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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병영칼럼] 치킨의 단짝, 치킨무

입력 2020. 07. 07   16:11
업데이트 2020. 07. 0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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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작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작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1994년 폭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등학생 때였던 그해 여름은 정말 더웠고 오빠는 대구에 있는 부대로 입대를 했다. 그것도 8월 군번으로.

농사를 짓는 엄마는 한여름 뙤약볕에 자기도 익어가면서 이 더위를 어쩌냐며 아들 걱정에 눈물을 흘렸다. 퇴소식 때 아이스박스에 먹을 만한 것, 혹은 먹고 싶어 할지도 모를 음식들을 잔뜩 챙겨 갔다. 불고기와 초코파이, 라면을 직접 끓여줘야 한다며 양은 냄비에 날달걀까지 챙겨갔다. 하지만 20대 청년의 솔메이트는 단연 치킨이다. 엄마는 동네 치킨집에서 ‘반반무많이’를 시켜 서울역에서 통일호를 타고 대구까지 달려갔다.

하지만 막상 오빠는 많이 먹지를 못했다. 더운 날씨 탓이었는지 얼려온 음료수만 마실 뿐이었다. 엄마는 닭 다리를 집어 이거라도 먹어보라며 애절하게 매달렸다. 엄마 나도 닭 다리 먹을 줄 알거든요!

그런데 오빠는 치킨보다 ‘치킨무’를 더 많이 집어 먹었다. 날은 덥고 음식은 잘 넘어가지 않는데 그 새콤달콤한 치킨무만큼은 당겼던 모양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훈련소에서도 치킨을 먹기는 했지만 더운 날씨에 치킨 무가 푹 물러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팩포장으로 냉장유통된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치킨무는 치킨집에서 직접 담가 비닐봉지에 국자로 퍼서 담아줬다. 아마도 뜨거운 날씨에 치킨무가 너무 익어버렸던 모양이다. ‘반반무많이’도 치킨집마다 치킨 무를 담그던 때였으니 치킨집 사장님이 더 퍼줄 수도, 한 봉지 더 얹어 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정량 포장된 팩 포장 치킨무를 업체에서 공급받는다. 그래서 ‘반반무많이’를 외치려면 치킨무 추가 주문 금액을 내야 한다.

치킨무를 뜯는 것도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포장 팩에 치킨무 조미액이 꽉 차 있어 잘못 뜯으면 흘러버리기 일쑤다. 혹자는 중량을 늘리기 위해서라고 오해한다. 실제로는 치킨무가 조미액 속에 푹 담겨 있어야만 무 본연의 뽀얀 색감과 아삭함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무가 공기와 접촉하면 무는 물러버리고 색깔이 변한다. 장아찌를 담글 때 무거운 돌로 푹 눌러놓는 이유도 조미액에 푹 잠겨 있어야 채소가 공기와 접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류 음식의 중심에 있는 치킨이 한국 치킨다운 이유는 이 치킨무의 공이 크다. 피클로 재현할 수 없는 새콤달콤 아삭아삭한 맛은 한국인의 입맛도 세계인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유명한 몇몇 치킨집은 여전히 치킨무를 직접 담근다. 손님들은 그 치킨무를 먹기 위해 치킨을 먹으러 가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어릴 때 먹었던 그 치킨무 맛을 잊지 못해 임신을 하고 입덧이 심할 때 치킨무만 사러 온다는 일화도 있다. 그만큼 한국 치킨의 스타일을 창조한 치킨무야말로 치킨 한류의 수훈 갑이다. 모든 음식에 제철이 있듯 치킨무에도 제철이 있다. 무는 가을에 가장 맛있고 당연히 가을 치킨무가 맛있다. 안타깝게도 여름은 저장 무를 주로 사용해 치킨무가 질기고 맛이 떨어질 때지만 치킨무 없이 어떻게 치킨을 먹을 수 있으랴. 치킨의 영원한 단짝은 치킨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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