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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중요한 건 재능보다 끈기와 열정” 이 악물고…어른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입력 2021. 06. 28   16:40
업데이트 2021. 06. 2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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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그릿(GRIT) 광고


네슬레 마일로 광고 ‘그릿’ 가치 강조
자녀 교육열 높은 말레이시아서 집행
성장·회복탄력성 등 가리키는 ‘그릿’
부모들의 성적 중심 인식 전환 시도

‘그릿(GRIT)’ 캠페인을 담은  네슬레의 마일로 광고. 영어에서 이를 악문다고 말할 때 ‘grit’이라는 동사를 쓰기도 하며, 불굴의 의지 같은 명사로도 쓰인다. 위부터 시계 방향 ‘댄스’ ‘환호’ ‘축구’ 편 (2020).    필자 제공
‘그릿(GRIT)’ 캠페인을 담은 네슬레의 마일로 광고. 영어에서 이를 악문다고 말할 때 ‘grit’이라는 동사를 쓰기도 하며, 불굴의 의지 같은 명사로도 쓰인다. 위부터 시계 방향 ‘댄스’ ‘환호’ ‘축구’ 편 (2020). 필자 제공

흙수저나 금수저. 팍팍한 현실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는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청년들이 태어난 배경 탓만 하고 체념하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자신의 끈기와 열정을 포기하는 삶의 태도이니까. 불굴의 의지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서 성공하는 사람도 많다. 선천적인 배경이나 지능보다 열정과 끈기가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집행된 네슬레의 마일로 광고에서 그릿(GRIT)의 가치를 생각해보자.

네슬레의 마일로(Milo) 광고 ‘축구’ 편(2020)을 보면 철망 뒤쪽에 여러 어린이가 모여 어떤 운동을 하고 있다. 모든 시선이 위를 향하고 있으니 아마도 배구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철망 앞쪽에서는 한 어린이가 선생님에게 축구 개인지도를 받고 있다. 사진 옆에 제시된 헤드라인은 이렇다. “내일의 전문가들에게 오늘 그릿을 가르치세요.” 헤드라인에 이어 보디카피를 이렇게 썼다. “72퍼센트가 미래의 성공을 아이들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학교와 대학에서 인내심과 목적의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학교 교육을 간접적으로 질타하는 내용이다.

이어지는 ‘댄스’ 편(2020)에서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생들이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있다. 결코, 잘 꾸며진 무대는 아니다. 학생들은 도시의 건물 앞에 있는 공간에서 마음껏 댄스를 하고 있다. 헤드라인은 이렇다. “열정적인 아이는 결국 만회하게 됩니다.” 아이의 잠재력에 주목하라는 헤드라인 아래쪽에는 별도로 칸을 만들어 보디카피를 이렇게 제시했다. “54퍼센트가 실생활의 문제에 대처하도록 아이를 성장시키는 데 그릿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역동적인 사진과 카피가 어우러지자 춤추는 아이들의 미래가 더 빛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의 ‘환호’ 편(2020)에서는 동이 트는 새벽녘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기지개를 켜는 여학생의 뒷모습이 보인다. 앞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순간에 나올 수 있는 자세이다. 이 순간이 학생의 빛나는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릿은 개성을 만듭니다. 개성은 성공을 만듭니다.” 이 헤드라인에 이어지는 보디카피는 다음과 같다. “93퍼센트가 실생활의 문제에 대처하고 성공하는 데 필요한 개성을 갖추는 데 그릿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개성과 성공을 만드는 원천이 그릿이라는 핵심 주장은 사진과도 잘 어울린다.

광고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그릿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가 10년여에 걸쳐 연구한 끝에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재능이 아닌 ‘그릿(Grit)’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유명해진 말이다. 버락 오바마나 빌 게이츠 같은 유명인들도 긍정 심리학의 연구 주제인 그릿에 대해 극찬했다. 연구자는 성인의 교육 성취도, 아이비리그 대학생의 성적 평점, 미국 육사 생도의 중퇴율, 영어철자 말하기 대회의 순위를 바탕으로 성공 가능성을 지능이나 재능보다 더 잘 예측할 수 있는 심리 특성을 발견하고 그릿을 개념화했다.

더크워스는 장기적 목표에 대한 끈기와 열정(perseverance and passion for long-term goals)이 그릿이라고 정의했다. 영어로 이를 악문다고 말할 때 보통 그릿(grit)이란 동사를 쓰는데 불굴의 의지, 투지, 집념 같은 명사로도 쓸 수 있겠다. 더크워스는 그릿이 높은 사람들은 실패와 역경을 겪으면서도 오랫동안 끈기와 열정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가지는 특별한 한 가지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끈기와 열정으로 꾸준히 버텨 마침내 목표를 성취한다는 것. 그릿과 관련되는 심리학적 개념은 인내, 강인함, 회복탄력성, 야망, 성취동기 따위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 부모들도 자녀 교육열이 높다. 광고에서는 좋은 성적이 자녀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 것이라고 믿는 부모들의 인식을 바꾸고자 했다. 네슬레의 마일로는 우유나 물에 풀어 먹는 초콜릿 혼합 분말을 통칭하는 브랜드로,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시판되고 있다. 광고에서는 초콜릿 혼합 분말의 특성을 전혀 내세우지 않고 자녀에게 그릿이 필요하다고 은연중에 강조했다. 마일로를 먹고 안 먹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광고의 오른쪽 하단에 마일로의 브랜드 로고를 넣은 것 빼고는 판매 메시지를 철저히 숨겼다. 결국 광고에서는 자녀의 파트너로서 그릿을 키워주는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며 사회 캠페인을 시도한 셈이다.

그릿의 의미를 보다 폭넓게 확장해볼 수 있으리라. 성장(Growth), 회복탄력성(Resilience),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라는 심리적 특성이 모이면 그릿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우리말로 번역된 『그릿』(2016)을 보면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평범한 지능이나 재능을 가진 사람도 열정적 끈기를 잃지 않으면 지능과 재능과 환경을 극복하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속어인 ‘존버 정신’은 완전히 똑같은 의미는 아니겠지만 그릿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터.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사자성어는 그릿의 반대말쯤 되겠다.

끈기와 열정은 결국 꿈을 이루게 하는 강인한 정신력이다. 흙수저나 금수저 같은 말을 자조적으로 내뱉는 이유를 알고 있다. 필자 역시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못했기에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언제까지 수저 타령만 하고 있을 것인가? 좌절만 하고 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왜 스스로 헤쳐나가겠다는 끈기도 열정도 없는가? 흙수저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말은 옹색한 변명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학습이나 훈련을 통해서라도 젊은이들이 누구 도움을 받지 않고 앞날을 개척하겠다는 끈기와 열정을 가졌으면 싶다. 그릿의 깊은 뜻을 되새김질하기 바란다. 지능이나 재능보다 중요한 것이 열정과 끈기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사소한 일에도 툴툴거리면서 말로만 ‘존버 정신’을 내뱉지 말고, 좌절감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신의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기를 바란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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