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게임과 무기

적진까지 누가 뛰나, 타고 갔다 타고 온다

입력 2021. 03. 11   16:27
업데이트 2021. 03. 1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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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병력수송장갑차(APC)
 
트럭 수송 한계 극복 신개념 전투 차량
전략시뮬 게임서 보병 운용 주요 장비
 
‘커맨드 앤 컨커’ APC 활용 전술 인기
치고 빠지는 기동력으로 적진 휘저어
‘워게임’ 한국군 주력 K200 선택 가능
‘아르마3’ 수송+전투 혼합형 차량 눈길

 
내연기관을 발명한 이래 인류의 전장에서는 기동성이 매우 강력한 전략 요소로 떠올랐다. 말에 의존하던 기병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석유 엔진의 수송력은 넓은 전장의 곳곳에 빠르고 적확하게 전력을 투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현대 전략의 기동전을 가능케 하는 기술적 토대로 자리했다.

두 다리로 걸어서 이동하는 보병에도 기계화보병이라는 개념이 들어오며 기존의 보병과는 다른 운용법을 얻게 되었다. 전차의 기동성을 직접 따라갈 수 있는 병력수송장갑차(APC)가 기본적으로 편제되면서 기계화보병은 보병의 엄호가 필요한 전차의 빠른 기동과 보조를 맞춰 기동전의 범위를 더욱 넓힐 가능성을 확보했다.


전선까지 보병을 빠르고 안전하게, 병력수송장갑차


병력수송장갑차의 의미는 다른 병력수송차량인 트럭과 비교해볼 때 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트럭은 차량당 수용량이 장갑차에 비해 높지만, 기본적으로는 도로망을 따라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는 형태로 운용된다. 하지만 트럭만으로는 총탄이 빗발치는 최전선에서 차량의 기동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별다른 방호력이 제공되지도 않고, 도로가 아닌 지형에서 주파력이 떨어지는 차량은 오히려 전선에 진입해선 안 되는 물건이다.

병력수송장갑차는 그런 전선에서의 보병 기동력을 보조하는 역할로 시작됐다. 전차의 기동력과 돌파력을 따라잡으면서 전선에서 전차를 엄호하고 보병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기동성이 확보된 새로운 보병의 개념은 주력 돌파전력인 전차의 운용을 한결 안전하고 강력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병력수송장갑차가 전차처럼 전선에서 주도적인 역할로 전투에 참여하는 목적으로 고안된 것은 아니다. 제한된 차량 크기와 엔진 출력 안에서 전선으로의 병력수송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요소도 많기 때문이다.

장갑을 두껍게 장비하면 그만큼 차체가 커져 표적이 되거나 혹은 실내공간이 좁아져 수송량이 줄어들고, 무장을 더 장비해도 마찬가지로 수송력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여기에 제작 비용과 유지보수 비용이라는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결국 최초의 목표였던 전선으로의 병력수송이라는 점에 특화된 스펙으로의 개발이 불가피했으며, 그 운용 또한 제한적 목적에 따라 이루어졌다.

오히려 전선에 투입되어 화력지원 등을 담당할 수 있는 전투차량은 보병전투차(IFV)와 같은 새로운 유형으로 발전해 나갔다. 대한민국 국군에서 운용 중이었던 K200 계열의 병력수송장갑차와 K21 계열의 보병전투차의 차이가 알기 쉬운 대표 사례일 것이다.


기동성 기본 위에 화력 혹은 안정성 얹는 다채로움


본격적인 전투에 투입하기는 모호하지만 전선으로 빠르게 병력이 이동할 수 있고 하차와 함께 전투 개시가 가능하다는 병력수송장갑차의 특징과 장점은 전장을 다루는 많은 게임에서 굉장히 자주, 또 요긴하게 활용되곤 한다. 보병이라는 기본 전투 유닛이 갖는 기동력이라는 한계를 극적으로 개선하는 무기지만 동시에 한계 또한 명확하다는 점은 디지털게임이 근본적으로 갖는 특징인 ‘너무 쉬워도, 너무 어려워도 안 된다’는 점과 효과적으로 결합하기 때문이다.

‘커맨드 앤 컨커’에 등장하는 병력수송장갑차 APC. M113 장갑차를 모델로 삼은 듯한 모습이다. 빠른 기동력으로 보병 전선을 우회, 돌파하는 데 활용된다.  필자 제공
‘커맨드 앤 컨커’에 등장하는 병력수송장갑차 APC. M113 장갑차를 모델로 삼은 듯한 모습이다. 빠른 기동력으로 보병 전선을 우회, 돌파하는 데 활용된다. 필자 제공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보병과 기갑 병과가 게임 안에서 유의미하게 구현된 경우 특히 병력수송장갑차의 의미가 두드러지곤 한다. 1990년대에 첫선을 보인 이래 꾸준하게 전략시뮬레이션의 대표 시리즈로 거론되는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게임 시리즈에서 APC로 표기되는 장갑차는 가장 비용이 저렴하지만, 이동속도가 느린 보병을 태우고 차량의 속도로 전장에 뛰어들 수 있는, 병력수송장갑차 운용의 핵심을 꿰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만약 적에게 별도의 기동성 있는 유닛이 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대놓고 기동력을 살려 전선 곳곳을 빠르게 치고 빠질 수 있는 기동력으로 게임을 뒤흔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당시 유행했던 전술이었던 ‘엔지니어 러시’에서 APC는 사실상 주역을 담당하며 이름을 알렸다. 방어가 허술한 적 기지 침투 루트를 확보한 뒤, 공병 유닛을 태워 APC의 방호력으로 버티며 적 본진 한복판에 공병을 내린다. 공병은 적의 건물도 팔아치울 수 있는 특수능력이 있는데, 이를 통해 적의 핵심 생산기지를 수 초 만에 날려버릴 수 있어 꽤나 인기 있는 전술이었는데, 이 ‘엔지니어 러시’는 사실 전선 돌파라는 다소 무모한 맥락이긴 하지만 APC의 기동력과 간단한 방호력을 활용하는 흥미로운 전술이기도 했다.

현대전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인기를 끈 바 있는 ‘워게임’ 시리즈에서도 병력수송장갑차의 의미는 두드러진다. 애초에 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병력은 최소한 차량화까지는 되어 있어 그냥 걸어 다니는 경우는 없지만, 트럭에 비해 최소한의 방호력을 갖추고 있다는 병력수송장갑차의 특징은 여러 국가의 무기 체계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며 게임 전반에서 기계화보병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 출현한 한국군 병력수송장갑차 K200. 시대고증은 조금 안 되어 있지만 실존했던 K200의 느낌을 많이 살리고 있다. 부대마크도 전면부에 찍혀 있는 것이 특징.  필자 제공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 출현한 한국군 병력수송장갑차 K200. 시대고증은 조금 안 되어 있지만 실존했던 K200의 느낌을 많이 살리고 있다. 부대마크도 전면부에 찍혀 있는 것이 특징. 필자 제공

시리즈의 6·25전쟁 버전인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서는 한국군의 주력 병력수송장갑차로 K200이 등장한다. 보병전투차보다 기본무장은 빈약하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같은 비용의 미군용 M113보다 방호력이 좋아 거의 모든 보병이 기본적으로 차량과 함께 편성되는 게임 안에서 한국군을 선택할 때 상당히 자주 사용하게 되는 장비다.

현실적인 전장 구현으로 이름 높은 밀리터리 FPS 게임 ‘아르마’ 시리즈에서는 전략시뮬레이션보다 가까운 카메라 앵글을 통해 병력수송장갑차를 경험해볼 수 있다. 시리즈 내내 다양한 전장의 탑승형 무기들을 육·해·공군 가리지 않고 충실하게 만들어 내는 게임이다 보니 전투차량들도 종류별로 최적의 용도가 유의미하게 구현된 경우가 많다.

‘아르마 3’의 OPFOR 진영 병력수송장갑차 MSE-3 마리드. 수륙양용장갑차의 차량 하부 모습을 볼 수 있다. 병력수송장갑차답게 탑승하면 밖을 볼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사진=ARMA 홈페이지
‘아르마 3’의 OPFOR 진영 병력수송장갑차 MSE-3 마리드. 수륙양용장갑차의 차량 하부 모습을 볼 수 있다. 병력수송장갑차답게 탑승하면 밖을 볼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사진=ARMA 홈페이지

‘아르마 3’에 등장하는 병력수송장갑차들은 완전히 수송 목적이라기보다는 보병전투차의 목적도 어느 정도 혼합된 다양한 형태들로 나타나 전투차량의 목적이 상황과 운용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다채로워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차륜형 장갑차에 미사일을 얹은 장갑차, 이름은 IFV로 달려 있지만 사실상 병력수송장갑차로 운용하는 차량, 수륙양용 기능이 추가된 장갑차 등이 진영별로 색다른 모습들을 보여주며 전장 환경마다 강점과 약점을 달리하는 모습은 밀리터리 마니아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준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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