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광고로 보는 사회문화

곰팡이 피자 믿음이 피다

입력 2020. 11. 16   16:32
업데이트 2020. 11. 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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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썩는 햄버거가 아름답다


신선한 햄버거 34일간 썩는 과정 영상
‘인공 방부제 없는 아름다움’ 자막 한 줄
식욕 돋우는 음식 광고 정석 벗어난 파격 

 
창의적 발상 인정 국제광고제 베스트상
혐오감을 신뢰감으로 전환한 성공 사례 

 
양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식전에 빵을 준다. 남은 빵을 집에 가져와 까맣게 잊고 있다가, 한 달쯤 지나 우연히 썩지 않고 그대로인 빵을 발견했다면 소스라치게 놀라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한 분들도 있다. 식품은 시간이 지나면 썩어야 하는데, 부패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바로 이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한 광고가 눈길을 끈다.

버거킹 광고 ‘곰팡이 슨 햄버거’ 편 (2020).  필자 제공
버거킹 광고 ‘곰팡이 슨 햄버거’ 편 (2020). 필자 제공

버거킹 광고 ‘곰팡이 슨 햄버거’ 편 (2020).  필자 제공
버거킹 광고 ‘곰팡이 슨 햄버거’ 편 (2020). 필자 제공

버거킹 광고 ‘곰팡이 슨 햄버거’ 편 (2020).  필자 제공
버거킹 광고 ‘곰팡이 슨 햄버거’ 편 (2020). 필자 제공

버거킹 광고 ‘곰팡이 슨 햄버거’ 편 (2020).  필자 제공
버거킹 광고 ‘곰팡이 슨 햄버거’ 편 (2020). 필자 제공

버거킹(Burger King)의 텔레비전 광고 ‘곰팡이 슨 햄버거(moldy whopper)’ 편(2020)에서는 갓 만든 와퍼가 34일 동안 썩어가는 과정을 45초 영상에 담아냈다. 버거킹의 대형 햄버거인 와퍼 만드는 장면을 보여주며 광고가 시작된다. 고기 패티 위에 양상추, 토마토, 피클, 양파를 올리고 정성스럽게 햄버거를 감싸니 먹음직스럽다. 실험의 시작을 알리는 “첫째 날의 와퍼”라는 자막이 나오자 갓 만든 싱싱한 햄버거가 놓여 있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를수록 햄버거의 형태가 변한다.

채소가 조금씩 시드는가 싶더니 곧이어 곰팡이가 슬기 시작한다. 날이 갈수록 햄버거의 여기저기에 곰팡이가 퍼진다. 곰팡이 스는 과정을 날짜별로 상세히 표현했다. 심지어 곰팡이를 확대해 상세히 보여주기도 한다. 광고를 보는 소비자들이 버거킹 햄버거를 혐오할 수 있는데도 곰팡이 스는 장면 보여주기를 멈추지 않는다. 34일째가 되자 와퍼 전체가 녹색과 파란색의 곰팡이 덩어리로 남는다. 마지막에 이르러 “인공 방부제가 없는 아름다움(The Beauty of No Artificial Preservatives)”이라는 자막이 나오며 광고가 끝난다.

광고의 메시지는 강렬하다. 이 광고에서는 마지막에 나오는 한 줄의 자막 외에는 놀랍게도 제품을 설명하는 카피도 없다. 영상이 나오는 동안 전설적인 가수 다이나 워싱턴(Dinah Washington·1924~1963)의 1959년 히트작 ‘하루가 만들어내는 차이(What a Difference a Day Makes!)’가 배경 음악으로 시종일관 흐를 뿐이다. 광고가 나간 직후에 프랑스·스웨덴·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의 버거킹 와퍼에서 인공 방부제가 사라졌다. 버거킹 본사에서도 2020년 말까지 7346개의 미국 버거킹 매장의 햄버거에서 인공 방부제를 퇴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행동으로 연결한 신속한 후속 조치였다.

패스트푸드를 비롯한 음식 광고에서는 대체로 식욕을 돋우는 생생한 식감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을 유혹한다.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도록 최대한 맛있어 보이게 표현하는 것이 음식 광고의 정석이다. 설령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다 하더라도 부정적인 이미지는 잔상 효과가 남기 때문에 광고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음식 광고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피하는 것이 광고업계의 불문율이다. 그런데 이 광고에서는 기존의 광고들과는 달리 햄버거에 곰팡이가 피고 번지는 과정을 마치 관찰 카메라로 촬영한 듯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실증형(demonstration) 기법을 적용했다.

실증형 광고는 과학적인 실험 과정을 보여주거나 경쟁 브랜드와 비교하고, 제품 사용 전후의 변화를 제시해 상품의 특성을 입증함으로써 소비자가 스스로 느끼게 한다. 있는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어떻게 창의적인 아이디어일 수 있느냐며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곰팡이 스는 과정을 보여주는 발상 차제가 창의적이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채택한 광고주의 혜안도 놀라운 수준이다. 이 광고가 나간 다음에 유튜브에는 햄버거가 실제로 썩는지 실험하는 영상들이 우후죽순 올라왔을 정도로 주목받았다. 결국 이 광고는 2020 원쇼(One Show) 국제광고제에서 베스트 광고상을 받았을 정도로 창의성을 인정받았다.

관점에 따라 이 광고를 비판할 여지도 많다. 45초 분량에서 40초 동안이나 곰팡이 스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고 별다른 재미도 없으니, 소비자들이 중간에 채널을 돌려버릴 수도 있다. 나아가 마지막 자막을 보고 나서야 인공 방부제 퇴치라는 핵심 메시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식욕을 떨어트리려고 일부러 만든 다이어트 광고로 오인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입맛 떨어지게 하는 혐오스러운 이미지가 오히려 신뢰를 형성하는 원천으로 작용한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버거킹 광고에서 곰팡이 슨 햄버거를 보여준 까닭은 무엇일까? 버거킹은 이 광고가 나오기 전까지 맥도날드와 대립각을 세우며 패티를 불에 제대로 구웠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2020년부터는 생각을 바꿔 인공 방부제 문제를 거론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설령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한 잔상 효과가 남더라도 인공 방부제를 쓰지 않겠다는 버거킹의 의지가 더 강력한 각인 효과로 남으리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 시장에서 여전히 쓰이던 인공 방부제를 완전히 추방하겠다는 버거킹의 의지를 천명하기에도 곰팡이 슨 햄버거는 좋은 소재였을 터.

버거킹은 신선한 햄버거를 원하는 소비자 심리를 꿰뚫어보고 역겨운 장면이 오히려 소비자의 뇌리에 브랜드를 각인시킬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버거킹은 보통의 식품 광고와 전혀 다른 접근법을 궁리했는데, “인공 방부제가 없는 것의 아름다움”이란 메시지는 브랜드의 운명을 바꿀 놀라운 상상력이었다. 똑같이 햄버거를 팔더라도 맥도날드와는 전혀 다른 햄버거 브랜드라는 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광고는 자사 햄버거를 매력적인 식품으로 제시하지 않고, 혐오감을 신뢰감으로 전환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세상 만물은 썩어 없어진다. 햄버거가 썩는 것도 상식이다. 심지어 옷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패션 마케팅에서는 옷도 상하기 쉬운 썩는 상품(perishable goods)으로 간주한다. 유행이 지나면 옷도 그 생명력을 다하니 음식처럼 썩는다는 뜻이다. 햄버거 광고에서는 시간이 흐르면 음식이 썩어야 하며 그것이 음식의 진짜 아름다움이라는 진리를 알려주었다. 부패(腐敗)에서 진리를 배울 때도 있는 법이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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