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조신영 조명탄] 고통을 한 글자로 줄이면 ‘꿈’이다.

입력 2021. 08. 23   15:03
업데이트 2021. 08. 2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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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신 영 
생각학교ASK 대표
조 신 영 생각학교ASK 대표


얼마 전 지인들에게 알릴 소식이 있어서 SNS를 들락거리다가 누군가의 프로필에서 눈길을 확 잡아끄는 문장을 만났다.

‘고통을 한 글자로 줄이면 꿈이다.’ 멋졌다. 확인해 보니 한 연예인이 언급한 말이라고 했다.

책 읽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은 초보자들과 공부하는 책이 있다. 모티머 J. 애들러 박사가 쓴 『독서의 기술』이다. 애들러는 1930년대 미국 고전 읽기 운동을 일으킨 철학자다.

록펠러의 투자로 멋진 캠퍼스와 화려한 교수진을 갖춘 시카고대학은 삼류 대학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사회는 갓 서른이었던 로버트 허친스를 총장으로 영입해 명문대로 발전시켜달라고 부탁한다. 허친스는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할 적임자로 컬럼비아대 철학 교수인 절친 모티머 J. 애들러에게 도움을 청한다.

애들러는 깨알같이 긴 도서 목록을 보낸 후 이 책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볼 의향이 있으면 합류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운다. 둘은 의기투합해 시카고대학에서 고전 100권을 핵심 커리큘럼으로 가르치겠다는 과감한 플랜을 반대를 무릅쓰고 실행에 옮긴다. 애들러는 말했다. “유치원에서 놀던 정신 상태가 대학가에도 침투하고 있다. 공부가 진짜 힘들고 정신력과 꾸준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법대, 혹은 의대에 진학할 때나 맛을 본다.” 그의 논문 「배움의 고통으로 초대(Invitation to the Pain of Learning), 1941」에 나오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는 ‘사람은 고통을 통해 지혜에 이를 수 있다’는 주제가 자주 등장한다. “그분께서는 인간들을 지혜로 이끄시되 고뇌를 통해 지혜를 얻게 하셨으니, 그분께서 세우신 이 법칙 언제나 유효하다네. -아이스킬로스 「아가멤논」 176행.

불치의 병에 걸리거나, 견딜 수 없는 고독을 버티거나, 깊은 슬픔에 비통해하거나, 운명의 덫에 걸려 헤매거나, 사람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맛볼 때 비로소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히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운명적인 고통을 거치며 지혜를 얻는 방식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고통을 선택해 지혜에 이르는 현명한 삶도 있다. 책이라는 도구를 선택해 배움의 고통을 거치며 삶의 지혜에 이르는 길이다. 조지 오웰은 그 꿈을 위해 자발적 고통을 선택했다. 명문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영국 주류 사회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지만,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노동자로 생활하며 펜 한 자루로 세상과 싸우는 삶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당신은 젠틀맨인가?” 노숙자로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수용소인 스파이크에 들어갈 때 감독관이 던진 질문이다.

젠틀맨의 정체성은 번듯한 의복이나, 몰고 다니는 자동차의 클래스로 결정 나지 않는다. 눈빛과 흘러나오는 언어, 삶의 향기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훗날 조지 오웰은 이렇게 회고한다. “파시즘 같은 광신적인 믿음을 타파하려면 반대로 광신적이지 않게, 지성을 활용해야 한다. 호랑이처럼 행동해서는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두뇌를 사용해 소총을 만들지 않았던가.”

팬데믹을 통해 거대한 변화의 파도는 몰려오기 시작했다. 세상을 움직여오던 모든 패러다임이 거의 전부라 할 만큼 무너져내리는 중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전무후무한 고통이 상처만 남긴다면 불행한 일이다. 삶이 서러울수록 우리는 배움의 고통으로 나아가야 한다. 끝내 이겨낼 이 고통의 끝에는 빛나는 꿈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기특한 그 연예인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고통을 한 글자로 줄이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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