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건축, 전쟁사를 말하다

초토화된 도시 속 유일하게 살아남은 폴란드의 영광

입력 2020. 07. 03   16:27
업데이트 2020. 07. 0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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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폴란드의 빌라노프 궁전


베르사유 궁전 본뜬 바로크 양식 별장
2차 대전 바르샤바 85% 파괴됐으나
독일군 사무실·병원으로 참화 피해
수집품 약탈당했으나 전쟁 후 회수
국립박물관으로 1962년 대중 공개 


 빌라노프 궁전 전경.  사진=www.journeywonders.com
빌라노프 궁전 전경. 사진=www.journeywonders.com
1793년 화가 카차노프스키가 그린 얀 3세의 초상화.  사진=바르샤바 국립미술관
1793년 화가 카차노프스키가 그린 얀 3세의 초상화. 사진=바르샤바 국립미술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남동쪽 근교에 있는 빌라노프 궁전(Wilanow Palace)은 17세기에 얀 3세 소비에스키(1628~1696)가 프랑스 부르봉 왕가 출신의 왕비를 위해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 만든 바로크 양식의 여름 별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바르샤바는 게토(유대인 강제 거주구역) 봉기(1943), 바르샤바 봉기(1944) 등 독일군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 일어났는데, 독일군에 의해 85% 이상이 파괴됐다. 빌라노프 궁전은 독일군이 폴란드의 유대인 학살을 위한 사무실 겸 병원이 되면서 바르샤바에 있는 주요 건축물 가운데 유일하게 전쟁의 참화를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바르샤바 빌라노프에 얀 3세 명으로 건설

바르샤바는 1611년 정식으로 폴란드의 수도로 지정됐다. ‘북쪽의 파리’로 불리며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폴란드에서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얀 3세는 1674년 왕위에 올랐다. 왕은 건축가 아우구스틴 로치에게 왕비 마리(1641~1716)를 위한 여름 별장을 짓도록 했다. 1680년 완성된 궁전은 1층으로 된 전형적인 폴란드 저택이었는데, 마을 이름을 따서 빌라노프 궁전이라고 명명됐다.

얀 3세는 1675년 우크라이나 서부의 르보프 전투에서 오스만튀르크 군에 승리하고, 이듬해 슬라브나 조약에서 선왕이 포기한 서부 우크라이나의 절반을 회복했다. 또한 1683년 9월 제2차 빈 공방전에서 기병대인 윙드 후사르를 이끌고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빈을 오스만튀르크 군의 포위에서 구해내는 큰 활약을 하면서 그의 명성은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졌다. 이렇게 얀 3세가 거둔 군사적인 성공과 그의 업적을 반영해 1681년부터 1696년까지 궁전은 대규모로 증축됐다.


폴란드 명문가 거치며 내부와 정원 개조


스무 살 무렵인 1648년부터 군대에 들어가 긴 세월을 전장에서 보낸 얀 3세는 통치 후기에 통풍과 고혈압, 신장 결석 등으로 고생했는데, 치유를 위해서 빌라노프 궁전에서 대부분을 보내다 1696년 67세로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얀 3세 왕의 사후 이 궁전은 ‘강건왕’이라 불리는 아우구스트 2세(1670~1733)의 거처로 1730년부터 1733년까지 활용되었다. 1805년 궁전의 일부는 스타니스와프 코스트카 포토츠키(1755~1821) 백작에 의해 폴란드 최초의 공공박물관 중 하나가 돼 유럽과 아시아 예술품을 전시했다.


독일군의 점령…전 국토가 전쟁터 된 폴란드


18세기 들어 국력이 약해진 폴란드는 프로이센·러시아·오스트리아에 의해 3차에 걸쳐 행해진 분할로 독립국의 지위를 잃고 1795년 프로이센령이 됐다. 백 년 넘게 유럽 지도에서 사라졌던 폴란드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인 1918년 11월 11일 독립했다. 하지만 폴란드의 봄은 20년에 불과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독일군의 점령으로 폴란드는 전 국토가 전쟁터가 돼 유럽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다.

폴란드에는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약 350만 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그중 바르샤바에는 도시 인구의 30%인 33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1943년 4월 19일 바르샤바 게토의 유대인들이 나치 독일에 대항해 게토 봉기를 일으키지만 4주 뒤인 5월 16일 나치의 잔인한 소탕으로 종료됐다. 1944년 8월 1일 폴란드군이 점령군에 대항하는 바르샤바 봉기를 벌였지만 63일에 걸친 나치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독일군·헝가리군 수집품 약탈


바르샤바는 1939년 폴란드가 침공될 때 발생한 피해에다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때 발생한 피해까지 더해 1945년 1월 독일군이 바르샤바를 퇴각할 때까지 85%가 넘게 파괴됐다. 바르샤바 왕궁, 성요한 대성당, 시장 광장, 바르바칸 성벽 등을 비롯한 바르샤바의 주요 건축물들이 파괴됐지만 빌라노프 궁전은 독일군이 유대인 학살을 위한 사무실 겸 병원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전쟁의 해를 입지 않고 온전히 살아남았다. 궁전 수집품 대부분은 독일군과 헝가리군에 의해 약탈당했으나, 전쟁이 끝난 후에 회수됐다.

전쟁 후에 궁전의 소유권은 정부에 넘어갔으며 대대적으로 개조돼 바르샤바 국립박물관의 일부로 1962년 대중에게 공개됐다. 1994년 9월 16일 폴란드의 공식 국립역사기념물 중 한 곳으로 지정됐다. 이곳은 2층 규모의 저택과 43만㎡ 규모의 바로크식 정원, 영국과 중국식 정원, 장미 정원, 왕의 정원 등을 갖추고 있다. 궁전 1층은 왕족 처소로 폴란드 귀족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2층은 16~19세기의 폴란드 초상화 작품과 조각상이 전시되고 있다. 정원은 여름에 음악축제가 열리며, 겨울에 조명들로 아름답게 꾸며진 불빛 축제가 열린다. 빌라노프 궁전은 폴란드의 찬란했던 영광을 상기시키는 건축물로서 폴란드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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