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광고로 보는 사회문화

소리 없이 강한 울림

입력 2021. 03. 29   15:55
업데이트 2021. 03. 2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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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선 넘은 광고
 
“너무 유명해질까 봐…자막만으로 알리겠다”
흔한 형식 벗어난 ‘침묵’의 신용카드 광고
출연 배우 대사도, 음성 내레이션도 없어
은폐 전략으로 노출 효과 극대화 ‘역발상’

 

롯데카드 로카의 광고 ‘혜택은 두 장만큼’ 편 (2020).  필자 제공
롯데카드 로카의 광고 ‘혜택은 두 장만큼’ 편 (2020). 필자 제공

롯데카드 로카의 광고 ‘혜택은 두 장만큼’ 편 (2020).  필자 제공
롯데카드 로카의 광고 ‘혜택은 두 장만큼’ 편 (2020). 필자 제공

롯데카드 로카의 광고 ‘혜택은 두 장만큼’ 편 (2020).  필자 제공
롯데카드 로카의 광고 ‘혜택은 두 장만큼’ 편 (2020). 필자 제공

롯데카드 로카의 광고 ‘혜택은 두 장만큼’ 편 (2020).  필자 제공
롯데카드 로카의 광고 ‘혜택은 두 장만큼’ 편 (2020). 필자 제공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더 깊은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의사 표현을 하지 않는 침묵이 오히려 강한 웅변이 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광고에서 침묵한다면 어떨까? 광고에서는 보통 강력한 혜택을 더 많은 소비자에게 더 널리 알리려고 시도한다. 그런데도 대사나 내레이션 없이 자막으로만 전달하는 광고가 있어 흥미롭다. 넘으면 안 되는 광고의 선을 넘어버렸다.

롯데카드 로카의 광고 ‘선 넘은 카드’ 시리즈(2020)를 보면 대사나 내레이션 같은 음성은 없고 자막만 있다. 굳이 소리를 찾는다면 배경 음악과 끝부분에 브랜드 슬로건만 나온다. 영상은 조용히 흘러갈 뿐이다. 배우 다섯 명이 광고마다 한 사람씩 등장해 5편의 시리즈로 이어가는 이 광고에서는 카드가 너무 유명해질까 봐 자막만으로 알리겠다고 했다. 역발상이 흥미롭다.

롯데카드는 2020년에 로카(LOCA)라는 새로운 브랜드 정체성(BI)을 발표했다. 스페인어로 ‘미친’이란 뜻의 로카는 롯데카드의 줄임말이자 ‘미친 듯이 행복한 삶(La Vida Loca)’이라는 의미다.

이전에는 카드 합산의 혜택을 받으려면 각자가 실적 조건을 일일이 계산하고 심지어는 실적을 달성하기 위해 불필요한 지출도 해야 했다. 범용카드인 ‘로카’와 맞춤형 혜택 카드인 ‘로카 포(for)’를 함께 발급받으면 카드 두 장을 쓴 실적이 자동으로 합산돼 세트 카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광고인 ‘슬기로운 소비’ 편에서는 김응수 씨가 체스놀이를 하다가 체스판을 엎어버리고 갑자기 일어난다. 마음속에 있는 불만을 쏟아낼 것 같은데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억울하다는 몸짓만 보여준다. 그러는 사이에 이런 내용이 자막으로 흘러간다. “할인 혜택 놓쳤다고 억울해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카드가 너무 유명해질까 봐 이렇게 자막으로만./ 슬기로운 소비를 위한 카드 매니저/ 최선을 다해 선 넘은 카드- 로카(LOCA), 롯데카드.”

두 번째 광고인 ‘최대 6만 원 할인’ 편에서는 이주영 씨가 전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미소 띤 표정으로 봐서 뭔가 좋은 일이 있어 수다를 떨 것 같은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음 띤 모습만 이어진다. 시종일관 수화기를 붙잡고 있는 동안에 혜택을 알리는 자막만 느리게 흘러간다. “카드 할인이 한 달 최대 6만 원/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카드가 너무 유명해질까 봐 이렇게 자막으로만./ 한 달 최대 6만 원 할인/ 최선을 다해 선 넘은 카드- 로카, 롯데카드.”

세 번째 광고인 ‘마이너스 카드’ 편에서는 진경 씨가 화장대 앞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거실 쪽으로 걸어온다. 팔짱 낀 채 한마디 할 것 같은데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대신 자막이 흘러가며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전달한다. “마이너스 통장 쓰듯이 마음대로 뺐다 넣었다 쓰세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카드가 너무 유명해질까 봐 이렇게 자막으로만./ 마음대로 넣고 뺄 수 있는 마이너스 카드/ 최선을 다해 선 넘은 카드- 로카, 롯데카드.”

네 번째 광고인 ‘두 장의 카드 실적’ 편에서는 김동희 씨가 혼자서는 절대 먹지 못할 만큼의 엄청난 음식을 시켜놓고 접시에 있는 음식을 쏟아버리기도 한다. 끝끝내 한마디 말도 없다. 혼자서 난감해하는 사이에 카피가 자막으로 스쳐 간다. “카드 전월 실적 쌓느라고 억지로 드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카드가 너무 유명해질까 봐 이렇게 자막으로만./ 두 장의 카드 실적에 금융 실적까지 더해주는 로카/ 최선을 다해 선 넘은 카드- 로카, 롯데카드.”

다섯 번째 광고인 ‘혜택은 두 장만큼’ 편에서는 조정석 씨가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며 발로 허공을 차기도 한다. 실내를 돌며 답답해하기에 뭐라고 한마디 하나 싶었는데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스쳐 가는 자막을 보고 나서야 침묵의 이유를 알 수 있다. “세트처럼 실적은 합치고 혜택은 두 장만큼 누리는 로카/ 라고 말하고 싶지만/ 카드가 너무 유명해질까 봐 이렇게 자막으로만./ 두 장의 혜택을 세트로 누리는 카드/ 최선을 다해 선 넘은 카드- 로카, 롯데카드.”

시리즈 광고에서는 선 넘은 카드의 혜택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많은 혜택을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텐데, 광고 창작자들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는 ‘선을 넘다’를 긍정적 가치로 바꿈으로써 강력한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다섯 편의 광고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아 곧 개봉할 영화의 예고편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 광고에서는 메시지를 숨김으로써 오히려 로카를 두드러지게 했다.

“언어는 위대하다. 그러나 침묵은 더 위대하다.” 토머스 칼라일의 명언이다. 떠들지 않고 자막만으로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은폐의 전략이 오히려 노출의 효과를 높였다.

필자를 비롯한 세상의 수많은 ‘관종’들께서 눈여겨봐야 할 광고다. 소셜 미디어에 타인들이 올린 콘텐츠를 보며 남들은 다 행복한데 자신만 불행하다고 느끼며 카페인(카카오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우울증을 겪는 분들도 숨어 있음의 소중한 가치를 알아야 할 것 같다.

<김병희는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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