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병영의창

당신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입력 2020. 06. 30   16:10
업데이트 2020. 06. 3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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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아 름  대위 육군1포병여단
김 아 름 대위 육군1포병여단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한반도가 전쟁의 포화로 가득했던 그때,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참전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용사로 입대해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 이어 스탈린고지전투, 김일성고지전투에 참가했다가 머리에 총상을 입어 대구통합병원으로 후송된 뒤 명예 전역을 했습니다.

총상으로 청각이 훼손돼 젊었을 때는 동네 어르신들이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지나가곤 해 버릇없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고, 큰 소리로만 대화할 수 있어 집안의 문제가 온 동네에 알려지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평생을 보청기를 착용한 채 불편하게 생활했지만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단 한 번의 불평도 없이 부상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바쳤다는 영광스러운 증거라며 평생을 살았던 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저희 친할아버지십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저는 아버지께 불평을 했습니다. “아빠,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나를 싫어하시는가 봐. 맨날 나한테 큰소리만 치셔”라며 투덜댔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가 왜 할아버지께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지 이야기해주셨을 때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런 할아버지께 감사하고 20년 넘게 군인의 길을 걸으며 나라를 지킨 아버지의 깊은 뜻을 이어받고자 저 또한 군인을 꿈꾸었습니다. 여군을 준비하면서 병과 선택이라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부관 병과(현 인사 병과) 지원을 조언해 주셨습니다.

“그 병과는 전 신분에 대한 인사관리와 기록관리 업무를 담당한단다. 할아버지처럼 나라를 위해 참전하고도 그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다가 잊히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더구나. 임관 후 이런 업무를 담당하면서 기록이 없어서 기억되지 못하는 분들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어떻겠니?”

저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주저 없이 부관 병과를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장교로 임관해 지금까지 군 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11년 동안 여러 부대에서 근무하다 보니 할아버지와는 5사단 천년 전우로, 아버지와는 32사단 백룡 전우로 연을 맺는 경험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병과 장교로 임무를 수행하면서 ‘나라사랑 보금자리’, ‘참전용사 초청 행사’, ‘피의능선전투 전적비 추모 행사’ ‘6·25 무공훈장 찾아주기’ 등 다양한 참전용사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참여하면서 뜻깊은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행사를 통해 그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후유증으로 힘들지만 그래도 참전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도 전하지 못한 마음을 글로나마 전합니다.

“할아버지, 당신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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