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서정욱 미술토크

주피터, 주노, 히메나이오스, 큐피드 그리고 필요없어진 무기들… 신화의 한장면처럼 그녀를 찬양하라

입력 2020. 07. 22   16:47
업데이트 2020. 07. 2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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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사랑의 신 함께 들고온 초상화
가슴 드러낸 중성적 인물 프랑스 의인화
투구·방패 치우는 천사들, 평화주의자
‘마리 드 메디치의 초상을 받는 앙리 4세’.  필자 제공
‘마리 드 메디치의 초상을 받는 앙리 4세’. 필자 제공

바로 작품을 보자. 가운데 초상화가 한 점 보인다. 역시 마리 드 메디치다. 그리고 초상화를 둘이 들고 있는데 오른편 날개 달린 아기는 역시 사랑의 화살을 쏘는 큐피드이고, 왼편의 날개 달린 어른은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Hymenaios)다. 보통 히메나이오스는 화관을 쓰고 횃불을 들고 있다. 그리고 청년으로 묘사된다. 화관을 쓰고 횃불을 들고 청년이면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다.

그렇다면 뭘 하는 걸까? 예비 신부의 얼굴을 예비 신랑에게 선보이는 중이다. 그런데 그 초상화를 결혼의 신과 사랑의 신이 동시에 들고 온 것이다. 왕족들의 결혼식인데 일반 사람들이 들고 다닐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예비신부의 얼굴을 본 예비신랑의 표정이 궁금해진다. 예비 신랑 앙리 4세의 시선이 초상이 아니라 하늘로 가 있다. 초상을 보고 완전 도취된 것이다. 마리 드 메디치의 미모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길래 저렇게 됐을까? 서 있는 자세를 보니 이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 아, 아, 너무 예뻐 너무 예뻐.’ 그 놀란 감동의 표정을 큐피드가 빤히 바라보고 있다. 재미있어서 말이다.

앙리 4세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척 봐도 실제 인물은 아니다. 저렇게 가슴을 드러내고 다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누구의 알레고리일까? 옷을 보니 파란색에 백합무늬가 있다. 그렇다면 왕족일 텐데 투구를 쓰고 칼을 찼다. 이상한 점이 또 있다. 가슴을 보면 여자인데 다리를 보면 남자다. 강인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부츠는 옛날식이다. 대체 누구인가? 프랑스의 의인화다. 앙리 4세가 수행원이 아닌 프랑스 자체를 데리고 온 것이다. 남성 같기도 하고 여성 같기도 한 것은 중성의 이미지를 그려서 그런 것이다. 프랑스에는 남자도, 여자도 사니까. 그리고 고전적인 부츠를 신긴 것은 신화 속의 신처럼 보이려는 의도에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프랑스의 의인화도 신화 속의 신들과 동등한 위치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다.

그런데 프랑스에는 왕족만 사는 것이 아닌데 시민을 상징하는 것은 없다. 프랑스의 의인화인데 말이다. 왜냐하면 이때는 왕족 시대다. 나라는 왕들의 것이다. 평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던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프랑스의 의인화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면, 왼손으로 넋이 나간 앙리 4세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 몸은 앞으로 쏠리고, 시선은 초상화에 얼어붙어 있다. 프랑스도 마리 드 메디치의 미모에 빠져 버렸다. 왼손을 보면 가슴에 대고 있다. 심장이 쿵쾅쿵쾅하는 것이다. 그런데 앙리 4세와 프랑스가 너무 친밀한 것 같다. 마치 연인 같다. 프랑스는 앙리 4세와 너무 친하다, 프랑스는 앙리 4세를 너무 좋아했다, 이런 것이 이 그림에 필요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두 사람의 마음을 다 만족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당연히 주문자 마리 드 메디치이고. 또 한 사람은 앙리 4세의 아들 루이 13세였다. 엄마인 마리 드 메디치와 아들 루이 13세는 앙숙이었다. 루이 13세는 이 연작을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가 스스로를 위대하게 표현하려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런데 그나마 좋아하는 자신의 아버지가 프랑스에 큰 사랑을 받았었다고 표현하면 최소한 브레이크는 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 이번에는 작품의 윗부분을 보자. 붉은 천을 휘감은 남자와 황금빛 천을 휘감은 여자가 손을 맞잡고 앉아 있다. 구름 위에서 말이다. 그리고 남자의 뒤에는 발톱에 힘을 주고 있는 독수리가 보이고, 여자 뒤에는 날개를 편 공작새 한 쌍이 있다. 주피터와 주노다. 주피터와 주노가 이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결혼을 최고의 신과 여신이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다. 표정이 중요하다. 두 신들의 표정이 아주 만족스럽다. 그리스 신들은 성격이 급해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바로 행동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저렇게 차분히 앉아있다는 것은 매우 만족한다는 표시다. 정리해 보면, 마리 드 메디치가 얼마나 예뻤던지 초상화를 본 앙리 4세는 넋이 나갔고, 프랑스는 사랑에 빠져 버렸으며, 이것은 하늘의 계시였다.

이제 아랫부분을 보자. 화살을 든 아기천사 큐피드다. 그런데 왼편 큐피드는 투구를 들려고 힘을 쓰고, 오른편 큐피드는 방패를 세우고 있다.

그림으로 보아서는 앙리 4세의 방패와 투구로 보이는데, 앙리 4세는 이미 여인에게 빠져서 칼이 아니라 막대기를 짚고 있으니 저 무기들이 이제 필요 없다는 뜻이다. 큐피드는 이제 필요 없어진 무기들을 치우는 중이다. 앙리 4세는 합스부르크 왕가와의 세력대결로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저 멀리를 보면 연기가 막 나고 있다. 지금도 전쟁 중인 것이다. 아무튼 그런 앙리 4세였는데, 이제 마리 드 메디치에게 빠졌으니 전쟁 따위는 필요 없어졌다는 의미다. ‘평화는 승자와 패자가 딱 구분이 되어야지만 오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이다. 평화주의자 마리 드 메디치의 주된 생각이다. 마리 드 메디치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정리해 보자. 위부터 독수리, 주피터, 주노, 공작새 등 그들이 맺어주는 결혼.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와 큐피드가 가져온 초상화. 넋이 나간 앙리 4세와 사랑에 빠진 프랑스의 의인화. 이제 필요 없어진 무기들을 처리하는 아기 천사.

오늘은 메디치 연작 중 네 번째로 ‘마리 드 메디치의 초상을 받는 앙리 4세’를 보았다. 작품이 이제 한눈에 들어 오는가? 다음 주에는 결혼식에 관한 작품이 될 것 같다.
<28> 루벤스의 마리 드 메디치 연작 중 ‘마리 드 메디치의 초상을 받는 앙리 4세’
오늘도 루브르에 있는 마리 드 메디치의 일생을 그린 연작을 감상해 보자. 24점의 연작 중 3점은 초상화고, 일대기를 그린 것은 21점인데 오늘은 4번째 작품 ‘마리 드 메디치의 초상을 받는 앙리 4세’다. <서정욱 아트앤콘텐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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