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MZ세대를 말하다

산타 필요하신 분~ 대여합니다

입력 2020. 12. 15   16:11
업데이트 2020. 12. 1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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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세컨슈머(Second: 제2의, 또 하나의 + Consumer:소비자)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대안을 찾아 즐기다 


풍선 불기·마술쇼도 척척! 중고마켓서 신청 받습니다 
올해 소비성향 이슈 ‘중고·로컬·재테크’
틀에 박힌 효용성보다 부가적 의미 중시
거래 물품·방식에 콘텐츠적 재미 담아
판매·구매자 ‘라이브 커머스’ 새 트렌드 

 


#예쁜_제옷과_거지같은_남자친구옷_처분합니다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의류가 이런 플랫폼에 가장 많이 올라오고 팔리는 품목이긴 한데, 이건 예사롭지 않다.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여자 옷이 그렇게 예쁘지 않았고 남자친구 옷이 아주 후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저런 표현을 쓰며 올렸을까. 남자친구와 헤어졌나? 말장난하다가 툭 올린 걸까? 저 게시글을 본 남자친구의 반응은 어땠을까? 이렇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달리면 옷을 구매하려는 원래 의도는 사라지고, 콘텐츠로서 게시글 자체를 소비하게 된다. 그런 재미가 자연스럽게 실제 구매로 연결되기도 한다. 알게 모르게 게시된 상품과의 감정적 유대가 형성돼 그렇다.

제품 구매와 소비를 비롯한 경제 활동이 기능적 효용성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옷이 디자인과 내구성으로만 팔리는 것은 아니다. 신선하고 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농수산물을 고집하지 않는다. 투자 상품을 고를 때도 수익률만을 따지지 않는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서 출간한 『밀레니얼-Z세대 트렌드 2021』에서는 올해 2020년 MZ세대의 소비 이슈를 ‘중고, 로컬, 재테크’의 세 가지로 요약하면서 ‘세컨드(Second)+소비자(Consumer)’를 합쳐서 줄인 ‘세컨슈머(Seconsumer)’를 소비·경제 부문의 키워드로 제시했다. 여기에서의 ‘세컨드(second)’는 여러 가지 뜻을 가진다. 처음으로 쓰는 게 아닌 두 번째, 세 번째 연이어 쓰는 것도 되며, 기본적인 용도 이외에 부가적인 의미를 담을 수도 있다. 소비하거나 팔면서 만들어내는 가치를 뜻할 수도 있다. 한 가지로만 정해진 틀 속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MZ세대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을 소비 부문에서 풀어내 압축한 용어다. 여기서 기인해 파생된 특성들을 위 중고거래 플랫폼의 게시글과 판매 혹은 구매 요청 품목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들을 보면서 MZ세대 소비의 내년 트렌드까지 예측해보자. 


 
#묵은쌀_벌레먹은쌀_구합니다

쌀 소비는 지난 40년 동안 계속 줄어왔다. 1980년 132㎏이었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해 59.2㎏으로 처음 60㎏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 쌀을 구매하는 어른들의 용량 잣대는 아직도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기 일쑤다. 판매하는 쌀 포장도 소용량이 나오는 등 다변화됐지만, 1인 가구가 다수인 MZ세대에게는 전혀 줄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너무 오래 묵히게 되거나 벌레가 꼬이기도 한다. 그런 쌀을 부러 구하다니 무슨 소리인가 싶다. 게시글의 설명을 보니 ‘닭이 좋아합니다’라고 한다. 이야말로 쓰레기를 만들며 버리지 않고, 함께 나누는 ‘사이클’의 실천이다. 지역에서 생산된 쌀 중 제대로 소비되지 않은 것들이, 그 지역의 닭에게 제공되고, 그 닭들이 지역에서 팔리는 선순환의 고리가 보이는 듯하다. 공산품이라고 할 수 있는 사료로만 키운 닭들과 대비되는 친환경과도 연결된다.


#찢어진_속치마

예전 같으면 버려야 마땅하다고 하겠는데, 버젓이 판매 품목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당당하게 장점을 알린다. ‘속치마가 찢어졌어요. 근데 찢어지니까 입고 다닐 때 훨 편하더라고요.’ 팔러 내놓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남한테 불편하고 부끄러운 것이라도 내 방식대로 좋은 점을 발견하고 만족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다른 이에게 사라고 권할 수 있다. 하긴 군대 깔깔이가 찢어지면 더욱 편하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쨌든 그런 찢어진 의류라도 편하게 느낄 부분이 있고, 거기에 환경까지 생각하고 주위에 정말 필요한 사람과 나눌 수 있다는 가벼운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쓰레기로 버렸을 짝 잃은 물품들 또한 중고거래에서 꽤 비중 있는 분야다. 이어폰 한 쪽은 색상까지 맞춰주고, 콜드크림 같은 화장품의 뚜껑만 사고팔기도 한다. 환경에 실속은 덤이다.


#체크치마_하이틴_여주느낌

뉴트로 트렌드를 얘기하며 하이틴 패션의 유행을 언급했었다. 자기는 하이틴 여주, 곧 여자주인공이 되는 느낌을 ‘낭낭하게’ 즐겼기에 다른 이에게 넘기겠다며 선심 쓰듯 올려놓았다. 실제로 공짜로 줄 수도 있겠다. 한때의 유행이나 덕질을 한껏 즐긴 후에 내놓는 물건들도 꽤 있다. 세일러문 탈퇴 기념으로 내놓은 요술봉 지팡이, 침대에서의 오랜 동침 기간을 지내고 보내줘야 한다는 곰인형, 이제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굿즈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상품들에는 추억이 묻어 있다. 게시글을 통해 추억까지 가볍게 공유하면서 전달한다. 자신의 일기장을 팔기도 한다. 실제로 하루하루를 쓴 일기장이라며, 일기를 쓴 자신의 시간에 구입자의 동시간대의 추억이 겹쳐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큰 인물이 되면 비싼 값이 매겨질 거라고 경제적인 이득의 가능성도 함께 언급했다. 운동화 스니커즈나 명품들은 아예 수익을 노리고 재판매(resell)용으로 구매해 내놓은 것들이 많다.



#산타_할아버지_대여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도 산타가 곧잘 눈에 띈다. 마술쇼도 함께 진행할 수 있다는 다재다능함을 뽐내며 동네 유치원,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출연할 수 있는 산타 알바들이 등장했다. 코로나19로 올해의 산타 흥행도 타격을 입겠지만, 랜선으로 하다가 여차하면 바로 나타날 수 있는 동네 산타의 장점은 아직 발휘될 여지가 많다. 생활 속에서 소소하게 그러나 당장 필요하게 바퀴벌레를 잡아준다든지, 와인을 따줄 사람 수요는 계속 나타난다.



환경을 생각하며 쓰레기를 줄이고, 반복해 재사용하고, 그 사이클 중에서 새로운 가치를 끌어내고, 물리적 효용뿐만 아니라 콘텐츠적인 재미까지 함께 만들면서 즉각 즐기는 MZ세대의 소비생활 기조는 계속될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골고루 담겨서 더욱 확산할 쇼핑 행태가 있다. 바로 라이브커머스(Live commerce)이다. 실시간으로 쇼호스트가 상품을 설명하면서 판매하는 측면에서는 홈쇼핑과 비슷한데, 모바일 기반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현장감과 생동감이 문자 그대로 작렬한다. 시장 안으로 바로 들어가서 호스트와 시장 상인과 시청자 간 삼각 대화가 바로바로 가능하다. 항구에 닿은 고기잡이배의 갑판 위로 올라가서 펄펄 뛰는 생선들을 보여준다. 원래 라이브커머스의 ‘Live’는 실시간으로 영상을 내보낸다는 ‘live streaming’에서 왔는데, ‘살아있는’ ‘활력이 넘치는’ ‘현장 생중계’ 식으로 ‘라이브’의 다양한 긍정 의미들을 담는 것으로 확대됐다.

무엇보다 라이브커머스의 과정을 담은 영상 자체가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판매자 자신만이 아닌 구매자와 시청자들이 서로 주고받는 문답과 거래 과정에서 상호작용하며 공동 창작한 형태의 콘텐츠이다. 쇼핑이 MZ세대에게는 하나의 놀이가 된 지 오래다. 이제는 그 놀이가 과정까지 경험 이상의 쇼나 퍼포먼스화된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쇼핑 전부터 이후까지 어떤 형태의 결과물로 남고, 참여토록 만들 것인지가 MZ세대의 소비를 결정지을 것이다.

박재항 대학내일20대연구소 고문
박재항 대학내일20대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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