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광고 ‘중요한 질문’ 시리즈
세계 언론자유의 날 맞춰 제작 집행
산림 파괴·흑인 차별 등 경각심 환기
“기자가 질문 않으면 우리도 행동 못해”
언론 역할·신뢰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
언제부턴가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아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누구나 채널을 가지는 1인 미디어 시대라는 특성도 있지만, 기자들이 심층 취재를 열심히 하지 않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은 기자의 본분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고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기자가 의문을 품지 않는다면 고품질 뉴스는 기대하기 어렵다.
‘산림 파괴’ 편. 필자 제공
‘흑인 차별’ 편. 필자 제공
‘이주민 약탈’ 편. 필자 제공
유네스코의 광고 ‘중요한 질문(Questions That Matter)’ 시리즈(2021)에서는 질문하는 기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광고들은 ‘세계 언론자유의 날’에 집행됐다. 모든 광고에서는 ‘왜’라는 의문형 헤드라인을 썼다. 사진은 작게 제시하고 헤드라인을 크게 부각한 카피 위주의 광고다. 보디카피는 없고 헤드라인을 굵은 고딕체로 강조했다. 전체 카피는 알 수 없게 특정 단어를 까맣게 덧칠해서 지웠다. 광고회사 DDB의 프랑스 지사에서 만든 시리즈 광고들을 보자.
‘산림 파괴’ 편을 보면 울창한 산림이 불타고 있어 안타깝다는 마음이 앞설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자랐을 아름드리 나무들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게 됐다. 순식간에 숲이 폐허로 변해버린 것이다. 고딕체로 쓴 헤드라인을 보자. “왜 ( ) 기업들은 ( ) 산림 파괴를 ( )하는 것일까요?” 기업에서 산림을 파괴하는 이유는 많겠지만, 이윤 추구가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흑인 차별’ 편에서는 흑인 여성이 오른손에는 메가폰을 왼손에는 유인물을 들고 있다. 흑인 차별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장면 같다. “왜 ( ) 흑인은 네 가지 ( )에 의해 ( )하는 것일까요?” 헤드라인을 읽다 보면 사진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네 가지의 어떤 기준에 따라 흑인이 차별받는 문제점을 기자들이 취재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주민 약탈’ 편을 보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육지에 도착하는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했다. 그런데 뭍에서는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왜 ( ) 바닷가에서 ( )하다 이주민의 ( )을 빼앗는 것일까요?” 사진과 헤드라인의 메시지는 절망적인 현장을 전해주고 있다. 뭍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노동자를 비롯한 이주민의 물건을 약탈한다는 정황을 엿볼 수 있다.
‘쓰레기 투기’ 편을 보면 황량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 펼쳐진다. 곳곳에 나뒹굴고 있는 쓰레기 더미 쪽으로 어린아이가 발을 딛고 있다. “왜 ( ) 기업들은 ( ) 자사의 ( )를 싣고 ( )에 버리는 것일까요?” 헤드라인에서는 산업 폐기물을 내다 버리고 있는 기업들의 양심을 질타하고 있다. 특정 단어가 까맣게 지워져 있지만 어떤 단어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도록 처리했다.
‘어린이 동영상’ 편에서는 성인의 옷차림을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자 어린이의 모습이 보인다. 떳떳한 상황이라면 얼굴을 조금이라도 보여줄 텐데 얼굴을 전혀 알 수 없다. 헤드라인은 이렇다. “왜 ( )은 어린이 ( ) 동영상의 ( )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요?” 까맣게 지워져 있는 단어 부분이 아동 포르노라는 사실을 누구나 연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광고 카피에서 특정 단어를 까맣게 처리한 부분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수용자 스스로 괄호 안을 채워보라고 시도한 열린 형식의 광고다. 광고의 마지막 부분에는 다음처럼 슬로건을 똑같이 붙였다. “기자들이 질문할 수 없다면 우리도 행동할 수 없다(when journalists can’t ask, we can’t act).” 광고의 핵심 주장인 슬로건에서는 현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기자는 결코 좋은 기사를 쓸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지난 1993년 12월 20일, 유엔은 유네스코의 추천에 따라 매년 5월 3일을 ‘세계 언론자유의 날(World Press Freedom Day)’로 선포했다. 정부의 억압 때문에 언론의 독립성이 위협을 받고,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언론인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2021년에는 ‘공공재로서의 정보(information as a public good)’라는 주제를 채택했다. 공공재 성격인 정보의 소중함을 알리고 언론의 역할을 강화할 방법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콘텐츠의 생산과 배포와 수집에 있어서 투명성과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중요하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정보의 자유에 대해 언론사들도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할 시기가 무르익었다.
“국민의 주권과 언론의 자유는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1805~1859)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언론의 자유는 단순한 권리 이상이며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는 필수 조건이라는 뜻이다. 유네스코 광고에서도 기자가 침묵했을 때 예상되는 개인적·집단적 결과에 대해 날카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기자를 침묵하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침묵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에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다. 물론 세상에는 투철한 기자 정신을 바탕으로 불철주야 땀 흘리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도 많다. 언론에 대한 불신은 보도자료의 내용만 베껴 쓰고 질문하지 않는 일부 기자들의 게으름 때문에 빚어진 결과일 수 있다. 기자의 취재를 억누르고 방해하는 모든 압박 앞에서도 기자들은 투혼을 발휘해야 한다.
세계 언론자유의 날은 언론 전문가들이 언론자유와 직업윤리 문제에 대해 숙고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좋은 기사를 좇다가 목숨을 잃은 기자들을 추모하는 날이기도 하다는 점을 가슴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언론에서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는 뉴스의 품질 향상이다. 언론 보도에서 뉴스의 품질 향상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지 않을까? 고품질 뉴스는 ‘왜’라는 질문에서 나온다. 질문하는 기자들이 많아져 언론에 대한 신뢰가 하루속히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유네스코 광고 ‘중요한 질문’ 시리즈
세계 언론자유의 날 맞춰 제작 집행
산림 파괴·흑인 차별 등 경각심 환기
“기자가 질문 않으면 우리도 행동 못해”
언론 역할·신뢰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
언제부턴가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아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누구나 채널을 가지는 1인 미디어 시대라는 특성도 있지만, 기자들이 심층 취재를 열심히 하지 않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은 기자의 본분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고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기자가 의문을 품지 않는다면 고품질 뉴스는 기대하기 어렵다.
‘산림 파괴’ 편. 필자 제공
‘흑인 차별’ 편. 필자 제공
‘이주민 약탈’ 편. 필자 제공
유네스코의 광고 ‘중요한 질문(Questions That Matter)’ 시리즈(2021)에서는 질문하는 기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광고들은 ‘세계 언론자유의 날’에 집행됐다. 모든 광고에서는 ‘왜’라는 의문형 헤드라인을 썼다. 사진은 작게 제시하고 헤드라인을 크게 부각한 카피 위주의 광고다. 보디카피는 없고 헤드라인을 굵은 고딕체로 강조했다. 전체 카피는 알 수 없게 특정 단어를 까맣게 덧칠해서 지웠다. 광고회사 DDB의 프랑스 지사에서 만든 시리즈 광고들을 보자.
‘산림 파괴’ 편을 보면 울창한 산림이 불타고 있어 안타깝다는 마음이 앞설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자랐을 아름드리 나무들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게 됐다. 순식간에 숲이 폐허로 변해버린 것이다. 고딕체로 쓴 헤드라인을 보자. “왜 ( ) 기업들은 ( ) 산림 파괴를 ( )하는 것일까요?” 기업에서 산림을 파괴하는 이유는 많겠지만, 이윤 추구가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흑인 차별’ 편에서는 흑인 여성이 오른손에는 메가폰을 왼손에는 유인물을 들고 있다. 흑인 차별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장면 같다. “왜 ( ) 흑인은 네 가지 ( )에 의해 ( )하는 것일까요?” 헤드라인을 읽다 보면 사진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네 가지의 어떤 기준에 따라 흑인이 차별받는 문제점을 기자들이 취재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주민 약탈’ 편을 보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육지에 도착하는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했다. 그런데 뭍에서는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왜 ( ) 바닷가에서 ( )하다 이주민의 ( )을 빼앗는 것일까요?” 사진과 헤드라인의 메시지는 절망적인 현장을 전해주고 있다. 뭍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노동자를 비롯한 이주민의 물건을 약탈한다는 정황을 엿볼 수 있다.
‘쓰레기 투기’ 편을 보면 황량하기 짝이 없는 장면이 펼쳐진다. 곳곳에 나뒹굴고 있는 쓰레기 더미 쪽으로 어린아이가 발을 딛고 있다. “왜 ( ) 기업들은 ( ) 자사의 ( )를 싣고 ( )에 버리는 것일까요?” 헤드라인에서는 산업 폐기물을 내다 버리고 있는 기업들의 양심을 질타하고 있다. 특정 단어가 까맣게 지워져 있지만 어떤 단어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도록 처리했다.
‘어린이 동영상’ 편에서는 성인의 옷차림을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자 어린이의 모습이 보인다. 떳떳한 상황이라면 얼굴을 조금이라도 보여줄 텐데 얼굴을 전혀 알 수 없다. 헤드라인은 이렇다. “왜 ( )은 어린이 ( ) 동영상의 ( )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요?” 까맣게 지워져 있는 단어 부분이 아동 포르노라는 사실을 누구나 연상할 수 있을 것 같다.
광고 카피에서 특정 단어를 까맣게 처리한 부분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수용자 스스로 괄호 안을 채워보라고 시도한 열린 형식의 광고다. 광고의 마지막 부분에는 다음처럼 슬로건을 똑같이 붙였다. “기자들이 질문할 수 없다면 우리도 행동할 수 없다(when journalists can’t ask, we can’t act).” 광고의 핵심 주장인 슬로건에서는 현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 기자는 결코 좋은 기사를 쓸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지난 1993년 12월 20일, 유엔은 유네스코의 추천에 따라 매년 5월 3일을 ‘세계 언론자유의 날(World Press Freedom Day)’로 선포했다. 정부의 억압 때문에 언론의 독립성이 위협을 받고,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언론인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2021년에는 ‘공공재로서의 정보(information as a public good)’라는 주제를 채택했다. 공공재 성격인 정보의 소중함을 알리고 언론의 역할을 강화할 방법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콘텐츠의 생산과 배포와 수집에 있어서 투명성과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중요하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정보의 자유에 대해 언론사들도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할 시기가 무르익었다.
“국민의 주권과 언론의 자유는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1805~1859)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언론의 자유는 단순한 권리 이상이며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는 필수 조건이라는 뜻이다. 유네스코 광고에서도 기자가 침묵했을 때 예상되는 개인적·집단적 결과에 대해 날카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기자를 침묵하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침묵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에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다. 물론 세상에는 투철한 기자 정신을 바탕으로 불철주야 땀 흘리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기자들도 많다. 언론에 대한 불신은 보도자료의 내용만 베껴 쓰고 질문하지 않는 일부 기자들의 게으름 때문에 빚어진 결과일 수 있다. 기자의 취재를 억누르고 방해하는 모든 압박 앞에서도 기자들은 투혼을 발휘해야 한다.
세계 언론자유의 날은 언론 전문가들이 언론자유와 직업윤리 문제에 대해 숙고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좋은 기사를 좇다가 목숨을 잃은 기자들을 추모하는 날이기도 하다는 점을 가슴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언론에서 가장 시급한 당면 과제는 뉴스의 품질 향상이다. 언론 보도에서 뉴스의 품질 향상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지 않을까? 고품질 뉴스는 ‘왜’라는 질문에서 나온다. 질문하는 기자들이 많아져 언론에 대한 신뢰가 하루속히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