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MZ세대를 말하다

몰랐던 나를 알고, 대화의 문을 연다

입력 2020. 07. 14   17:06
업데이트 2020. 07. 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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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왜 MBTI에 열광하는가


성격유형 지표…최근 곳곳서 붐 일으켜
검증된 도구로 다양한 자기 모습 확인
성격 유형 인증·공유하며 즐겨
새 콘텐츠 소재 마케팅으로 활용도



#1 한 달 전 대학내일에서는 팀장급 리더 워크숍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사전에 MBTI 테스트를 했고, 결과로 나온 유형에 따라서 조를 구성했다. ‘내가 저런 친구와 같은 유형이라니’ 하면서 절망하는 이도 소수 있었지만, 대체로 조원들끼리는 반가움을 표시하며 암묵적으로 유대 관계를 더욱 강하게 맺는 계기가 됐다.

#2 대학내일의 사내 웹진에 실린 한 직원 소개를 위한 일문일답 기사 중 일부이다. “별명이 유재석이라고 하던데요?” “3인 이상 모인 자리에서 대화가 끊기면 못 견디고, 제가 MC를 봐 가지고요…MBTI가 ISFP로 유재석과 같기는 해요(TMI·너무 과한 정보).”

#3 채용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 대학내일 친구가 푸념 비슷하게 늘어놓았다. “자소서가 엄청나게 들어와서 그걸 보고 있어요. 그런데 거의 반수가 자기소개를 할 때 MBTI 유형을 얘기하면서 시작해요. MBTI 어쩌고를 하도 많이 봐서 마구 헷갈리고 이제 좀 지겨워지더라고요.”


하루에 한 번이라도 듣지 않고 넘어가기 힘들 정도로 MBTI가 유행이다. MBTI란 명칭은 이를 고안한 두 심리학자의 이름을 넣어 만든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앞 대문자를 따서 지어졌다. 스스로 설문에 답하면서 성격유형을 알아볼 수 있는 지표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개발됐다고 한다. 한국에 들어온 지도 꽤 되었는데, 요즘 왜 그렇게 위에서 본 것처럼 곳곳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을까? 그 이유를 짚어보자.


#나를_알아야_해

MZ세대의 트렌드로 상반기 이 지면을 통해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에 맞춰 행동하는 ‘마이사이더’, 가벼운 취향에 따라 관계를 맺는 ‘가취관’, 자신이 믿는 바를 소신 있게 얘기하는 ‘소피커’ 등을 얘기했다. 나 자신을 파악하는 게 이들 모두의 출발점이 된다. 자신을 제대로 알기는 힘들다. 그래서 MBTI와 같이, 어찌 보면 검증된 도구의 도움을 얻게 된다. 트렌드 연구의 권위자인 교수 친구와 왜 이렇게 MBTI를 비롯한 성격유형 테스트가 MZ세대에게 특히 유행인가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자신을 알아야 할 이유는 많은데, 실제 자신을 잘 알지 못해서”라고 했다. 같은 맥락이다.


#대화의_시작

MZ세대와의 만남 자리에서 ‘저는 ENFJ입니다’라고 소개를 시작하자, 한 친구가 바로 “‘정의로운 사회운동가’이시군요”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버락 오바마와 오프라 윈프리도 같은 유형이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그 친구는 어떤 유형인지 물어봤고, 그렇게 대화의 합이 맞추어지면서 다른 소재로 넘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프랑스의 유명한 산업디자이너인 필립 스탁이 레몬이나 오렌지 주스를 짜는 착즙기를 고안했다. 그 착즙기의 가장 중요한 효용을 그는 딸네 집에 온 장모가 사위와 대화를 시작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MZ세대 사이에서, 또는 그들과 이야기를 하려는 이들에게 MBTI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변화의_확인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했지만 사랑도 변하고, 사람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변한다. 같은 시공간 안에서도 몇 가지 인격체가 존재할 수도 있다. 디지털과 함께 살아온 MZ세대는 온·오프 공간에서 서로 다른 다중인격(multi-persona)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구현하거나 받아들이기도 했다. 오프라인에서는 고전문학을 전공하며 파리 한 마리 못 잡을 것 같은 대학원생인데 온라인 게임에서는 거대 무리의 무자비한 대장 노릇을 하는 친구를 본 적도 있다. 그런 친구는 상이한 자신의 모습을 MBTI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실제 한 대학생은 휴학하고 ‘신중형(T)’에서 ‘자기주장형(A)’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시간과 환경의 영향에 따라 변화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도구로 사용이 가능하다.


#새로운_콘텐츠_소재

어떤 소재에서나 새로운 콘텐츠, 곧 밈(meme·특정 콘텐츠를 대중이 따라 하고 놀이로 즐기는 현상)으로 만들어 즐길 수 있는 요소를 뽑아내고 만들어내는 MZ세대들에게 MBTI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정한 상황에서 MBTI 유형에 따라 다른 행동을 보일 것이다’라는 가설을 가지고 ‘짤’들이 무수히 생산됐다. 다 먹지 않고 남은 식빵을 보관하는 방식, 말싸움을 전개하는 특성 등이 유형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보여줬다. 실제 학교나 직장 생활에서 팀 활동을 할 때, 조직 내에서 상사나 부하의 MBTI 유형에 따른 전형적 행동이나 대처법이 만들어져 큰 호응을 얻었다.


#인증하고_공유하는_재미

성격 유형을 다양한 형태로 캐릭터화하면서 그 자체로 인증 욕구를 자극했다. 귀여운 캐릭터에 과학적으로 보이는 그래프들에 용기를 북돋우는 성격 설명과 격려의 글귀들을 공유하며 인증했다. 자신의 실제 모습을 나눈다는 의미도 있고, 자신감을 보이는 수단이기도 하며, 앞에 나온 것처럼 대화를 이끄는 수단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파생된 짤들이나 개발된 캐릭터와 함께 소셜미디어를 타고 공유하는 자체로 재미있었다.

#마케팅_활용_확산

기업들에서 이렇게 MZ세대가 열광하는 트렌드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MBTI로 보는 16가지 불닭볶음면 먹는 유형’의 동영상을 기업에서 유튜브에 올리자, 곧 거꾸로 불닭볶음면을 먹는 방식으로 성격을 가리고, 그에 맞춘 불닭볶음면을 찾아준다는 콘텐츠가 뒤를 이었다. 한 통신사에서는 ‘스마트폰 바꿀 때 MBTI별 특징’을 짤로 구성했다. 파생된 콘텐츠들은 결국 MBTI 자체를 더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심리_테스트_전성시대

혈액형이나 별자리로 사람을 구분하고 성격을 규정짓는 건 예전부터 있었다. 설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보다 과학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캐릭터와 같은 시각적 효과를 덧붙이며, 기업 마케팅 활동과도 접목하면서 다양한 심리나 성격 테스트들이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자신이 어느 정도의 꼰대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유형의 꼰대 기질이나 행동을 보이는지 테스트할 수 있는 ‘르르르’ 사이트의 ‘꼰대 성향 검사(www.lllkkdti.com)’가 상반기에 나와 200만 명가량이 참가할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온라인 식재료 판매업체는 ‘내가 음식이라면’,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기를 주창하며 보상으로 나무나 꽃을 심게 하는 앱에서는 ‘나만의 꽃심기’라는 자신들 업종이나 제품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진 심리 테스트를 내놔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사실 인간이란 복잡한 존재를 20개도 안되는 유형으로 구분하고 규정한다는 게 무리다. 요즘은 한 사람 안에도 100명의 다른 인격체가 있다고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이런 테스트로 자신을, 자신 안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방식의 한계나 규정 틀의 협소함과 오류를 지적하기보다는 MZ세대와의 대화의 한 수단이자 통로로 이런 테스트들을 활용했으면 한다.

<박재항 대학내일 20대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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