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국방안보

[6.25전쟁 71주년 특집 -서울에 남은 전쟁의 흔적] 희미해지는 비극의 상처...기억해야 할 뼈아픈 역사

이주형

입력 2021. 06. 24   16:38
업데이트 2021. 06. 24   16:49
0 댓글
서울수복작전 전투 현장인 서울역
육본 전방지휘소였던 쌍문파출소
고아 자활시설 있던 이마트 천호점…
수방사 집계 전쟁상흔유적 70여 곳

안내표지판조차 없는 곳 아직 많고
있더라도 너무 오래돼 미관 해쳐
최근 안보교육장 활용 움직임

서울시, 격전 상흔지 50곳 선정
내년까지 31곳 안내판 설치키로

흑석동 전투는 전쟁 초기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킨 대표적 전투였다. 지난해 8월 동작구 효사정 공원에 설치된 안내표지판은 그 내용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흑석동 전투는 전쟁 초기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시킨 대표적 전투였다. 지난해 8월 동작구 효사정 공원에 설치된 안내표지판은 그 내용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화려한 빌딩이 숲을 이루고 첨단 편의시설이 곳곳에 자리 잡은 세계적 대도시 서울. 하지만 70여 년 전 이곳은 격전의 현장이었고 도무지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전쟁의 상흔이 가득한 장소였다. 6·25전쟁 71주년을 맞아 이제는 사람들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서울 속 전쟁의 흔적을 찾아봤다. 글=이주형/사진=양동욱 기자



서울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명동.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종합패션쇼핑몰 밀리오레 건물이 서 있다. 이 건물은 우리 군, 그중에서도 특히 해군과 인연이 깊다. 6·25가 끝난 1953년 8월 해군본부가 자리 잡았으며 그 이전 해군이 정식 발족하고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6월 27일 수원으로 이동하기 전까지도 본부로 사용됐던 장소로 추정되기 때문이다(최초의 해군본부는 영등포구 신길7동). 이곳을 지나던 회사원 신성원(39) 씨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밀리오레가 이런 곳인 줄 전혀 몰랐다”며 “건물 자체가 역사인데 어디에도 그런 설명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구)서울역 전경. 서울 수복 당시 광장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구)서울역 전경. 서울 수복 당시 광장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6·25는 서울 도처에 수많은 상흔을 남겼다. 그중에는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도 있었고, 고귀한 희생이 이뤄진 전사지(戰死地)도 있었다. 부대·기관이 위치했던 곳, 국난 극복의 결의를 다졌던 역사적 현장, 참담한 비극의 공간도 존재했다. 이 모두를 합한 전체의 수가 얼마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추산해볼 만한 수치는 있다. 육군수도방위사령부가 지난 2019년 1월부터 3개월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70여 곳에 이른다. 수방사는 이를 위해 전쟁상흔유적발굴 태스크포스(TF)를 운영했다. TF는 국가보훈처와 독립기념관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발굴한 6·25 사적지를 토대로 추가 연구 및 탐문 조사를 통해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상흔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봉역 건너편의 워커 장군 전사지.
도봉역 건너편의 워커 장군 전사지.

한때 공전의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무대였던 도봉구 쌍문동. 이 공간에는 육군본부 전방지휘소 및 의정부지구전투사령부가 있었다. 개전 초기 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지휘소로 당시 그 앞은 의정부에서 창동으로 이르는 유일한 도로였다. 현재는 그 자리를 쌍문파출소가 차지하고 있다.

서울역은 1950년 9월 18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 서울수복작전 당시 치열한 시가지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한강 노들섬은 1951년 1·4 후퇴 때 민간인이 한강 도하 시 이용했던 부교가 설치됐다. 경복궁에서는 수도사수 결의 및 서울 환도식이 거행됐다.

정동 중앙방송국(덕수초교)은 어떠한가. 김현수 대령의
서울수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해병대의 연희104고지 전적 기념비.
서울수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해병대의 연희104고지 전적 기념비.
전사지였다. 그는 전쟁 발발 후 전황과 군 관계 보도에 대한 일원화 방침에 따라 6월 28일 보도책임자로서 북한군이 방송국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방송기자재를 폭파하러 갔다가 이미 잠입해 있던 적병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강동구의 이마트 천호점은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고아들의 자활시설인 에덴모자원이 있던 곳이다. 전쟁 중 부상으로 하반신 마비 장애를 지녔던 김기인 예비역 대령이 설립, 전쟁 유족 300여 세대를 수용하고 직업교육을 통해 자립을 지원했다.

그러나 이러한 각각의 사연을 알려주는 시설은 쉽게 찾기 힘들다. 물어볼 만한 이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관심을 가진 사람만 찾고, 그 숫자도 점점 줄어들어 아쉬움을 더한다.
‘단장의 미아리고개’의 노래 기념물. 고개는 애국인사의 납북로이기도 했다.
‘단장의 미아리고개’의 노래 기념물. 고개는 애국인사의 납북로이기도 했다.

안내표지판이 설치된 곳도 있긴 하다. 맥아더 장군의 한강방어선 시찰지(영등포공원), 미아리·길음교·중랑교 전투지 및 미아리고개(애국인사 납북로), 제68적십자병원 터(이탈리아의무대 활동지·우신초등학교) 등이 그러한 경우다. 하지만 대부분의 표지판이 마주쳐도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일 정도로 찾기 힘들다. 또 오래되어 미관상 좋지 않고 자료에 미흡한 면이 있어 보완의 필요성이 있다. 다행히 이와 같은 현실을 인식하고 이를 재조명, 안보교육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6·25 70주년을 맞아 육군수도방위사령부와 협력해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6·25전쟁 격전 상흔지’ 50곳을 선정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표석이나 안내표지판이 없는 31곳에 2022년까지 안내표지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월 한강방어선 노량진 전투지(사육신묘공원), 한강방어선 흑석동 전투지(효사정공원), 함준호 대령 전사지(강북구 우이동 연경빌라) 3곳을 현충시설로 지정하고 안내표지판을 설치했다.
“상관이 철수명령을 내릴 때까지 지키겠다”는 답변에 감동, 지원을 약속했다는 맥아더 장군의 한강방어선 시찰지.
“상관이 철수명령을 내릴 때까지 지키겠다”는 답변에 감동, 지원을 약속했다는 맥아더 장군의 한강방어선 시찰지.

조소앙·원세훈 등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는 동안 미처 탈출하지 못한 저명인사를 감금한 애국인사 구금지(예금보험공사)와 전쟁 당시 징병업무를 담당했던 서울지구 병사구사령부 터(종로구 타워8 빌딩) 2곳도 이달 내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나머지도 진행 중이다.

계획은 이렇듯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고개들이 있다. 특히 동의 여부가 그러하다.

국가보훈처 최정식 소통총괄팀장은 “안보 및 사료적 가치가 인정된다는 상당한 제안이 있으면 심의위원회를 열어 현충시설로 지정해 안내표지판을 설치 관리할 수 있다”면서 “해당 시설이나 부지 소유자의 동의는 필수”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사유지에서 이와 같은 동의가 이뤄지지 않을 때 발생한다. 그 대상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나 다수의 소유주로 이뤄진 경우 서로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의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동의하더라도 조건부로 요구할 수도 있다.

지방자치단체나 관공서 같은 공공기관은 민간과 비교하면 동의가 수월한 편이나 예산 등 현실적인 지원에서 어려움이 있다. 사유지는 안내표지판 설치가 중앙정부 지원으로 이뤄진다. 이에 반해 공공기관은 자체 예산으로 해결해야 한다. 다들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실적 제한이 있어 힘들긴 마찬가지인 셈이다.
전쟁 초기 육군전방지휘소이자 의정부지구 전투사령부 터였던 쌍문파출소.
전쟁 초기 육군전방지휘소이자 의정부지구 전투사령부 터였던 쌍문파출소.

서울 곳곳에 남아 있는 전쟁의 흔적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또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제각각이지만 후대까지 보존하고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산물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6·25를 맞는 지금, 비극의 상처인 동시에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존재인 상흔에 모두의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터뷰] 갈준선 서울시 비상기획관
“테마별 상흔지 묶어 안보관광프로그램 개발”

“이미 많은 6·25의 흔적들이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도시 개발 등으로 사라졌습니다. 더 늦지 않게 그 상흔들을 발굴해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이를 역사·안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갈준선 서울시 비상기획관은 2년 차에 들어선 6·25전쟁상흔보존사업의 목표를 이같이 설명했다.

이 사업은 2018년 서울시장과 육군수도방위사령관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다가오는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업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수방사는 격전·상흔지 50곳을 찾아 서울시에 제공했던 것. 서울시는 넘겨받은 자료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와 서울관광재단의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확인했다. 이어 소유자와 관리자를 만나 현충시설 신청을 안내, 독려하면서 표지판 설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남은 과제는 주어진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것.

갈 기획관은 “몇몇 방안을 강구 중”이라며 “우선 ‘전쟁의 비참함’이나 ‘용기’ 등 각각의 테마를 선정한 뒤 이에 맞춰 관련이 있는 상흔지들을 묶어 여러 개의 코스로 이뤄진 안보관광 프로그램으로 개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갈 기획관은 이와 함께 서울수복기념관(가칭)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동작주차근린공원에 지상 3층, 지하 1층, 연면적 2800㎡ 규모로 계획 중인 기념관은 2024년 9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연희고지 전투 등 서울수복과정과 전쟁 기간 서울시민들의 생활상이 구현될 예정이다. 또 열린 추모공간으로 활용하는 한편 한강변을 따라 조성된 보행네트워크 및 현충원 등 주변과도 연계한 상설 탐방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기념관 건립안은 현재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 심의 중이다. 이주형 기자



이주형 기자 < jataka@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