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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 전쟁 중 러시아군 만행 폭로…결국 의문의 암살

입력 2020. 09. 23   15:58
업데이트 2020. 09. 2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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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 러시아 현대사의 역린: 푸틴과 안나 폴릿콥스카야


체첸 독립 반대한 러시아 무력 개입…1차 전쟁 민간인 70만 명 희생
체첸 반군 모스크바 극장 인질극 푸틴 강경진압으로 지지율 치솟아
전쟁 중 인권 침해 등 러 정부ㄱ 궁지 몰던 기자 살해 사건 여전히 미궁 

 

안나 폴릿콥스카야를 추모하는 시민. 연합뉴스
안나 폴릿콥스카야를 추모하는 시민. 연합뉴스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저서 『러시안 다이어리』. 필자 제공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저서 『러시안 다이어리』. 필자 제공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저서『더러운 전쟁』. 필자 제공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저서『더러운 전쟁』. 필자 제공

1991년 냉전이 종식되고 소비에트연합의 공화국들은 차례로 독립을 선언했다. 연방의 맹주였던 러시아는 냉전 이후 소비에트연방을 유지할 힘을 상실했다. 그나마 구(舊)소련의 국토와 실권을 대부분 계승했지만, 러시아의 국가적 위신은 크게 손상됐다. 이때 ‘연방공화국’이 아닌 ‘자치공화국’ 체첸도 독립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미 소비에트연합의 해체를 겪은 러시아는 자치공화국까지 독립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체첸 지역은 카스피해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송유관이 지나는 요충지였다. 더구나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에서 체첸이 독립한다면 21개에 이르는 자치공화국들이 동요할 것은 자명했다.

러시아는 1994년 12월 무력 개입을 선택했다. 제1차 체첸전쟁의 시작이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지닌 러시아군은 신속하게 진군해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 이르렀다. 그러나 체첸군은 그로즈니에서 시가전을 전개해 러시아군 기갑부대를 패퇴시켰다. 뜻밖의 피해를 입은 러시아군은 무차별 폭격을 가하면서 여러 마을에서 약탈·강간·학살을 자행했다. 체첸군은 게릴라 전술로 끈질기게 맞섰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만 70만 명에 달했고, 러시아군 역시 5000명 이상이 전사했다. 1996년 4월 체첸 독립 지도자 두다예프가 사망했지만, 전쟁은 계속됐다. 전쟁이 장기화하자 러시아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의 악몽을 상기하는 여론이 높아졌고, 전쟁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국제적인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러시아군의 철수와 5년 후 자치권 문제를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것을 합의한 ‘하사뷰르트 협정’으로 전쟁은 멈췄다.

이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체첸 전역에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운 ‘와하비트’ 운동이 일어났고, 체첸 정부는 무력하기만 했다. 1999년 8월 와하비트 운동 지도자 샤밀 바사예프가 이끄는 반군들은 이웃 다게스탄 공화국의 마을 세 곳을 점령하고, 이곳을 발판으로 체첸과 다게스탄을 합친 이슬람 공화국을 만들고자 했다. 체첸 반군은 전선을 러시아 국토로 확장했다. 그들은 1999년 9월 러시아 모스크바와 볼고돈스크의 아파트, 쇼핑몰에 테러를 감행했고, 러시아군은 체첸에 영구주둔을 선언했다. 체첸 반군은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러시아군도 완강했다. 새로 권력을 잡은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전임자인 옐친과는 달리 강경책을 고수했다.

모스크바 국립극장 인질극을 벌인 체첸 반군들.  연합뉴스
모스크바 국립극장 인질극을 벌인 체첸 반군들. 연합뉴스

2002년 체첸 반군은 전세를 전환하고자 모스크바 국립극장을 점령하고 1000여 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그러나 푸틴은 러시아 수도에서 대규모 인질극을 벌이면서 시간을 벌고 협상을 이끌어 내려던 체첸 반군에 맞서 인질 129명을 희생시키는 정면 진압을 선택했다. 푸틴의 강경책에 세계가 경악했지만 연방 해체와 경제위기, 체첸전쟁으로 의기소침했던 러시아 국민은 열광했다.

진압작전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릴 것이라는 서방의 예측과는 달리 푸틴의 지지율은 80%를 넘어섰다. 2004년 푸틴은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됐다. 푸틴의 강경책은 러시아인들의 자긍심을 일깨웠고 치솟은 석유 가격은 카스피해에 유전을 가진 러시아의 경제를 견인하는 요인이 됐다. 러시아군이 체첸의 송유관 통과 지역을 강력히 틀어쥐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2009년 체첸전쟁은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체첸전쟁은 다른 공화국들의 분리 요구에 쐐기를 박은 사건이자 푸틴 장기 집권의 디딤돌이 됐다.

그러나 이 평가에서 전쟁의 비극은 누락됐다. 러시아 신문 ‘노바야 가제타’의 탐사기자인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체첸에 잠입해 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낱낱이 기록하면서 러시아 정부가 자행한 언론탄압을 고발했다. 그녀는 ‘러시아 일기’ ‘더러운 전쟁’ 등의 르포를 통해 민간인 학살을 비롯한 러시아군의 만행을 기록했다. 또 체첸 반군의 테러 현장을 취재하면서 러시아군의 강경 진압으로 희생된 인질의 가족을 인터뷰하는 등 러시아 정부의 인권 침해와 정책 실패를 고발했다. 안나의 르포 기사로 러시아 정부는 여러 차례 궁지에 몰렸다.

안나는 끊임없이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2001년 체첸에서 안나는 러시아군에 억류됐고, 2004년에는 독극물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취재를 멈추지 않았다. 체첸 전쟁에서 자행된 러시아군 범죄를 추가로 폭로하려고 준비하던 안나는 2006년 10월 7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해됐다. 국제사회는 러시아 정부가 암살의 배후라고 지목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침묵했다. 2011년 러시아는 체첸 반군 지도자 중 한 명인 루스탐 마흐무도프를 살해 용의자로 검거했고, 암살 연루를 현재까지 부정하고 있다. 2008년 유럽의회는 브리핑실을 ‘안나 폴릿콥스카야 룸’으로 명명했고, 분쟁 지역의 여성활동가에게 주는 상에도 그녀의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안나 폴릿콥스카야상’을 처음으로 수상한 나탈리아 에스테미로바 역시 2009년 살해됐다. 다시 러시아 정부가 배후로 지목됐지만, 진실은 괄호로 남았다. 푸틴의 집권은 계속됐고, 체첸의 비극은 그루지야(2006)와 우크라이나(2014)에서 반복됐다.

<이정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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