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지 인근서 IED 발견 해체작업 진행
현지 도착했을 때 주민 눈빛 경계심 가득
시간 갈수록 주민-부대 간 신뢰 깊어져
파병 인생 전환점…중동지역 전문가로
자이툰부대는 2008년 12월 14일 최종 병력이 철수하면서 4년 3개월여의 임무를 마무리했다. 사진은 철수 전날 진행된 국기 하기식의 모습. 국방일보 DB
이라크 현지에서 새해를 맞은 자이툰부대원들이 태극기와 이라크 국기를 나란히 펼쳐보이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국방일보 DB
자이툰부대는 부대 방호에 심혈을 기울였다. 부대 외곽에는 고가초소와 함께 폐쇄회로(CC) TV, 열상감시장비(TOD), 슈미트 등 주·야간 감시장비를 설치해 적대 세력의 위협에 대비했다. 또 영내 도로 곳곳에 방벽과 철조망을 세우고, S자형 회전 구간과 방지턱을 만들었다. 외부인이 부대 내부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방문자통제소(VCC)부터 시작해 6단계의 꼼꼼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부대 내부와 달리 외부에서는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매번 바뀌는 작전지역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해 방어 거점을 세우고 현지인을 통제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그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도 있었다. 부대원 스스로 먼저 더욱 높은 긴장감을 유지해 주변을 경계해야 했다. 사건·사고는 방심하는 그 순간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이툰부대 1진 통역장교였던 진용기(당시 중위) 소령은 경험으로 이를 잘 알고 있다.
“통역장교였기 때문에 늘 작전 현장에 있었습니다. 모든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작전지역 정찰 임무에서부터 위병소 근무, 각종 회의, 대민지원, 행사에 이르기까지 부대의 모든 일에는 통역이 필요하니까요. 그중 기억에 남는 일은 아르빌 쿠르드자치주 청사 내 합동지휘통제실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합동지휘통제실은 자이툰부대원을 비롯해 이라크 군경과 다국적군사령부 참모 요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일종의 통합상황실. 이라크 북부지역에서의 완전한 작전 수행을 위해 업무 공유와 협조를 이루는 곳이었다.
“그곳에서의 근무는 통역 장교들이 돌아가면서 수행했어요. 제 차례가 되어서 아침 일찍 그곳으로 이동하는데 건물 입구 인근에 폭발물처리 요원들이 다수 있었어요. 주차된 차량에서 다수의 급조폭발물(IED)이 발견된 것이었어요. 주변이 통제됐고 조심스럽게 해체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그 양이 상당해 조금만 늦게 발견됐다면 큰 폭발사고로 이어졌을 거예요.”
어쩌면 진 소령이 화를 입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방탄조끼와 방탄모를 착용해도 폭발물이 터지면 피해는 비켜갈 수 없다.
“실제 폭탄이 터진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함께 일하는 통역장교 동료가 그 자리에 있던 상황이었어요. 급조폭발물이 터졌다는 상황을 전파받았는데, 폭발 장소를 보니 동료의 임무 수행지였던 것이었습니다.”
진 소령은 급히 동료에게 연락했다. 안전한 상태인지, 다치진 않았는지,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했다. 크게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하는데 동료가 받질 않는 것이었다.
“계속 전화를 거는데 좀처럼 받지 않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안절부절못했어요. ‘무슨 일이 났구나’하는 생각에 연락 두절 상황을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동료는 무사했다. 테러 상황이 발생하자 정신이 없어 진 소령의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이었다.
“정말 다행이었어요. 현장을 찾아가 보니 파편이 튀면서 주변 곳곳의 유리창이 깨졌어요. 뿌연 흙먼지가 사방을 뒤덮은 가운데 핏자국만이 빨갛게 선명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친 것 같더라고요. 아수라장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물론 위험한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처럼 불완전한 상황에서도 주민 대부분은 자이툰부대를 환대했다. 일부 적대 세력의 행동에 그들도 분개했다. 부대 인근 마을에 민사 정찰 갈 때면 주민들은 부대원들에게 반갑게 인사하거나 빵과 음료를 만들어 내어오기도 했다. 자신들을 돕는 자이툰부대에 감사했다.
“한번은 어느 마을을 방문했을 때 이장님이 갑자기 강아지 한 마리를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통역하는 과정에서 저부터 당황했었는데요. 그분 말씀이 우리 마을은 너무 못살아서 내줄 게 없다는 것이었어요. ‘괜찮다’고 거듭 이야기했지만 이장님 마음이 편치 않았나 봅니다.”
현지 주민의 호의를 무작정 거절할 수는 없었다. 결국 강아지를 부대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고, 부대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랐다. 진 소령은 강아지의 성장을 오래 보지 못하고 귀국 길에 올랐다. 임무 기간이 다 됐기 때문이다. 여느 자이툰부대원들처럼 그 역시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시원하고 섭섭하고, 보람되고, 아쉬웠다.
“제가 임무를 수행한 7개월 사이만 해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처음 현지에 도착해서 주민들을 마주했을 때 눈빛에 경계심이 가득했어요. 1진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부대원들은 묵묵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류하고 화합하며 진심으로 다가갔고, 그들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주민과 부대 간 신뢰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져 갔다. 자이툰부대 파병 차수가 늘어날수록 양국의 우호 역시 더욱 돈독해졌다. 그리고 자이툰부대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해냈다. 진 소령은 이후 2007년과 2017년 두 차례 더 중동지역에 다녀왔다. 중동지역학을 계속 연구하며 석사과정 교육으로 한 번, 이집트 지휘참모대학 파견근무로 또 한 번이었다. 육군3사관학교에서 아랍어 교수를 지냈고, 여전히 우리 군 중동지역 전문가로서 활약하고 있다.
“그 당시 자이툰부대 파병이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느낀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 국가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고, 내 가족과 국민을 위해 군인으로서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가슴 깊이 새겨넣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지금껏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서현우 기자
근무지 인근서 IED 발견 해체작업 진행
현지 도착했을 때 주민 눈빛 경계심 가득
시간 갈수록 주민-부대 간 신뢰 깊어져
파병 인생 전환점…중동지역 전문가로
자이툰부대는 2008년 12월 14일 최종 병력이 철수하면서 4년 3개월여의 임무를 마무리했다. 사진은 철수 전날 진행된 국기 하기식의 모습. 국방일보 DB
이라크 현지에서 새해를 맞은 자이툰부대원들이 태극기와 이라크 국기를 나란히 펼쳐보이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국방일보 DB
자이툰부대는 부대 방호에 심혈을 기울였다. 부대 외곽에는 고가초소와 함께 폐쇄회로(CC) TV, 열상감시장비(TOD), 슈미트 등 주·야간 감시장비를 설치해 적대 세력의 위협에 대비했다. 또 영내 도로 곳곳에 방벽과 철조망을 세우고, S자형 회전 구간과 방지턱을 만들었다. 외부인이 부대 내부로 출입하기 위해서는 방문자통제소(VCC)부터 시작해 6단계의 꼼꼼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부대 내부와 달리 외부에서는 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매번 바뀌는 작전지역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해 방어 거점을 세우고 현지인을 통제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그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도 있었다. 부대원 스스로 먼저 더욱 높은 긴장감을 유지해 주변을 경계해야 했다. 사건·사고는 방심하는 그 순간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이툰부대 1진 통역장교였던 진용기(당시 중위) 소령은 경험으로 이를 잘 알고 있다.
“통역장교였기 때문에 늘 작전 현장에 있었습니다. 모든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작전지역 정찰 임무에서부터 위병소 근무, 각종 회의, 대민지원, 행사에 이르기까지 부대의 모든 일에는 통역이 필요하니까요. 그중 기억에 남는 일은 아르빌 쿠르드자치주 청사 내 합동지휘통제실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합동지휘통제실은 자이툰부대원을 비롯해 이라크 군경과 다국적군사령부 참모 요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었다. 일종의 통합상황실. 이라크 북부지역에서의 완전한 작전 수행을 위해 업무 공유와 협조를 이루는 곳이었다.
“그곳에서의 근무는 통역 장교들이 돌아가면서 수행했어요. 제 차례가 되어서 아침 일찍 그곳으로 이동하는데 건물 입구 인근에 폭발물처리 요원들이 다수 있었어요. 주차된 차량에서 다수의 급조폭발물(IED)이 발견된 것이었어요. 주변이 통제됐고 조심스럽게 해체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그 양이 상당해 조금만 늦게 발견됐다면 큰 폭발사고로 이어졌을 거예요.”
어쩌면 진 소령이 화를 입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방탄조끼와 방탄모를 착용해도 폭발물이 터지면 피해는 비켜갈 수 없다.
“실제 폭탄이 터진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함께 일하는 통역장교 동료가 그 자리에 있던 상황이었어요. 급조폭발물이 터졌다는 상황을 전파받았는데, 폭발 장소를 보니 동료의 임무 수행지였던 것이었습니다.”
진 소령은 급히 동료에게 연락했다. 안전한 상태인지, 다치진 않았는지,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했다. 크게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하는데 동료가 받질 않는 것이었다.
“계속 전화를 거는데 좀처럼 받지 않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안절부절못했어요. ‘무슨 일이 났구나’하는 생각에 연락 두절 상황을 상부에 보고했습니다.”
동료는 무사했다. 테러 상황이 발생하자 정신이 없어 진 소령의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이었다.
“정말 다행이었어요. 현장을 찾아가 보니 파편이 튀면서 주변 곳곳의 유리창이 깨졌어요. 뿌연 흙먼지가 사방을 뒤덮은 가운데 핏자국만이 빨갛게 선명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친 것 같더라고요. 아수라장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물론 위험한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처럼 불완전한 상황에서도 주민 대부분은 자이툰부대를 환대했다. 일부 적대 세력의 행동에 그들도 분개했다. 부대 인근 마을에 민사 정찰 갈 때면 주민들은 부대원들에게 반갑게 인사하거나 빵과 음료를 만들어 내어오기도 했다. 자신들을 돕는 자이툰부대에 감사했다.
“한번은 어느 마을을 방문했을 때 이장님이 갑자기 강아지 한 마리를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통역하는 과정에서 저부터 당황했었는데요. 그분 말씀이 우리 마을은 너무 못살아서 내줄 게 없다는 것이었어요. ‘괜찮다’고 거듭 이야기했지만 이장님 마음이 편치 않았나 봅니다.”
현지 주민의 호의를 무작정 거절할 수는 없었다. 결국 강아지를 부대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고, 부대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랐다. 진 소령은 강아지의 성장을 오래 보지 못하고 귀국 길에 올랐다. 임무 기간이 다 됐기 때문이다. 여느 자이툰부대원들처럼 그 역시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시원하고 섭섭하고, 보람되고, 아쉬웠다.
“제가 임무를 수행한 7개월 사이만 해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처음 현지에 도착해서 주민들을 마주했을 때 눈빛에 경계심이 가득했어요. 1진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부대원들은 묵묵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류하고 화합하며 진심으로 다가갔고, 그들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주민과 부대 간 신뢰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져 갔다. 자이툰부대 파병 차수가 늘어날수록 양국의 우호 역시 더욱 돈독해졌다. 그리고 자이툰부대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해냈다. 진 소령은 이후 2007년과 2017년 두 차례 더 중동지역에 다녀왔다. 중동지역학을 계속 연구하며 석사과정 교육으로 한 번, 이집트 지휘참모대학 파견근무로 또 한 번이었다. 육군3사관학교에서 아랍어 교수를 지냈고, 여전히 우리 군 중동지역 전문가로서 활약하고 있다.
“그 당시 자이툰부대 파병이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느낀 시간이었어요. 무엇보다 국가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달았고, 내 가족과 국민을 위해 군인으로서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가슴 깊이 새겨넣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지금껏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서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