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e스포츠 완전 정복

흥행 시들하자 ‘조작’ 잘못된 선택…국내 리그 사라져

입력 2020. 06. 25   14:35
업데이트 2020. 06. 2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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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워크래프트3’ 맵 조작 사건


한 프로게이머 겸 게임 해설자
리그 부흥 위해 데이터 미세하게 조작
강해진 오크 전투력 의심한 이중헌
맵 파일 구해 사실 확인하고 공개
공정성 무너지며 암흑기 맞게 돼  

‘워크래프트 3’는 맵에디터 기능을 제공해 여러 가지 데이터와 지형을 수정할 수 있었다. 프라임리그에서는 게임 안에 깃발이나 광고 등을 삽입하기 위해 맵에디터를 사용해 왔지만, 데이터 조작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필자 제공
‘워크래프트 3’는 맵에디터 기능을 제공해 여러 가지 데이터와 지형을 수정할 수 있었다. 프라임리그에서는 게임 안에 깃발이나 광고 등을 삽입하기 위해 맵에디터를 사용해 왔지만, 데이터 조작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필자 제공
화면상에 보이지 않는 수치들을 건드린 것이 맵조작 사건의 핵심이었지만, 프로 게이머의 눈에는 그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이중헌은 이상하게 강해진 오크의 전투력에 의구심을 품었고, 날카로운 프로선수의 감각에 조작사건은 덜미를 잡혔다.  필자 제공
화면상에 보이지 않는 수치들을 건드린 것이 맵조작 사건의 핵심이었지만, 프로 게이머의 눈에는 그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이중헌은 이상하게 강해진 오크의 전투력에 의구심을 품었고, 날카로운 프로선수의 감각에 조작사건은 덜미를 잡혔다. 필자 제공

‘워크래프트3’의 성공은 ‘스타크래프트’ 단독 흥행이라는 e스포츠의 다양성 부재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리그의 가능성을 방송사와 시청자 모두가 기대하게 하였다. 실제로 적지 않은 리그가 형성되고 흥행을 일으켰지만 쉽게 커 나가진 못했다. 그리고 ‘맵 조작 사건’은 흥행에 결정타를 먹이고 말았다.
e스포츠 시장이 커지면서 여러 가지 흑역사들 또한 함께 등장한 바 있었다. 그중에서도 굉장히 앞선 시대에 크게 터진 이슈가 오늘 이야기할 ‘워크래프트3’ 맵 조작 사건이다. 공정성이 핵심가치로 자리하는 e스포츠 판을 뒤흔든 이 조작 사건은 여러 가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가능성을 보이던 ‘워크래프트3’ 국내 리그의 문을 사실상 닫게 만든 중대한 사건이었다.
  

힘 잃어가던 ‘워크래프트3’ 마무리 일격

2000년대 중반 e스포츠를 이끌던 한국의 양대 케이블 방송사인 온게임넷(현 OGN)과 MBC게임(폐국)은 ‘스타크래프트’ 이외의 새로운 리그들을 확보하며 흥행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워크래프트3’ 리그였다. 두 방송사는 각각 ‘온게임넷 워3 리그’, ‘MBC게임 프라임 리그’를 운영하며 나름의 흥행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흥행은 예상만큼 커 나가지 못했다. ‘스타크래프트’의 압도적인 인기는 다른 리그가 클 만큼의 여지를 만들기 어려웠고, 각 방송사도 같은 시간대에 리그를 편성할 때 ‘스타크래프트’가 갖는 만큼의 힘을 보장하기 어려운 신생 리그에 힘을 쏟기 어려웠다. ‘워크래프트3’ 리그가 주춤하면서 리그 스폰서를 구하는 일도 어려워졌고, 결국 온게임넷이 워3 리그를 포기하면서 양대 리그는 막을 내렸다. MBC게임의 프라임 리그만이 유일한 워3 대형 리그로 남게 된다.

‘워크래프트3’ 리그 전반의 내림세는 관련자들에게 위기감을 심었다. 이대로 리그가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각 구단과 선수들, 리그 및 방송 관계자들에게 현실적인 이슈로 다가왔다. 불안의 시대 속에 한 관계자는 그만 옳지 못한 선택을 하고 만다.
  

맵 조작 사건이 밝혀지다

지난주에 언급했던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 이중헌은 어느 날 장재호와 함께 MBC게임 워3 프라임 리그 경기 영상을 보며 검토하다가 이상한 사실을 알아챈다. 당시 최약체로 불렸던 오크가 경기에서 미묘하게 강했던 것이다. 특히 오크가 주종족이었던 이중헌의 눈에는 더욱 도드라지게 보였다.

이중헌은 자신의 의구심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경로로 수소문하여 경기 당시 사용되었던 맵과 리플레이 파일을 구했다. 맵 파일을 뜯어보려 했으나 잠겨 있었고, 전문 맵 프로그래머를 통해 프로텍트를 해제할 수 있었다. 열어본 맵의 상태는 이중헌의 의심대로였다. 게임 데이터들이 조작되어 있었다.

데이터 조작은 게임 중계에서는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이루어졌지만 명백하게 밸런스를 깰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당시 강력하다고 평가받았던 나이트엘프의 유닛 생산시간들이 늘어났고, 유닛들의 자연적인 체력 회복률이 살짝 감소했다. 반면 최약체 종족으로 거론되었던 오크의 경우 전체적으로 모든 수치가 조금씩 향상되는 방향으로 조작이 이루어졌다. 생산시간이 단축되었고, 공격 속도도 미세하게 향상되었다. 화면상에 표시되는 수치인 공격력·방어력 등은 건드리지 않은 대신 표시되지 않는 부분들에서 오크에 대한 데이터 수치 상향이 크게 나타나고 있었다.

오크 플레이어였던 이중헌은 자신의 종족에 유리하게 변경된 이 조작을 확인하고 한참 고민한 끝에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그동안의 리그에 사용된 맵들이 조작되었음을 공개했다. 조작 당사자의 신원을 알리는 게 껄끄러울 수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리그의 공신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e스포츠의 기반 공정성이 침해받다

맵 조작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는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이기도 했고 당시에는 MBC게임에서 해설과 리그 진행을 맡고 있었던 장재영이라는 인물이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그의 해명이 나왔는데, 갈수록 흥행에서 밀려나는 리그의 부흥을 위해 최약체였던 오크가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붐을 일으키기 위한 조작이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리그는 맵 조작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규칙 아래에서 펼쳐져야만 하는 것이 e스포츠이고, 공정성은 리그의 신뢰를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기반임을 잊은 것이다. ‘워크래프트3’ e스포츠를 다루는 모든 커뮤니티에서 분노한 게이머들의 의견이 폭발했고, 그 뒤로 ‘워크래프트3’ 리그는 국내에서는 다시는 메이저 e스포츠 리그로 올라서지 못하는 암흑기를 맞았다. ‘워크래프트3’를 플레이하던 e스포츠 선수들은 리그가 사실상 없어지면서 해외진출이나 은퇴 등의 수순을 밟았고, 국내에서는 더 이상 ‘워크래프트3’ 리그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e스포츠가 열광을 불러올 수 있는 기반은 공정성이다.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규칙의 장 안에서 승부를 겨루고, 그 승부에서 승리를 쟁취해 나가는 선수들의 드라마가 쓰이는 곳이 게임, 그리고 e스포츠의 공간이다. 하지만 맵 조작 사건처럼 리그의 흥행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혹은 더 심하게 특정인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여러 부정한 시도들은 언제나 e스포츠 판을 위협해 왔다. 맵 조작으로 크게 타격을 받은 e스포츠는 이후 더욱 더 크나큰 공정성의 위기를 마주하게 된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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