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서정욱 미술토크

시선 사로잡는 ‘스타일’…내용보다 작가가 궁금해

입력 2020. 12. 08   16:45
업데이트 2020. 12. 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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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인형 같은 사람? 

통통하게 바람 넣은 풍선 같은 인물
달걀에 펜으로 그린 듯 똑같은 얼굴
감정·인간미보다 상징 이미지 치중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 작품 특징
여러 사조 거쳐 독특한 스타일 개발
‘모델’보다 ‘개념’ 그리는 화풍 각인

페르낭 레제의 ‘여가’.  필자 제공
페르낭 레제의 ‘여가’. 필자 제공

오늘은 작품부터 감상해 보자. 첫인상이 어떤가?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몇 명의 사람이 나오는데, 진짜 사람인가? 인형 같다. 그것도 통통하게 바람이 들어간 풍선 인형 같다. 그 형상이 두드러지다 보니 나머지는 눈에 덜 들어온다. 하지만 살펴보자. 바닥을 보니 바닷가 같다. 아무래도 모래 같고, 잡초도 있고 해초도 있고, 오른편 아래에는 소라도 있다.

이제 사람을 보자. 양복을 입은 남자가 둘 보이고, 짧은 바지를 입은 여자가 둘 보이고, 여자아이 둘이 있다. 총 여섯이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빨간 양복을 입은 남자는 오렌지색 옷을 입고 앉아 있는 여자의 팔을 왼손으로 잡고 있다. 부부인가? 노란색 양복을 입은 남자는 핑크색 줄무늬 옷을 입은 아기를 안고 있다. 딸이겠지? 그 남자는 왼손으로 자전거 바퀴를 잡고 있는데 자전거에는 녹색에 핑크색 줄무늬 옷을 입은 여자가 타고 있다. 부부인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여자아이들은 이들의 딸이 아니다. 자전거 뒤에 타고 있는 핑크색 별무늬가 있는 노란 옷을 입은 아이와 노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안고 있는 아이의 피부색은 하얀데, 자전거를 탄 여자의 피부색은 어둡다.

그런데 살피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의미가 없겠구나. 왜냐하면, 화가가 달걀에 사인펜으로 그린 듯 다 같은 얼굴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화가는 모델을 그린 것이 아니라 개념을 그린 것이다. 단지 어떤 가족이 야외에 있는 것으로만 봐달라는 뜻이겠지. 누구인지 또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행동을 봐야겠네. 특이한 점은 자전거다. 왼편 자전거는 나무에 걸려 있고, 오른편 자전거에는 두 명이 타고 있다. 자전거는 왜 등장한 것이며, 남자들은 양복을 입고 있는데 여자들만 자전거를 탄다? 자연스럽지 않다. 그렇다면 화가는 자연스럽게 그릴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그 말은 개념으로 그리는 것이니 세세한 부분을 보기보다는 큰 뼈대를 보라는 말이겠지.

좋다. 그렇다면 자전거는 뭘 상징하나? 제목에 있네… ‘여가’다. 자전거는 여유, 휴식 같은 것을 의미하는군. 나머지까지 보자. 뒤에는 파란 하늘이 있고, 역시 풍선 같은 뭉게구름이 있고, 새들이 날아다닌다. 한가한 날을 의미하겠군. 여기까지 보니 화가가 어떻게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지 짐작되죠?

화가는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원하는 상징 이미지를 뽑아낸다. 여기서는 바닷가에서 여가를 즐기는 가족이다.

그다음 본질만 추린 후 화면을 구성한다. 바닷가니까…. 모래밭, 해초, 소라. 여유 있는 가족들이니까…. 양복, 밝은색 의상, 자전거… 행복한 가족이니까… 서로의 팔이 연결되어 있으면 되겠고… 가벼운 여가니까… 하늘은 파랗고 뭉게구름이 있으면 좋겠고… 새들은 지저귀고. 마지막으로 내 그림인 것을 나타내야 하니까…. 바람이 꽉 찬 고무 튜브 같은 통통한 나만의 스타일로 마무리.

이렇게 그림은 완성됐다. 그러다 보니 작품 속 대상들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서정적이지 않다. 인간미도 그다지 보이지 않고, 추억이나 아련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다. 그는 우리를 나약한 감정 같은 것에 끌어들일 의도가 없다. 냉정하고 침착하게 전달할 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화가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내용보다는 작가에 관해 궁금해한다는 것이다. 특별히 의아해하지는 않는다. 원색의 풍선 형상들이 워낙 눈을 사로잡기 때문 아닐까?

작품을 그린 화가는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 작품의 제목은 ‘여가’다. 눈여겨본 분들은 ‘오렌지색 옷을 입은 여자가 앉아서 들고 있는 종이는 뭐지?’라는 의문을 가졌을 텐데, 이렇게 적혀 있다.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 루이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그린 신고전주의 화가인데, 페르낭 레제가 존경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이런 부제가 붙은 것이다.

페르낭 레제는 이런 통통한 스타일의 작품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히 굳힌 화가다. 화가 입장에서 특별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되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행복한 일이다. 잊히기가 어려우니까.

페르낭 레제는 처음 인상주의로 시작했지만 폴 세잔에게서 감명받은 후 입체주의 야수주의 화풍으로 바뀐다. 그러다 결국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한 화가다.

페르낭 레제의 ‘빅 줄리’.  필자 제공
페르낭 레제의 ‘빅 줄리’. 필자 제공

다른 그의 작품 ‘빅 줄리(Big Julie)’가 있다. 이것은 페르낭 레제가 미국에 살 때 그린 작품이다.

그는 미국에서의 인상을 놀라운 장관이라고 표현했다. 거대한 공장들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강렬한 에너지를 느낀 것이다.

‘빅 줄리’는 그가 본 미국 여자다. 밝은 오렌지색 짧은 바지를 입었다. 머리에는 빨간 모자를 썼는데 뾰족한 장식이 인상적이다. 목에는 진주목걸이를 했고, 오른손에는 꽃을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녀 왼손의 자전거다. 자전거가 그녀의 팔에 둘둘 감겨 한 몸처럼 느껴진다. 배경은 까맣고 노란데, 앞서 보았듯이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페르낭 레제가 본 뉴욕의 여자는 멋을 부렸고, 수줍음이 없고, 당당하다. 마지막으로 페르낭 레제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통통하게 음영을 주어 완성했다.

페르낭 레제는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많이 남겼고, 그에 따라 더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신만의 확실한 스타일을 잡은 화가라는 점이다. 그는 그것으로 크게 성공했다. <서정욱 아트앤콘텐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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