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결 병영칼럼

[최석규 병영칼럼] 마음전쟁

입력 2020. 09. 11   16:46
업데이트 2020. 09. 1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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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석 규 
광고콘텐츠 컴퍼니 쉐어스팟 대표/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최 석 규 광고콘텐츠 컴퍼니 쉐어스팟 대표/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처음 좀비를 접했을 땐 할리우드가 탄생시킨 흡혈귀의 후속 정도로 생각했다. 중국의 강시나 우리나라 구미호 같은 유가 아닐까? 그런데 카리스마 있는 드라큘라와는 달리 얘는 좀 이상하네. 다 망가진 얼굴에 구부정하게 어기적거리며 걷는 모습이 좀 덜떨어진 것 같고. 호러 영화를 즐겨보는 타입도 아니고 캐릭터도 별로라는 생각에 그 이후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최근 들어 심심찮게 좀비 영화를 본다. 재미도 있다. K-좀비라고 하던데 어기적거리던 좀비들의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드라마 ‘킹덤’이나 영화 ‘반도’의 좀비들이 달려드는 장면을 보면 초등학교 시절 육상 선수였던 내가 그들에게 쫓겨 도망간다 해도 바로 잡힐 듯한 오싹함이 든다. 그런데 정작 좀비 영화에서 더 무서운 건 좀비가 아닌 것 같다. ‘반도’에는 631부대라는 집단이 나온다. 인간을 사냥해 숨바꼭질 게임을 하도록 좀비에게 던져준 후 도망 다니고 뜯어먹히는 아비규환을 즐긴다. 그런 광경을 보며 자극을 즐기는 것이 그들 삶의 낙이자 목적이다. 마음을 내버리고 악의 본능만 남은 인간들이 만든 디스토피아다.

비단 영화에서만 있는 일일까? 재난 시기에 인간성을 상실한 혐오와 학살이 역사엔 존재한다. 7.9도의 강진이 간토, 시즈오카, 야마나시를 초토화시킨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방화를 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며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낭설을 퍼뜨리자, 경찰과 자경단들은 조선인과 조선인으로 의심받았던 일본인까지 수천여 명을 학살했다. 이런 광기의 참극은 유럽에서도 일어난다. 중세시대 유럽 전역에 페스트가 퍼지자 사람들은 유대인을 원흉으로 지목했다. 그 후 페스트 지역은 물론 페스트가 퍼지지 않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에서까지 유대인에 대한 무차별 학살이 자행된다. 마음을 잃어버린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무서워진다.

마스크 쓰라는 한마디에 버스기사를 폭행하고, 마스크를 권하는 종업원에게 커피를 집어 던진다. 방역의 최전선에서 고생하는 보건소 직원에게 너도 한번 걸려보라며 침을 뱉는다. 뉴스를 통해 이런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영화 ‘반도’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코로나와의 질긴 싸움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불안과 공포뿐만 아니라 오랜 거리 두기로 스트레스 지수도 높아졌다. 이럴수록 관건은 마음이다. 마음을 지키고 마음을 잘 쓰는 일이다. 전쟁에서도 무력전 이전에 심리전이라고 하지 않던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함)라는 희대의 영웅 항우도 사방에서 들려온 초나라 노래에 병사들의 마음이 무너지자 ‘사면초가(四面楚歌)’ 모든 걸 포기하고 자결해 버렸다.

영어단어 ‘스피릿(spirit)’은 정신·마음이라는 뜻과 함께 ‘술(독한 증류주)’의 의미로도 쓰인다.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칼이 된다는 점에서 마음과 술은 닮은 듯도 하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요즘은 잘못된 정보와 루머까지 가세해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좀비 영화의 시조라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감독 조지 로메로는 “모든 재난이 곧 좀비”라고 했다. “좀비 영화는 사람들이 어떻게 재난 대응에 실패하는가에 관한 스토리”라고. 어쩌면 이번 전쟁은 바이러스 박멸전이 아닌 것 같다. 스스로 마음을 지키고 서로에게 마음을 써야 하는, 우리는 지금 마음전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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