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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호’,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 등록 ‘화려한 부활’

조아미

입력 2020. 07. 30   17:16
업데이트 2020. 07. 3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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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과기부 종합심사 통과


지난 2011년 7월 공군3훈련비행단에서 개최된 개량 복원 기념식에서 비행 중인 ‘부활호’. 공사 제공.
지난 2011년 7월 공군3훈련비행단에서 개최된 개량 복원 기념식에서 비행 중인 ‘부활호’. 공사 제공.
부활호의 국가 중요 과학기술자료 등록증 수여식에서 안태현(왼쪽 둘째) 공군박물관장과 유국희(맨 왼쪽) 국립중앙과학관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공사 제공
부활호의 국가 중요 과학기술자료 등록증 수여식에서 안태현(왼쪽 둘째) 공군박물관장과 유국희(맨 왼쪽) 국립중앙과학관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공사 제공

‘부활호’는 6·25전쟁 중인 1953년 6월 초 공군기술학교 정비교육대 교관·조교들의 비행기 설계제작 실습과 경비행기 국산화 가능성 검증을 위한 공군기술학교장 김성태 대령의 경비행기 설계제작 지시를 계기로 탄생했다.

당시 공군소령이었던 이원복 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를 필두로 한 20여 명의 작업반원들이 미국산 L-16 연락기의 엔진, 프로펠러, 강착장치, 계기 등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기체 구성품을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제작해 우리나라 최초의 2인용 프로펠러 경비행기 ‘부활호’를 완성했다.

1960년까지 연락기와 연습기로 사용하던 ‘부활호’는 대구 달서구에 있는 경상공업고등학교 지하창고에 밀폐·보존된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가 2003년 12월 중앙일보 ‘부활 항공기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경상공고 퇴직자의 제보로 2004년 1월 발견됐다.

2004년 4월 공군은 남아 있는 기체를 수습한 뒤 최초 설계자였던 이원복 교수 등의 조언을 받아 복원에 성공했다. 2008년 부활호는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제411호로 지정됐다. 현재 부활호는 공군사관학교 야외 항공기전시장에 전시돼 있다. 조아미 기자

공군사관학교(공사)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항공기 ‘부활호’가 국가 중요 과학기술자료로 등록됐다고 30일 밝혔다. 이에 따라 부활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의 지원 아래 보존처리, 교육자료 및 콘텐츠 제작, 전시 등에 활용된다.

현재 공사 박물관에 소장된 부활호는 과학·기술, 역사, 교육 등 3가지 측면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중요 과학기술자료로 등록됐다. 이 항공기는 조종사 양성 전 과정에 국산 훈련기를 사용하는 ‘한국형 비행교육체계’ 구축의 초석을 다지고, 대한민국 항공우주산업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고 공사는 설명했다.

부활호는 기체의 70%를 이루는 동체·날개에 쓰이는 부품을 우리의 독자 기술력으로 설계·제작했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 ‘부활’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6·25전쟁의 아픔을 이겨내자는 전 국민의 염원과 시대상을 반영했다. 아울러 4개월 만에 제작과 시험비행을 마치며 우리나라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교육적인 가치도 높다고 공사는 덧붙였다.

공사 박물관은 부활호가 지닌 다양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지난 2월 10일 과기부에 국가 중요 과학기술자료 등록을 신청했다. 이어 4개월 동안 △서류 검토·심사 △전문심사위원단의 현장조사 △공식 홈페이지 등록 공고 및 의견 청취 등의 과정을 거쳤다. 이어 지난달 29일 등록 전 최종 단계인 종합심사를 통과했고, 이달 29일 등록증·패를 받았다.

안태현 공군박물관장은 “최초의 국산 항공기 부활호의 제작은 공군 항공우주기술 발전에 첫 발자국을 찍은 기념비적인 사건”이라며 “이번 국가 중요 과학기술자료 등록을 통해 선대가 남긴 찬란한 과학기술을 후손들이 배워나갈 수 있도록 부활호를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1953년 6·25전쟁 중 탄생

행방 모르다 어렵게 제보로 찾아
2004년 자문 받아 복원 성공

● 부활호는? 


‘부활호’는 6·25전쟁 중인 1953년 6월 초 공군기술학교 정비교육대 교관·조교들의 비행기 설계제작 실습과 경비행기 국산화 가능성 검증을 위한 공군기술학교장 김성태 대령의 경비행기 설계제작 지시를 계기로 탄생했다.

당시 공군소령이었던 이원복 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를 필두로 한 20여 명의 작업반원들이 미국산 L-16 연락기의 엔진, 프로펠러, 강착장치, 계기 등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기체 구성품을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제작해 우리나라 최초의 2인용 프로펠러 경비행기 ‘부활호’를 완성했다.

1960년까지 연락기와 연습기로 사용하던 ‘부활호’는 대구 달서구에 있는 경상공업고등학교 지하창고에 밀폐·보존된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가 2003년 12월 중앙일보 ‘부활 항공기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본 경상공고 퇴직자의 제보로 2004년 1월 발견됐다.

2004년 4월 공군은 남아 있는 기체를 수습한 뒤 최초 설계자였던 이원복 교수 등의 조언을 받아 복원에 성공했다. 2008년 부활호는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제411호로 지정됐다. 현재 부활호는 공군사관학교 야외 항공기전시장에 전시돼 있다.


조아미 기자 < joajoa@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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