막지해 쉽게 제해권을 잡기 힘든데, 잠수함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산자원으로 적의 대형 함선을 기습할 수 있어서 영세국일수록 효과가 좋은 해군 장비로 각광 받는다.

2021년 8월에는 최초로 국내 독자 설계를 통해 건조된 3000톤급 국산 잠수함인 도산 안창호급이 본격 취역하며 자주국방의 한 축을 열었다. 어둡고 고요한 심해의 밀폐된 공간에서 발소리마저 죽여 가며 근무하는 잠수함 승조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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