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거의 모든 콘텐츠에 공감을 표시하게끔 돼 있다. 그리고 이렇게 콘텐츠를 생성하는 일은 ‘공감의 개수’를 통한 개개의 평가를 피해 갈 수 없다. 특히 브런치의 경우, ‘좋아요’의 개수는 압도적으로 글의 노출 수에 비례한다. 물론 좋은 글이 노출이 잘 되겠지만, 요즘 이슈에 잘 맞아 우연히 외부에 노출돼 많은 공감을 받은 글이 나의 베스트 글이란 법칙은 없다.
그렇기에 ‘공감의 개수’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지만, 아예 쓰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일주일 넘게 공들여 쓴 글에 반응이 무덤덤하면 괜스레 섭섭하기도 하고, 나의 생각이 보편타당하지 않은가 하고 의심하기도 한다. 또 후루룩 쓴 글이 자주 노출되면, 이런 주제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인가 하며 이번 주의 주제를 은근슬쩍 바꿔 보기도 한다.
글뿐만이 아니다. 오늘 입은 옷도, 집을 꾸며 놓는 방식도, 작업도, 자유롭게 적은 나의 생각도 ‘좋아요’에 의한 평가를 피해 갈 수 없다. 오래간만에 올린 작업에 ‘좋아요’가 적게 달리면 괜히 머쓱하기도 하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좋아요’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공감의 개수’가 절대적인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때때로 나는 이 개수를 ‘내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의 척도로 삼을 때가 있다.
이제 더는 연봉 협상도, 프로젝트의 성과 여부도, 상사의 칭찬도 없는 홀로서기의 나날에서 ‘내가 잘하고 있을까?’에 대한 답변은 스스로 내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매일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다 보면, 문득 타인의 평가가 아쉬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경우,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타인의 평가는 ‘좋아요’의 개수다. 그렇게 나는 ‘공감의 개수’와 내 안의 무의식이 가리키는 방향 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그런데 지난주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지난주에 처음으로 연재한 칼럼은 내가 꽤 공들여 쓴 글이었다. 물론 남들이 보기엔 논점도 흐리고 이야기 흐름이 어색할지 몰라도,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충분히 담았다고 생각한 글이었다. 하지만 공감의 개수와 내가 좋아하는 글은 다르다고 하지 않았는가? 칼럼 페이지를 드나들며 댓글이나 반응을 확인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이 뜨뜻미지근한 반응 속에, 나는 나와 내 글을 재평가하고 그 과정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다. “아, 내가 남들과 좀 많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나?”
그렇게 점점 작아질 무렵, 오랜 기간 연락을 안 하고 지냈던 대학교 친구, 그리고 거의 10년 만에 연락하는 고등학교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도 오랜만이라 문자나 카카오톡이 민망한 사이여서 그런지 모두 인스타나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들의 메시지 내용은 대강 이랬다. 네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으며, 용기를 얻고, 또 스스로를 돌아봤다고 말이다. 누군가는 솔직하게, 누군가는 조금 수줍게 이야기했으나 어찌 됐건 내 글로 ‘좋은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였다. 고맙다는 답변과 함께 다시 글로 들어가 봤다. 여전히 ‘좋아요’ 개수는 적었다. 하지만 뿌듯함과 안도감에 마음이 놓였다.
나의 글과 행보가 당장 누군가가 알아봐 준다거나 화젯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수가 비록 적더라도, 누군가가 나의 글과 행동을 보고 좋은 영향을 받았다면, 그것만큼 감사하고 뿌듯한 일도 없다. 나의 글은 내 골방에 쌓이는 여느 끄적거림과 다르지 않은 글일지라도, 적어도 이 두 명에게는 영감이 되고 나 역시 여기서 스스로에 대한 작은 확신을 갖는다. 조용히 속으로 되뇌어 보았다.
아, 내가 잘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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