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살 때 딸아이에게 특별 교육을 시켜보겠다고 방학을 이용하여 승마를 배우게 한 적이 있다. 승마학교를 보내 놓았는데 아이가 학교에 가서 매일 하는 일이란 분뇨 치우고, 먹이 주고, 털 빗겨주는 일이었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교육을 목격한다면 부모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지만, 그러한 모습을 통해 그 승마학교의 교육 철학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우선 말을 좋아하게 하고 말과 친해지도록 한 다음 말을 타고 뛰게 하는 것이었다. 화려한 승마 이전에 말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승마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젊은이들 사이에 신조어가 유행이다. 가끔 듣다가 깜짝 놀라는 경우도 많다. 전혀 의미를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확~ 줄인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요즈음은 바로 아재가 된다. 그런 줄임말 중에 ‘알쓸신잡’이란 단어가 있다. 이것은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란 말의 줄임말이지만, 이것은 오히려 알아두면 쓸모가 많은 좋은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클래식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아두면 어디에선가 쓸모가 많아 교양과 상식을 겸비한 ‘핵인싸’로 인정받게 되지 않을까? 클래식을 알아가는 최고의 방법은 ‘클래식과 연애하듯이 사귀는 것’이다. 무엇을 알아가는 데는 사랑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사랑하면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이고, 더 알고 싶고, 궁금해진다. 클래식과 연애하듯 지내면 그보다 더 좋은 사귐의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애해야 할까?
첫째, 눈에 띄는 것부터 시작하자.
난 오늘부터 클래식을 알아간다며 작곡자 인명사전부터 뒤지지 말자. 그냥 제일 먼저 생각나는 클래식 곡을 떠올리고 그것부터 시작하기 바란다. 예를 들자면,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차르트의 곡을 듣고, 그것으로부터 시작해 점차 더 많은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알아갈 수 있다. 영화 ‘파리넬리’에 나오는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헨델의 음악 세계를 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처럼 내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클래식을 찾아 그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둘째, 하루에 하나씩만 알아가자.
처음부터 너무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말자. 너무 거창하게 시작하고 욕심을 부리면 금방 지치고 싫증 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표를 낮게 세워야 한다. 하루에 하나씩만 알아간다고 생각하자. 휴대폰 하나면 전 세계의 뉴스나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세상이다. 요즘은 메타버스(metaverse)의 세계까지 다 들어갈 수 있지 않은가? 하루에 한 곡만 들어보자. 그러면서 그 곡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보면 된다. 클래식에 대한 식견을 가졌다는 이들 가운데 처음부터 잘 알고 시작한 사람은 없다. 좋아서 시작했던 것이 하나둘씩 지식과 경험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마니아가 되어버린 경우가 흔하다.
셋째, 긴 음악보다 짧은 음악을 먼저 시작하라(소품곡을 들어라).
바로크 시대나 고전주의 시대로 넘어갈수록 클래식 음악의 연주 시간이 길어진다. 바로크 시대에는 30~50분 정도 하던 연주 시간이 후기 낭만주의로 가면 2시간이 넘어가는 음악도 나타난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988은 약 50분이 소요되며, 모차르트 레퀴엠 K626은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길고 어려운 곡부터 시작하기보다는 짧은 곡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예를 들면 바이올린 줄이 다 끊어지고 G선만 남아서 바이올린 연주자가 그 선만 가지고 연주했다고 해서 ‘G선상의 아리아(Air on the G String; Suite No. 3, BWV1068)’라고 불리는 곡이 있는데, 이것은 연주 시간이 약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넷째, 음악도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
현재 6년 전 시작한 골프에 심취해 있다. 골프 연습장에 나가 연습할 시간이 없으니, 동영상을 보고 스튜디오에서 스윙 연습을 대신한다. 매일 30분 이상을 동영상을 시청하고, 노래 연습하는 스튜디오에서 틈나는 대로 연습한다. 그러다 바닥 카펫을 골프채로 찢기도 했다. 이렇게 노력을 계속하니 이젠 골프 못 친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골프 연습 방법과 기술을 많이 터득하게 됐다. 이제 골프 선수들이 샷을 하면 어떤 샷을 구사했는지 알 수 있는 정도가 되니 골프 경기를 보는 재미도 있다. ‘골프와 성악’을 주제로 강의할 정도로 식견이 많아졌다.
클래식 음악을 알아가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 장르에 대해 알아보고, 장르별로 구분해 보는 것도 좋은 공부 방법이 될 것이다. 클래식 음악은 기악곡과 성악곡으로 나눌 수 있고, 기악은 교향곡, 협주곡, 독주곡이 있고, 성악은 가곡, 오페라, 합창곡이 있다. 장르를 구분하면서 곡을 알아가다 보면 점점 깊고 넓은 클래식의 세계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누구나 ‘소확행(小確幸)’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것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신조어인데,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을 이르는 말이다. 소확행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에세이 ‘랑게르한스 섬의 오후(ランゲルハンス島の午後)’(1986)에 등장하는 말로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나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된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이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뜻한다.
‘소확행’은 덴마크의 ‘휘게(hygge)’나 스웨덴의 ‘라곰(lagom)’, 프랑스의 ‘오캄(au calme)’ 등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덴마크인이 지향하는 삶인 ‘휘게’는 ‘좋아하는 사람과 거실에 앉아 장작불이 탁탁 타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는’ 일상적인 분위기를 일컫는다. ‘오캄’은 고요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뜻하는 것으로 심신이 평온한 상태에서 삶을 여유롭고 편안하게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군 복무 중에는 내가 전역하기만 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리라 다짐하지만, 막상 전역하고 사회에 나와 보면 그런 바람을 이루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먼 미래만 꿈꾸기보다는 지금 내가 처한 현재에서, 거창하고 특별한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주어진 조건과 시간 속에서 소확행을 즐기는 것이 어떨까?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 복무에 힘쓰는 시간에도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클래식을 들으며 ‘소확행’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확행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지금’ 당신 곁에 있다.
필자 하만택 교수는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했고, 독일 쾰른 극장 전속 솔리스트 등을 역임했다. 현재 코리아아르츠그룹 대표 및 벨라비타문화예술원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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