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Ⅱ

강대국 전쟁에 무관심…전쟁 유적 찾기 힘들어

입력 2021. 03. 31   16:30
업데이트 2021. 03. 3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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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모로코 ①
 
명화 ‘카사블랑카’로 세계적 관심
미군 북아프리카 상륙 ‘횃불작전’
기념관이나 표지석 등 전혀 없어

 

국민 성금으로 1993년 완공된 카사블랑카 관광명소 ‘하산 2세 모스크’. 세계 3번째 규모로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필자 제공
국민 성금으로 1993년 완공된 카사블랑카 관광명소 ‘하산 2세 모스크’. 세계 3번째 규모로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필자 제공

아프리카 서북쪽의 모로코 왕국(Kingdom of Morocco)은 인구 3734만 명, 국토 넓이 44만6000㎢, 국민소득은 연 3200달러 수준이다. 수도는 라바트(Rabat)지만 카사블랑카(Casablanca)가 인구 330만 명으로 가장 큰 도시다. 동으로는 알제리, 남으로는 서사하라와 국경을 접하며 북부도시 세우타와 멜리야는 스페인령이다. 모로코군 병력은 26만6800명(육군 18만5800, 해군 4만2000, 공군 1만3000, 헌병군 2만3000, 왕실근위대 3000)이며 알제리와는 영토 분쟁, 서사하라 독립세력과는 전투가 종종 벌어진다. 도서관할권 문제로 스페인과도 가끔 해상무력충돌이 있다.


열정적인 지한(知韓)파 택시 기사와의 요금 흥정

‘모로코(Morocco)’와 ‘모나코(Monaco)’는 구분하기 어려운 국가명이다. 프랑스 남부의 모나코는 바티칸 시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영토가 작다. 한국 1개 동 규모인 모나코는 모로코와는 전혀 다른 국가이다.

카사블랑카 무함마드 5세 국제공항은 카이로공항보다 훨씬 깔끔하다. 푸른 수목과 바다가 보이는 주변 환경이 사막 한가운데의 황량한 카이로공항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공항청사에서 도시 열차를 타면 카사블랑카 중앙역까지 30분 걸린다. 기차역 승강장을 빠져나오자마자 택시 기사들이 몰려든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키 큰 대머리 운전사와 흥정을 시작했다. ‘슈투카’ 씨는 한국인용 여행안내 바인더까지 보여 주며 자신도 열렬한 지한파임을 강조한다. 바인더 뒷장에는 한글로 쓰인 여행객 후기까지 있다. 자신의 일에 이런 열정을 가진 그에게 호감이 갔다. 6시간 대여 요금은 600MAD(모로코디르함)부터 시작해 결국 450MAD(한화 5만6000원)으로 결정했다. 더 저렴한 요금도 가능할 것 같았지만, 한국 칭찬에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이슬람국가이면서도 개방적인 모로코 사회

모로코는 이슬람국가이지만 유럽 문화와의 빈번한 교류로 대단히 자유분방한 분위기다. 도시 거리는 서구식 건물이 많으며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여성의 히잡 착용을 본인 자유의사에 맡길 정도로 종교적으로도 개방적이다. 주변 강경회교권 국가들은 모로코를 “이슬람의 창녀”라고 비난한다.

택시 기사는 카사블랑카의 명소 ‘하산 2세 모스크’로 가장 먼저 안내했다. 대서양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름다운 이슬람 성전은 국민 성금으로 1993년 완공되었으며 세계 3번째로 큰 규모이다. 210m 높이의 탑과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원 내부, 뚜껑이 열리는 지붕이 인상적이다. 외국인들도 자유롭게 성전 출입이 가능하지만, 손발을 깨끗이 씻고 경건한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넓은 광장 건너편의 웅장한 건물은 이슬람 교리를 교육하는 종교학교라고 한다. 카사블랑카 방파제 도로에는 가족, 연인들끼리 나온 행락객이 가득하다. 이집트와 비슷한 국민소득에도 불구하고 모로코가 훨씬 더 풍요로워 보이는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릭 카페 아메리카나’ 모델이 되었던 건물 전경. 현재도 ‘릭 카페’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필자 제공
영화 카사블랑카의 ‘릭 카페 아메리카나’ 모델이 되었던 건물 전경. 현재도 ‘릭 카페’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필자 제공

세계적 도시로 부상시킨 영화 ‘카사블랑카’


1942년에 제작된 영화 ‘카사블랑카’의 유명세로 일약 이 도시는 세계인들에게 알려졌다. 모로코를 모르는 사람도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세기의 명작이다. 할리우드 세트장에서 대부분 촬영되었지만, 영화 배경이 된 술집은 현재 릭 카페(Rick cafe)로 변신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대략적인 영화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모로코는 친독 정권인 프랑스 브이시(VC)정부가 통치했다. 제3국으로 가려는 수많은 난민이 카사블랑카로 몰려들자, 주인공 릭 브레인(험프리 보가트)은 이들을 위한 ‘릭 카페 아메리카나’를 운영했다. 어느 날 과거 파리에서 연인 사이였던 일자 란드(잉그리드 버그먼)가 뜻밖에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나타나 릭에게 제3국 통행증을 부탁한다. 꿈 같은 파리 시절, 잊혔던 사랑의 불꽃이 릭과 일자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옛 연인의 고뇌와 번민, 그리고 카사블랑카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이 영화 속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결국, 릭은 통행증과 항공권을 일자 부부에게 구해주며 안개 자욱한 공항에서 평생 잊지 못할 연인을 보내는 마지막 이별의 라스트신을 보여준다.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각색상을 받은 ‘카사블랑카’는 오늘날도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고전 명화로 남아 있다.


미군이 유럽전쟁 최초 참전한 ‘횃불작전’


1940년대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알제리·튀니지는 프랑스 식민지였다. 프랑스는 독일에 항복했지만, 친독 브이시정부가 과거 식민지를 계속 통치했다. 1942년 11월 8일, 중립을 유지하던 미군은 ‘횃불작전’으로 명명된 북아프리카 상륙작전을 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유럽전쟁에 참전했다. 이 지역의 브이시 프랑스군은 병력 12만5000명, 해안포·전차를 포함하여 500대의 전투기까지 있었다. 특히 카사블랑카 항구의 프랑스 해군은 전투함 10척, 잠수함 11척을 가진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했다. 연합군은 옛 동맹 프랑스군과의 물밑작업으로 상당수 지휘관을 전향시키기도 했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쌍방 모두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연합군은 전투함 4척, 상륙정 150척이, 프랑스군은 경순양함 1척, 구축함 4척, 잠수함 5척이 침몰했다. 북아프리카 상륙작전 시 프랑스군의 저항은 카사블랑카에서 최종적으로 총소리가 멎은 11월 11일 오전 6시48분에 사실상 끝났다.


전쟁 유적을 찾아보기 힘든 오늘날의 카사블랑카

카사블랑카에서는 2차 세계대전 역사를 알려주는 기념관이나 표지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자칭 22년 운전 경력의 슈투카 씨는 영어는 유창했으나 모로코전쟁 관련 질문에 대해서는 동문서답이다. 모로코 정부도 자신의 영토에서 일어난 원치 않았던 강대국 간의 전쟁 역사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쟁 유적지를 찾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자 운전사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항구 주변에 남아 있는 해안포대 포상을 찾아갔다. 외롭게 서 있는 등대 옆의 포상은 안내판조차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화포거치대·탄약고 등을 봤을 때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이 사용한 진지로 추정되었다. 필자의 집요한 질문에 결국 운전기사는 개인이 운영하는 ‘모로코 역사갤러리’를 기억해냈다.

<신종태 전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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