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OCS 출신 임관 동기 시인 3인
30년 전 청년 장교 중년 되어 의기투합
군 시절 열정·전역 후 삶 등 시에 담아
“시 쓰는 문화가 군에 정착되길 바래”
해요미디어 펴냄
시집 ‘파도가 하늘을 쏟아낼 때’를 발간한 예비역 해군장교 출신 조영필, 조성식, 임경순(왼쪽부터) 작가가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국방일보 인터뷰를 위해 모였다. 이들은 OCS(해군사관후보생) 80차로 1988년 임관한 동기들이다.
‘제대 무렵 BOQ에서 우리의 즐거움은 막 구입한 프린터에 자작시 인쇄를 걸어놓는 것이었다. 그러면 잉크젯 프린터는 밤새 그 명령을 드륵 드르륵 수행하였다. 아침이면 인쇄된 두루마리가 작업 완료를 보고한다.’
서문에 실린 시인의 말 일부다. 30여 년 전 군복을 입고 시를 이야기하던 이들은 그 시절도 시 쓰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았나 보다. ‘파도가 하늘을 쏟아낼 때’는 임경순 한국외국어대 교육대학원 교수, 조성식 블루잉크 싱어송라이터 작가, 조영필 경영지도사가 함께 집필한 시집. 세 사람은 OCS(해군사관후보생) 80차로 1988년 임관한 동기들(그래서 책값도 8800원이다)이다. 시를 쓴다는 공통분모로 뭉쳤던 청년 장교들이 중년의 나이에 다시 의기투합해 시집을 발표한 것이다. 시집은 1·2부로 나뉘는데 1부는 해군 시절의 꿈과 열정을, 2부는 전역 후 30년간 삶의 현장에서 체험한 희로애락을 담았다.
“저(조영필)는 주로 구축함을 타고 먼바다로 항해를 나갔고요, 임 교수는 항구에 정박하며 출동대기를 했어요. 조 작가는 근해를 누비는 배를 탔죠. 그렇게 조금씩 다른 체험이 시에도 그대로 녹아있는 것 같아요. 조합이 참 좋다고 할까요.”
닮은 듯 다른 이들의 시 일부를 살펴보면 ‘호젓한 호각 소리 쏟아지는가/안개 속으로 사그라진 햇살 사이로//시를 쓰는 시인으로 살고자 한/보급관 조 중위가 당직을 서고 있을 구축함 충남함에도(임경순 ‘군항의 아침’ 중)’, ‘때로 오랜 벗 바람을 만날 때면/산맥처럼 배를 부풀려/사람들에게 용기도 나눠주면서//바다는 침묵의 노래로 떠나간다’(조성식 ‘바다’ 중에서), ‘한 갈매가 소나무 벼랑 위를 오르면/무리지어 따라 오른다/그대 버려진 배가 없었더라면/이 내 버려진 몸은 얼마나 더 서러웠을 것인가(조영필 ‘쓰지 않는 배’ 중에서)’.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시인들이 불러준 바다의 노래는 생생한 현장감과 힘겨운 기억을 복원해낸 셈이고, 이들은 생의 불모성과 싸우며 생을 회복하고 치유하려는 열망과 의지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 준 것’이라고 평했다.
“저희가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 아니라 시집을 낼 생각도 못했고 자신도 없었죠. 그런데 2018년 0CS 80차 30주년 모임에서 만나 조심스럽게 얘기가 됐고 나는 잊고 있던 시가 편지로 전해져 친구가 간직하고 있는 것도 발견되고 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출간까지 하게 됐어요. 특히 최근 쓴 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그냥 나이 먹은 게 아니라 잘 익었구나 싶었습니다.”
그중 특히 코로나를 함께 지나고 있는 우리네 평범한 일상을 그려낸 임 교수의 시가 마음에 와 닿았다고 입을 모았다.
‘나는 어머니를 불렀다/그냥 가셨다/나는 다시 어머니를 크게 불렀다/장모님은 마스크와 흰머리 사이로 유난히 주름진 이마에/환하게 웃으시는 얼굴을 보여주셨다//속이 꽉 찬 배추를 손수레에 끌고 가시는 장모님의 뒷모습은/굽잇길보다 흔들렸다(임경순 ‘장모님의 손수레’ 중에서)’
“조성식 작가 시는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매혹적이라고 느꼈어요. 반면 임경순 교수 시는 너무 밋밋하고 맹물 같아서 평가 절하 했었죠.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게 좋더라고요. 은은하고 따뜻한 그런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 거죠.”
이번 시집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조성식 작가가 큰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 검찰을 말하다’ 등 책도 여러 권 낸 기자 출신에 출판, 작곡, 온라인콘텐츠 개발 등 전방위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지 힘들었죠. 해군이라는 색을 빼고 일반적인 서정시집 느낌으로 갈까 하는 고민도 했었고요. 코로나 상황이라 시를 추리고 콘셉트를 잡는 과정에서 화상회의도 여러 번 거쳤습니다. 결국 해군 출신이라는 걸 전면에 내세우고 표지 그림에도 군함이 들어갔는데 우리 시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라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내내 서로 어긋한 기억 조각에 티격대다가도 시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이 빛나고 시집을 앞에 두고 설레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는 중년의 시인들을 보며 “시를 쓰는 문화가 정착돼 전 군이 시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임경순 교수의 바람에 한 표를 던지고 싶어졌다. 글=박지숙/사진=한재호 기자
해군 OCS 출신 임관 동기 시인 3인
30년 전 청년 장교 중년 되어 의기투합
군 시절 열정·전역 후 삶 등 시에 담아
“시 쓰는 문화가 군에 정착되길 바래”
해요미디어 펴냄
시집 ‘파도가 하늘을 쏟아낼 때’를 발간한 예비역 해군장교 출신 조영필, 조성식, 임경순(왼쪽부터) 작가가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국방일보 인터뷰를 위해 모였다. 이들은 OCS(해군사관후보생) 80차로 1988년 임관한 동기들이다.
‘제대 무렵 BOQ에서 우리의 즐거움은 막 구입한 프린터에 자작시 인쇄를 걸어놓는 것이었다. 그러면 잉크젯 프린터는 밤새 그 명령을 드륵 드르륵 수행하였다. 아침이면 인쇄된 두루마리가 작업 완료를 보고한다.’
서문에 실린 시인의 말 일부다. 30여 년 전 군복을 입고 시를 이야기하던 이들은 그 시절도 시 쓰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았나 보다. ‘파도가 하늘을 쏟아낼 때’는 임경순 한국외국어대 교육대학원 교수, 조성식 블루잉크 싱어송라이터 작가, 조영필 경영지도사가 함께 집필한 시집. 세 사람은 OCS(해군사관후보생) 80차로 1988년 임관한 동기들(그래서 책값도 8800원이다)이다. 시를 쓴다는 공통분모로 뭉쳤던 청년 장교들이 중년의 나이에 다시 의기투합해 시집을 발표한 것이다. 시집은 1·2부로 나뉘는데 1부는 해군 시절의 꿈과 열정을, 2부는 전역 후 30년간 삶의 현장에서 체험한 희로애락을 담았다.
“저(조영필)는 주로 구축함을 타고 먼바다로 항해를 나갔고요, 임 교수는 항구에 정박하며 출동대기를 했어요. 조 작가는 근해를 누비는 배를 탔죠. 그렇게 조금씩 다른 체험이 시에도 그대로 녹아있는 것 같아요. 조합이 참 좋다고 할까요.”
닮은 듯 다른 이들의 시 일부를 살펴보면 ‘호젓한 호각 소리 쏟아지는가/안개 속으로 사그라진 햇살 사이로//시를 쓰는 시인으로 살고자 한/보급관 조 중위가 당직을 서고 있을 구축함 충남함에도(임경순 ‘군항의 아침’ 중)’, ‘때로 오랜 벗 바람을 만날 때면/산맥처럼 배를 부풀려/사람들에게 용기도 나눠주면서//바다는 침묵의 노래로 떠나간다’(조성식 ‘바다’ 중에서), ‘한 갈매가 소나무 벼랑 위를 오르면/무리지어 따라 오른다/그대 버려진 배가 없었더라면/이 내 버려진 몸은 얼마나 더 서러웠을 것인가(조영필 ‘쓰지 않는 배’ 중에서)’.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시인들이 불러준 바다의 노래는 생생한 현장감과 힘겨운 기억을 복원해낸 셈이고, 이들은 생의 불모성과 싸우며 생을 회복하고 치유하려는 열망과 의지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 준 것’이라고 평했다.
“저희가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 아니라 시집을 낼 생각도 못했고 자신도 없었죠. 그런데 2018년 0CS 80차 30주년 모임에서 만나 조심스럽게 얘기가 됐고 나는 잊고 있던 시가 편지로 전해져 친구가 간직하고 있는 것도 발견되고 하면서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며 출간까지 하게 됐어요. 특히 최근 쓴 시를 읽으면서 우리가 그냥 나이 먹은 게 아니라 잘 익었구나 싶었습니다.”
그중 특히 코로나를 함께 지나고 있는 우리네 평범한 일상을 그려낸 임 교수의 시가 마음에 와 닿았다고 입을 모았다.
‘나는 어머니를 불렀다/그냥 가셨다/나는 다시 어머니를 크게 불렀다/장모님은 마스크와 흰머리 사이로 유난히 주름진 이마에/환하게 웃으시는 얼굴을 보여주셨다//속이 꽉 찬 배추를 손수레에 끌고 가시는 장모님의 뒷모습은/굽잇길보다 흔들렸다(임경순 ‘장모님의 손수레’ 중에서)’
“조성식 작가 시는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매혹적이라고 느꼈어요. 반면 임경순 교수 시는 너무 밋밋하고 맹물 같아서 평가 절하 했었죠.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게 좋더라고요. 은은하고 따뜻한 그런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 거죠.”
이번 시집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조성식 작가가 큰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 검찰을 말하다’ 등 책도 여러 권 낸 기자 출신에 출판, 작곡, 온라인콘텐츠 개발 등 전방위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지 힘들었죠. 해군이라는 색을 빼고 일반적인 서정시집 느낌으로 갈까 하는 고민도 했었고요. 코로나 상황이라 시를 추리고 콘셉트를 잡는 과정에서 화상회의도 여러 번 거쳤습니다. 결국 해군 출신이라는 걸 전면에 내세우고 표지 그림에도 군함이 들어갔는데 우리 시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라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내내 서로 어긋한 기억 조각에 티격대다가도 시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이 빛나고 시집을 앞에 두고 설레는 모습을 감추지 못하는 중년의 시인들을 보며 “시를 쓰는 문화가 정착돼 전 군이 시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임경순 교수의 바람에 한 표를 던지고 싶어졌다. 글=박지숙/사진=한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