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곽재식 조명탄] DNA의 비밀을 파헤친 매클린톡, 그 삶의 굽이굽이

입력 2021. 07. 08   16:54
업데이트 2021. 07. 0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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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작가·공학박사
곽재식 작가·공학박사


모든 생물은 몸속에 DNA라는 가늘고 기다란 물질을 갖고 있다. DNA는 몸속에서 화학 반응을 일으켜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생물마다 DNA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단백질도 서로 달라진다. 그렇게 다른 단백질들이 생물의 몸을 이루므로, 생물은 서로 다른 외모와 체질을 갖게 된다.

이 원리는 현대 생물학의 기본이다. 너무나 중요한 원리라서 어떤 사람들은 이 원리를 생물학의 ‘중심 교리’라고 부른다. 코로나19 검진에 사용하는 PCR 검사 기법도 중심 교리에 바탕을 둔 DNA 연구가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이후 DNA의 상세한 내용을 모두 파악하게 되자, 학자들은 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중심 교리에 따라 평범하게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는 DNA는 전체 DNA의 극히 일부밖에 되지 않았다. DNA 중에 평범하게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는 부분은 전체의 2%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DNA의 대부분인 98%는 도대체 왜 거기에 붙어 있는지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 부분은 아무 화학 반응도 못 일으키면서 쓸모없이 붙어 있는 것 같이 보여서, 쓰레기 DNA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비교적 최근 들어서야 그 쓰레기 DNA에도 나름대로 여러 가지 특이한 기능과 역할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쓰레기 DNA 부분에 뛰어다니는 유전자(jumping gene)라고 하는 특이한 유전자가 포함된 경우가 있다. 뛰어다니는 유전자는 보통 때는 아무 역할이 없는 DNA의 한 부분인 것 같지만, 가끔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와 DNA의 다른 부분에 달라붙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멀쩡한 다른 DNA의 모양이 바뀌니 결국 생물의 모습도 바뀐다.

뛰어다니는 유전자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학자는 바버라 매클린톡이라고 하는 미국 농학자다. 매클린톡은 가정 형편 때문에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는 농대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도 옥수수 품종의 특징에 대해 연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옥수수의 세포를 현미경으로 살피며 유전자에 대해 세밀히 연구했고, 옥수수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유전의 원리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하며 명성을 떨쳤다. 특히 아직 DNA가 어떻게 생겼는지 밝혀지지도 않았던 1950년대 초에 뛰어다니는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경이로운 성과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의 삶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30대 초에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유전자 연구 전문가로 알려졌지만 마침 불경기를 만나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웠다. 겨우 교수 자리를 얻은 후에는 몇 년 만에 불화로 학교를 떠나게 됐다. 이후, 같이 일했던 동료들 덕분에 작은 연구소의 옥수수 연구 담당자 자리를 얻기는 했지만, 잘나가던 학자가 몰락했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옥수수 연구를 계속해 50대 무렵에 뛰어다니는 유전자를 발견한 것인데, 그때도 황당한 이야기라며 조롱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매클린톡이 재평가 받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였고 80세가 넘어서야 노벨상을 수상했다. 한때 촉망받던 젊은 학자가 삶의 바닥을 치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후에도 계속 버티며 전진할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번 여름 옥수수를 먹을 일이 있다면, 생명의 가장 풀기 어려웠던 비밀을 옥수수에서 찾아낸 매클린톡을 생각하며 같이 고민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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