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MZ세대를 말하다

산이,젊어졌다

입력 2020. 10. 27   15:57
업데이트 2020. 10. 2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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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산 정상에 부는 새로운 패션과 인증 바람 

 
중장년 대표 취미 ‘등산’에 새바람
코로나 발발 후 산 찾는 젊은층 급증
‘레깅스 룩’ 등 파격 패션 자랑 무대
#등산 해시태그 80% MZ세대 인증
온라인 산행 커뮤니티도 북적북적

이제는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해외여행이 별 문제 없이 이루어지던 시절, 외국 공항에서 한국 중년 관광객들의 패션이 화제가 되었다. 외국인들의 인스타그램에도 공항 로비에 모여 있는 한국인들의 사진이 올라가고 언론 매체도 타면서, 외국 친구가 그 이유를 묻기까지 했다. “왜 한국인들은 등산복을 입고 여행을 다니냐?”

외국 친구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부분도 곁들여 얘기해줬다. 거기서 한 꺼풀 더 들어가면 그들이 입은 등산복의 색상이 울긋불긋 아주 원색의 향연이고, 제품들의 기능성이 히말라야산맥의 에베레스트를 등반해도 괜찮다고 할 정도로 전문 산악인에게나 어울릴 아주 고급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 있었다.

질문을 던진 외국 친구에게 덧붙인 부분의 이유까지 설명해주었다. 우선 한국은 거의 모든 부분에서 경쟁이 심한데, 소비하는 제품에서도 경쟁심리가 작동한다. 다른 이들이 구입한 것보다 어떤 면에서든 우수한 점이나 다른 제품에는 없는 기능이 첨가되어 있어야 한다. 등산복같이 공통으로 갖춰야 하는 데서는 특히 심할 수 있다. 그런 경쟁이 보다 다양한 기능, 고급화로 이어져 전문가용 등산복의 보편화로 연결되었다. 색상의 화려함이 경쟁의 한 요소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여행의 본질은 일상에서의 탈출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은 세대이지만, 여행에서만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 등산복은 산에서 일어날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하여 눈에 잘 띄어야 한다는 이유로 눈에 띄는 색상이어야 한단다. 그런 색상이 자신들의 생활 반경을 벗어나 한 번 돋보이려고, 들뜬 마음을 표현하는 데 이용되면서 울긋불긋 원색 물결이 펼쳐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실제 한국인들이 등산을 많이 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려주었다.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난 20년 동안 등산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즐기는 취미로 꼽혔다. 2019년은 11%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로 등산을 꼽아, 2위인 7%대의 음악과 헬스를 앞질렀다. 40대 이상에서는 더 높은데, 50대 남자와 여자는 각각 25%, 22%가 등산을 가장 좋아하는 취미라고 대답했다. 10~30대 남성은 게임이, 같은 나이대 여성은 음악 감상이 1위였다.

MZ세대에게 등산은 어른들의 취미이자 운동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산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닦는 곳이기도 했다. 회사나 조직에서 단합을 위한 행사로 등산하는 경우가 많았다. 산을 오르는 육체적으로 힘든 과정에서 땀을 흘리고, 정상에서 투지를 불태우며 서로 하나가 되어 목표에 오른 기쁨을 나누고, 하산 후의 뒤풀이로 술잔을 부딪치는 게 다반사였다. 상사의 취미인 등산을 모든 부서원이 함께한다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익명으로 인터넷에 고발처럼 오르기도 했다.

한편으로 할 일 없을 노년이 가야 할 곳으로 자조적으로 ‘탑골공원’을 얘기한 것처럼 실직한 중장년이 하는 행위로 등산이 꼽히기도 했다. 1920년대 에베레스트에서 목숨을 잃은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는 단순히 “거기에 산이 있어서” 산에 오른다고 했는데, 대한민국의 중장년층은 건강을 지키고, 마음을 수양하고, 조직관리를 위하여, 실직 후 일이 없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산에 오른다. 등산복도 자주 입다 보니 편하고, 나름 통기성도 좋고, 화려해 보이기도 해서 이곳저곳 장소나 상황을 가리지 않고 즐겨 입는다.


코로나19 이후 등산을 즐기는 MZ세대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올해 2월 23일부터 4월 19일까지 북한산, 계룡산, 치악산의 등반객 수가 각각 44.2%, 47.3%, 34.3% 증가했는데, 그 주류가 20~30대의 MZ세대였다고 발표했다. 실내체육시설이 문을 닫은 것을 비롯하여 그나마 야외 활동이 숨통을 틔워주었기에 산으로 향했던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고, 산이 거기 있기에 가는 말로리처럼 대한민국은 출산은 적게 하지만, 산은 많은 ‘다산민국(多山民國)’이 아니냐는 아재개그를 날리기도 한다. 이 기묘한 시기에 정말 MZ세대를 산으로 이끈 요인은 무엇일까? 기성세대의 등산과는 다른 그들만의 등산 행태와 산을 찾아 나선 이유를 짚어본다.



#안전하고_경제적이라

밀폐된 공간을 벗어나 트인 곳을 찾아 나섰다. 캠핑이 오래 전부터 인기를 끌고, 최근 차박도 유행하고 있으나 둘 다 코로나19로 일자리까지 휘청거리며 타격을 입은 다수의 MZ세대에게는 경제적으로 부담이었다. 가까운 곳으로의 산행만큼 마음을 다스리며 위안을 얻고, 운동도 되는 활동은 드물었다.



#패션의_새로운_무대

천편일률 스타일에 색상만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입는 기성세대와 차별화한 등산 패션은 2015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거기에 2018년부터 몸에 맞는 운동 겸 취미 생활 복장이란 ‘핏슬레저(fit+athletic+leisure)’ 룩이 주목받았는데 그게 등산 복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산이라면 강하게 손사래를 쳤던 MZ 여성들이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데, 거기에 필수 아이템이 바로 레깅스이다. 레깅스와 다른 품목들을 어떻게 코디하느냐가 관건인데, ‘레깅스+길고 두꺼운 스포츠 양말’ ‘레깅스+허리춤 겉옷+포인트가 되는 모자(스냅백이나 헌팅캡)’ 등등이 인기 조합이었다.



#인증_기록_성취

혼자만의 즐거움과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나선 산행이었지만, 인증은 MZ세대에게는 호흡과 같다. 게다가 새로운 패션으로 무장했고 배경화면이 달라졌으니 당연히 해야만 한다. #등산 #등산스타그램 해시태그가 등장하여 수십 만 개의 게시물이 달리고, 그중 80% 이상이 20~30대가 올린 것이라고 한다. 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면 패치를 주는 ‘100대 명산 챌린지’나, 다녀온 코스를 등록하면 포인트를 주는 앱 등으로 도전 목표가 생기고 조금씩 달성해가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다. 하산 후에 주로 이루어지는 먹방 인증과 도장깨기도 MZ 등산의 알찬 사후 부록이다.



#따로_그러면서_같이

온라인 커뮤니티가 자신의 생활 주변에 항상 존재했던 MZ세대이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어우러짐을 추구하는데, 등산 커뮤니티는 ‘혼산’하면서도 격려하고 경쟁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한 아웃도어 업체의 산행 커뮤니티는 2013년 발족하여 2019년에 10만 명을 돌파하고, 그 후 1년 만에 신규 가입자가 4만 명으로 급증했는데, 절반 이상이 MZ세대였다.



#나를_세상을_깨끗하게

인생을 두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란 표현을 쓴다. 등산에서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LNT(Leave No Trace)’란 실천법이 MZ세대의 산행에서 자주 언급된다. 짐을 가볍게 꾸리고, 일회용품 사용도 절제하고, 개인 품목을 휴대하고 다시 가져오며, 쓰레기까지 수거하기도 하는 ‘클린 하이킹’이 강조된다. ‘선취력’의 등산판이다.


산에 오르는 MZ세대가 늘어난 것을 두고 오랜 경력의 산악인이 “산이 젊어졌다”며 반겼다. 그렇게 자신의 심신을 정화하고 강건하게 만들면서 사회에도 맑은 기운을 뿌리는 MZ세대의 등산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박재항 대학내일 20대 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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