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광고로 보는 사회문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든든한 그 이름

입력 2020. 07. 14   16:57
업데이트 2020. 07. 1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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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아, 아버지


KB금융그룹 기업광고 ‘아버지’ 편
몰래카메라로 부자 관계 섬세 묘사
자녀에서 아버지로 설문 대상 바꿔
아버지에 대한 사랑·안타까움 전달





  
  
친구 같은 아버지?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자녀와 친구가 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사실 자식과 아버지가 친구는 아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자식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었을 텐데 오죽하면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처럼 극한으로 치닫는 사례가 나왔겠는가? 어떤 이들은 친구 사이로 지내겠지만, 원수처럼 지내는 분들도 있다. 둘 사이는 애증이 교차하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아들과 아버지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KB금융그룹의 기업광고 ‘아버지’ 편(2015)에서는 몰래카메라에 비친 부자 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광고가 시작되면 ‘영유아기 아동학습 발달 영향 분석 조사실’이라는 안내문이 붙은 실험실에서 아빠들이 설문지를 받아들고 생각에 잠겨 있다. 광고 기획자는 아동의 학습 발달에 미치는 아빠의 역할을 조사한다며, 40개월 미만의 자녀를 둔 젊은 아빠들을 실험에 참여시키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



“아이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인가요?”,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당신 차에, 핸드폰에, 책상 위에, 지갑 속에… 아이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 아빠들은 이런 질문이 계속되자 빙그레 웃으며 질문에 응답한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들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화면이 바뀌면서 새 설문지가 그들 앞에 놓인다. “같은 질문에 대상만 바꿔서 다시 설문지를 드렸습니다.” 이런 자막 카피가 나오며 광고의 후반부가 이어진다. 앞선 설문지와 똑같은 흐름이지만 아이에서 아버지로 대상자만 바뀐 설문지를 앞에 놓고 아빠들은 난감해한다. 이제 아빠로서가 아닌 아들 입장에서 설문에 응답해야 했기 때문이다. 응답자들은 한숨만 쉬거나 설문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아빠 입장에서 설문에 응답할 때와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설문 내용은 이렇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으로 말한 건 언제인가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당신 차에, 핸드폰에, 책상 위에, 지갑 속에… 아버지의 사진이 몇 장이나 있나요?” 어떤 아들은 멍한 표정으로 설문지만 뚫어지게 바라봤고, 어떤 아들은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최근에 아버지를 안아본 적이 있나요?” 이 질문이 나오자 눈시울을 붉히는 아들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설문이 끝나나 싶었는데, 참여자 아버지가 보낸 영상 메시지가 실험실의 TV 수상기에서 익숙한 목소리로 흘러나온다.

“항상 부족한 게 부모 마음 아닐까요?”, “못 해준 게 많아 너무 미안하다.” 갑자기 아버지의 영상 메시지가 나오자 처음에는 놀라기도 하고 반가운 마음에 살짝 웃는 아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들들은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각자의 아버지는 똑같이 미안하다는 말씀을 아들들에게 전했다. 좀 더 가르치지 못해 미안하고, 너무 엄하게 대해 미안하고, 좋은 환경에서 키우지 못해 미안하고, 그냥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며 아버지의 심경을 전했다. 


 

늙으신 아버지의 모습을 영상으로 본 아들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아들들은 설문지를 앞에 놓고 그동안 아버지에게 소홀했던 자신을 자책했다. 아버지가 그저 미안하다고만 하셔서, 아들들 모두가 묵혀둔 회한의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낸 것이다. 그때 실험실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손주를 안고 들어온다. “어쩌면 당연해서 잊고 지내는 이름, 늘 그 자리에 있기에 무심했던 이름, ‘사랑합니다’로는 다 채울 수 없는 이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이 하늘 같은 그 이름, 아버지. KB는 아버지 그 이름의 든든함을 배웁니다.” 이런 카피가 흐르며 광고가 끝난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4분 38초 분량의 동영상 광고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영상이 1분을 넘기면 건너뛰는 경우가 보통인데 상당히 긴 광고를 끝까지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의견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댓글을 올리기도 했다. 공개한 지 1개월 만에 1000만 뷰를 넘길 정도로 주목받은 이 광고에서는 몰래카메라 기법을 써서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안타까운 마음을 전달했다. 


KB금융그룹의 기업광고 ‘아버지’ 편(2015).
KB금융그룹의 기업광고 ‘아버지’ 편(2015).
 

친구 같은 아버지라면 어떻고 애증이 교차하는 아버지라면 또 어떤가.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다. 자식과 친구가 돼보려고 억지로 애쓰는 아버지들을 보면 안타깝다. 친구 같은 아버지가 반드시 좋은 아버지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친구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다.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는 아버지는 최소한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하는 아버지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자식 앞에서 인정하는 아버지는 그래도 ‘꼰대’라고 할 수 없는 아버지다. 자식의 울타리가 되겠다며 다짐하는 아버지는 적어도 책임감 있는 아버지다.

늘 그 자리에 계시기에 자식이 아버지에게 무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더라도 자식에게 섭섭해할 아버지는 아마 없으리라.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을 아버지도 알고 계시니까. 예전에는 효도(孝道)를 강조했다. 하지만 자식이 효도라는 말에서 의무감이나 부담감을 느낀다면 이 말을 쓰지 않아도 된다. 갑자기 친구가 보고 싶을 때가 있듯이, 불현듯 부모님 생각이 날 때마다 찾아뵈면 된다. 그런 사이가 좋을 것 같다. 가서, 자식의 앞날을 염려하며 살아오신 아버지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현해보자. 필자도 아버지를 찾아뵙고 사랑했었다고 고백하며 눈물을 쏟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아, 아버지.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광고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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