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국전쟁 70주년, 대중가요로 본 6.25전쟁

고단한 피란살이에도 사랑과 이별 찾아오더라

입력 2020. 06. 26   17:17
업데이트 2020. 06. 28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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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별의 부산정거장 - 호동아 작사 / 박시춘 작곡 / 남인수 노래


전쟁 전 인구 40만 명 부산
피란민 폭증 200만 명 훌쩍
수많은 이별 아쉬움 그린 곡
슬픈 가사와 달리 멜로디 경쾌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6·25전쟁 휴전(休戰) 끝자락에 매달린 절창이다. 6·25전쟁 3년1개월1129일은,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휴전협정 서명으로 정지된다. 종전(終戰)이 아니라 휴전(休戰)·정전(停戰)이었다. 총부리는 겨누고 있되, 총알을 날려 보내지는 않는 상태다. 하지만 부산 피란살이 3년은 종결된다. 이때 휴전선 이남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은 귀향민(歸鄕民), 휴전선 이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은 실향민(失鄕民)이다. 이 노래의 모티브는 전쟁 중 피란지 부산에서 피란민들 사이에 불사르던 로맨스의 비련, 이별 상황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인 1953년 8월 15일, 임시수도 부산에 있던 정부는 서울로 환도(還都)한다. 국회는 9월 16일 서울로 옮겼다. 이 상황에서 부산을 떠나면서, 피란지에서 맺은 연인과 부산정거장에서 이별하는 순간을 리얼리티하게 서정적으로 묘사한 노래가 이 노래다.

설움도 많고 한도 많았던 피란살이,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 천막촌살이에 정이 든 부산,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운다. 하늘도 서러운가 기적소리 뿌우~웅 울리는 정거장(부산역)에 보슬비가 내린다. 그 당시 임시정부는 경상남도 도청 건물(현재 부산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있었다. 그 황막하면서도 위태로운 누란지세(累卵之勢),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과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본체가 낙동강방어선(방어 작전 명칭, Stand or Die. 죽느냐 사느냐) 안에 갇혀 있던 상황. 부산에는 정부와 국회가 와 있었고, 군사 지휘 지원부대와 시설들은 대구에 집중돼 있었다.

당시 육군본부는 대구(중앙초등학교·한국은행 대구지점)에 있었다. 공군본부는 서부초등학교, 육군헌병대는 대구경북지방병무청, 산업은행 2층은 병무청이었다. 수창초등학교는 헌병학교, 경북대사대부속초등학교는 27육군병원, 대구상고(상원고)에 미5공군사령부, 경북여고는 육군포병학교, 달성초등학교는 육군대학, KBS방송국(대구전신전화국)은 전시연합대학교, 계성고·대건고는 육군병원, 삼덕·남산초등학교는 신병교육대, 경북대병원은 제1육군병원, 희도초등학교(희도맨션)는 육본통신감실, 영남중·고는 포병사령부, 북성로 대우유료주차장(미나카이백화점)은 미군헌병대가 주둔했었다.

전쟁 이전 부산 인구는 40만 명, 피란살이 시절에는 200만 명이 훨씬 넘었다. 그렇게 3년을 산다. 양철집에서, 판잣집에서, 처마 밑에서, 길거리에서……. 가사 중에 피란살이·판잣집·경상도 사투리·목멘 기적소리 등이 등장한다. 당시(휴전 이후)는 하루에도 수천수만 명이 부산을 떠났다. 고향을 찾아, 가족을 찾아, 연인을 찾아, 자식을 찾아, 부모를 찾아…. 하지만 몸부림치며 이별을 하고, 기적마저 슬피 우는 가사 내용과는 달리 멜로디는 경쾌하다. 이때 고향이나 친인척을 찾아간 사람들은 귀향민, 북한지역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을 실향민, 70여 년간 북녘 고향 땅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망향민이라고 한다.

1961년 엄심호 감독은 <이별의 부산정거장> 영화를 만들어 최무룡·김지미·조미령·문정숙·이예춘이 열연토록 하였다. 줄거리는 6·25전쟁 중의 항구도시 부산, 법학도인 김진오(최무룡)는 처자식을 서울에 남겨두고 단신으로 부산으로 와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 기생 정채옥(김지미)의 도움을 받으며 사랑에 빠진다. 그런 중에 전쟁 상황은 호전돼 서울이 수복되고 진오는 부산을 떠나야 할 상황을 맞는다. 이 아쉬운 작별의 순간에 <이별의 부산정거장> 노래가 흘러나온다. 부산역은 이별과 만남의 역이다. 이 역은 1905년 1월 1일 서울~초량 간 경부선이 개통됐고, 1908년 4월 1일부로 지금의 부산역에서 업무를 하였다. 이후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 대화재로 중앙동 가건물을 운영하다가 1968년 역사를 신축했다.

작사자 호동아는 유호의 다른 예명이다. 본명은 유해준, 맑은 호수라는 뜻의 유호는 1921년 황해도 해주 출생인데, 군수와 부지사를 지낸 아버지와 같이 서울로 올라와 계동에서 양조장과 금광을 운영했다. 그의 대표작은 <신라의 달밤>, <비 내리는 고모령>, <이별의 부산정거장>,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삼다도 소식>, <고향만리>, <떠날 때는 말없이>, <맨발의 청춘>, <길 잃은 철새>, <님은 먼 곳에> 등이 있으며, <전우야 잘 자라>, <전선야곡>, <진짜 사나이> 등 전쟁·병영가요도 있다.

2절, ‘서울 가는 십이열차에 기대 앉은 젊은 나그네’에 서사한 기차는 짝수열차다. 당시 지방에서 서울을 향하는 열차는 짝수, 서울에서 지방으로 향하던 열차 번호는 홀수였단다. 1959년 안정애가 부른 <대전부르스> 노래 속의 ‘대전발 0시50분 목포행 완행열차’ 서울에서 저녁 8시40분에 출발하여 대전역(그 당시는 서대전역이 없었음)을 거쳐서 목포로 가던 기차는, ‘목포행 33 증기기관차’였다. 지방을 향해서 칙칙폭폭~ 달려가던 홀수 번호 기차다.

6·25전쟁 정전협정 정식명칭은 ‘유엔군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이를 줄여서 정전협정이라 부른다. 휴전(休戰)은 적대행위는 일시적으로 정지되나, 전쟁은 계속되는 상태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전쟁의 종료를 선언하는 강화조약(혹은 평화조약) 이전의 단계다. 정전(停戰)은 전투 행위를 완전히 멈추는 것이며, 교전 당사국들이 정치적 합의를 이룰 수 없어 전투 행위만 정지하는 것을 뜻한다. 교전 당사국 사이에 이견이 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국제기관이 개입하는 경우 정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6·25전쟁 정전이 그런 예다.

유 차 영 
한국콜마홀딩스 전무 /예비역 육군대령
유 차 영 한국콜마홀딩스 전무 /예비역 육군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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