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건축, 전쟁사를 말하다

전쟁 승리의 영광 그대로… 역사를 담은 지하박물관

입력 2020. 09. 25   15:38
업데이트 2020. 09. 2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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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러시아의 모스크바 지하철역


전쟁 시 공습 대비한 방공호 사용
현재도 2주간 의식주 해결 가능해
대부분 30~50m 깊은 지하에 건설
대형 샹들리에·유리 등으로 장식


모스크바 지하철역 전경.          사진=yourlocalguide.io
모스크바 지하철역 전경. 사진=yourlocalguide.io
대조국전쟁 당시 방공호로 쓰였던 마야콥스카야 역. 이 역은 지하 33m 깊이로 지어졌다.  사진=wartraveller.com
대조국전쟁 당시 방공호로 쓰였던 마야콥스카야 역. 이 역은 지하 33m 깊이로 지어졌다. 사진=wartraveller.com
플로샤티 레볼루치 역에서 가장 유명한 국경 경비대와 개의 조각상. 개의 코를 만지면 행운을 준다는 미신 때문에 코가 반질반질해졌다.  사진=kiddingherself.com
플로샤티 레볼루치 역에서 가장 유명한 국경 경비대와 개의 조각상. 개의 코를 만지면 행운을 준다는 미신 때문에 코가 반질반질해졌다. 사진=kiddingherself.com

모스크바 지하철역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있는 지하 교통시설로 1935년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만들어졌다. 모스크바의 지반 문제로 인해 대부분 30~50m로 깊은 지하에 건설됐는데, 이로 인해 전쟁 시 공습과 핵 공격으로부터 피신하기 위한 방공호로 사용됐다. 1941년 러시아에서 대조국전쟁(또는 독소전쟁, 1941~1945)이 발발했을 때 모스크바 시민 50만 명은 독일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이곳으로 피난했다. 미국과 대립하던 냉전 시대에도 지하철역은 핵 공격을 대비한 방공호로 사용됐다. 지하철의 총 길이는 452㎞에 달하며, 15개 노선에 265개 역을 갖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모스크바에서 가장 가까운 박물관은 지하철역’이라고 불릴 정도로 건축미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내부도 박물관처럼 장식돼 있다. 도스토옙스카야 역을 비롯해 콤소몰스카야 역, 마야콥스카야 역, 키옙스카야 역, 플로샤티 레볼루치 역 등이 아름다운 역으로 손꼽힌다.


스탈린 지시로 건설, 1935년 첫 개통

러시아 혁명(1917) 이후 모스크바 인구는 2배로 늘었고, 1917년과 1930년 사이의 차이는 거의 400만 명에 달했다. 모스크바 지하철역은 교통 혼잡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됐다. 스탈린(1879~1953)은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의 미래상과 역사를 지하철역에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1931년 건설이 시작됐는데, 런던 지하철을 만든 영국인 기술자들이 설계를 맡았다. 1935년 5월 15일 첫 지하철이 개통됐다. 소콜니키 역에서 파르크 쿨투리 역까지 이어지는 11.5㎞의 지하철 노선에 13개 역이 있었으며, 14대 열차가 운행됐다. 이 노선은 1938년 키옙스카야 역까지 확장됐다.


대조국전쟁 때 폭파 명령 후 첫 운행 중단

이듬해인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불과 9일 전인 8월 23일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한 소련도 폴란드 침공에 가담했다. 전쟁은 모든 일에 영향을 미쳤다. 지하철역 건설도 예외는 아니어서 공사가 중단됐다. 1940년 발칸 반도에 대한 문제로 소련과 독일과의 관계가 급격히 냉각됐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독소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선전포고 없이 소련을 대규모로 침공한 바르바로사 작전이 펼쳐지면서 대조국전쟁이 발발했다.

독일은 180만 대병력을 크게 세 갈래로 나눠 모스크바, 레닌그라드, 우크라이나 등의 경로로 소련에 침입했다. 독일군이 모스크바 도심에서 서북쪽으로 18㎞ 거리에 있는 힘키까지 진격해오자 1941년 10월 15일 러시아의 정치가이자 지하철역의 책임을 맡은 카가노비치(1893~1991)는 비밀리에 지하철역 폭파 명령을 내렸다. 지하철역은 전 구간에 걸쳐 독일군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시설을 폐쇄하는 한편, 차량은 대피시키기로 계획했다. 다음 날인 10월 16일 오전 지하철 운행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저녁에 독일군이 모스크바로 진격을 중단함에 따라 지하철역 폭파 명령은 취소됐고, 다시 지하철 운행은 재개됐다.


지하철 내부 전쟁 테마로 장식

전쟁 중에 지하철역은 지하 30m가 넘는 땅속에 있었기에 독일군의 공습으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는 방공호로 사용됐다. 50만 명이 넘는 모스크바 시민들이 지하철역에서 머문 걸로 추산된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한 달 이상 머물기도 했는데, 당시 지하철역에서 태어난 아기만도 217명이나 됐다. 추가적인 지하철 건설은 1942년 5월 재개돼 1943~1944년에 걸쳐 새로운 역들이 추가됐다. 초기 지어진 역들이 공산주의의 미래를 담았다면, 이때 완공된 역들은 전쟁을 테마로 한 장식이 주를 이뤘다. 소련이 1945년 5월 9일 베를린을 함락하면서 전쟁은 종결됐다. 승전 후 소련은 승전국의 영광을 드러내듯 다채로운 색채의 유리 장식과 대형 샹들리에를 최대한 활용해 역들을 장식했다.


1990년 이전 테러방지 위해 쓰레기통 제거

이후 소련이 미국과의 냉전 시기를 겪으며 주요 지하철역은 핵 공격과 공습 대피소 기능을 위한 시설로 사용됐다. 현재까지도 이 기능은 유지되고 있는데, 실제 핵폭발이 일어나면 지하철역 내 수용 인원들은 2주간 의식주 해결이 가능하다고 한다. 1990년대 이전에는 지하철역에서 테러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쓰레기통을 제거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러시아가 벌이는 외교를 두고 지하철역에서 여러 차례 테러가 발생하고 있다. 2010년 3월 29일 파르크 쿨투리 역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41명이 숨지고 88명이 다쳤다. 이는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이슬람 반군들이 러시아 정부군의 공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자행한 테러로 밝혀졌다.

2010년 5월 15일 모스크바 지하철역은 개통 75주년을 맞아 모든 역에 건설된 날짜와 건축가의 이름을 새긴 청동 기념판을 세웠다. 시민들이 전쟁을 견디게 해 준 모스크바 지하철역은 오늘날 시민들의 다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러시아의 예술 혼이 담긴 박물관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상미 문화·예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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