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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진 종교와 삶] ‘내가 만들어가는 인연(因緣)

입력 2020. 06. 30   16:08
업데이트 2020. 06. 3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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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현 진 공군15특수임무비행단 법사·대위
문 현 진 공군15특수임무비행단 법사·대위

2000년 첫 영화 ‘플란다스의 개’의 흥행 실패로 의기소침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봉준호는 어느 날 한 행사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인사만 하고 자리를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그때 우연히 충무로의 신성 송강호와 마주치게 됐는데, 그가 먼저 “봉준호 씨!”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플란다스의 개’를 봤다며 영화를 본 소감을 즐겁게 이야기했다. 의욕을 잃었던 그에게 유명 배우가 자신의 실패작에 소감을 말해주고 응원해준 것은 큰 힘이 됐다.

시간이 흘러 봉준호는 어렵게 두 번째 작품을 계획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유명 배우를 캐스팅할 계획을 세웠다. 바로 행사장에서 자신을 알아봐 준 송강호. 대스타라 출연은 쉽지 않을 걸로 생각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다’라는 생각으로 송강호에게 각본을 보냈고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송강호가 봉준호에게 건넨 답변은 “출연하겠습니다. 우리 5년 전에 만났잖아요. 그때 이미 출연하기로 했어요”였다.

1997년, 무명 연극배우였던 송강호가 영화 단역 배우 선발 오디션 현장을 찾았을 때 그 영화의 조감독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초록 물고기’ 잘 봤습니다. 선배님!”

송강호는 먼저 자신을 알아봐 준 조감독의 인사가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그는 오디션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그에게 장문의 삐삐 녹음이 도착했다. 메시지의 주인공은 인사를 건넸던 조감독이었다. 연기를 정말 인상 깊게 봤다는 말과 함께 어떠한 이유로 탈락했는지 차분하게 설명했다.

오디션에 탈락한 단역 배우에 불과한 자신에게 진심 어린 메시지와 인사를 전한 그 조감독이 고마웠던 송강호는 국민 배우로 등극한 뒤에도 여전히 봉준호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3년 후 ‘플란다스의 개’를 만든 봉준호를 만나자 반갑게 인사를 한 것이고, 그로부터 2년 후 그의 시나리오를 받고 출연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 작품은 바로 역대 한국 영화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히는‘살인의 추억’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괴물’과 ‘설국열차’에 이어 ‘기생충’으로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탄생시켰다.

우리는 이런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을 인연이라고 부른다.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는가? 이런 인연은 여러분 곁에도 있다. 누가 송강호, 봉준호와 같이 당신의 소중한 인연이 될지는 모른다.

내 주변을 한번 돌아보자. 나와 관계된 인연들은 어떻게 만났는가? 인연이야 맺어질 수 있겠지만 이 인연을 좋게 만드느냐 나쁘게 만드느냐 즉, 내가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는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인연을 원하는가? 내가 뿌린 인연이라는 씨앗이 잘 자라고 있는지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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