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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병영칼럼] 짜장면을 사랑합니다

입력 2020. 06. 25   14:52
업데이트 2020. 06. 2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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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찬 일 요리사·칼럼니스트
박 찬 일 요리사·칼럼니스트

 
돌이켜보면, 현역 시절에 제일 그리웠던 건 전화였다. 그다음은? 짜장면이었다.

짜장면은 음식 이상의 무엇이었다. 늘 미쳐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평생 먹어온 짜장면의 기억은 거의 저장되어 있을 정도다.

스무 살 무렵 광주에서 먹었던 충격적인 무 짜장면(당시 그 지역에서는 감자가 부족하면 무를 넣곤 했다), 고교 식당에서 팔던 400원짜리 학생용 짜장면의 맛, 너무도 배가 고파서 서울역 앞 어느 중국집에서 주민증을 맡기고 먹었던 기억, 인생 처음으로 먹었던 곱빼기의 추억도 고스란히 살아있다.

초등 삼학년 어느 날, 어머니가 사주시는데 곱빼기를 먹겠다고 했다. 당시 남자애들은 언제쯤 곱빼기를 먹어낼 수 있는지 예민하게 따졌다. 남자 한몫을 한다는, 장정이 된다거나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를 짜장면 곱빼기로 측정(?)하던 때였다. 당시와 비교하면 요즘 곱빼기는 정말 양이 적다. 사십여 년 전에는 거의 양푼이 꽉 찰 정도로 나왔다. 요즘 보통 양의 정확히 두 배는 되었다. 곱빼기는 원래 두 배란 뜻이지만, 중국집에서는 돈을 약간만 더 받고 1.3배에서 1.5배 정도 주는 걸 뜻한다.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다. 하지만 배고픈 이를 위해서 중국집에서 베푸는 일종의 서비스였다. 가난한 소년과 학생, 노동자들이 먹는 음식이 곱빼기였다. 곱빼기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중국집에서는 짜장면뿐만 아니라 짬뽕과 볶음밥도 곱빼기가 있다.

살짝 슬픈 역사도 있다. 의정부 306보충대 앞 중국집에서 당연하게도 입대 전 마지막 짜장면을 먹었다. 그걸 3분의 1 정도 남겼다. 뒷날, 동석한 어머니가 술회하시기를,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하셨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 좋아하는 짜장면을 남겼겠느냐고. 정말 그랬던 것 같다. 누가 그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짜장면을 가지고 군대 시절의 개인사를 쓸 수도 있다. 급양에 짜장면이 없었고, 매점에도 냉동이 없던 때라 당연히 못 먹었다. 부대 밖 업무 사역을 나가면, 인솔한 선임하사님이 고생했다고 자비를 털어 짜장면을 사주시곤 했다. 힘든 사역에도 지원자가 넘쳤다. 휴가 복귀 전 마지막 음식도 대개는 짜장면이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미치게 짜장면이 먹고 싶은 시간이 없다. 나이도 들었고, 기름기 많은 밀가루 음식이라 소화도 잘 안 된다. 곱빼기? 물론 시키지 않는다. 몇 번 욕심이 나서 시켜보았지만, 이제 줄어든 위의 용량과 소화력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마도 두어 살 무렵 시작했을 짜장면을 이 나이가 되도록 많이도 먹었다. 한국식 밥을 빼면 제일 많이 먹은 별식(別食)이었다. 외근을 나가서도 먹었고, 요리사가 되어서는 매일 비슷한 직원식에 물리면 짜장면을 먹었다.

어떤 음식 하나에 이토록 오랫동안 열광해온 것도 없을 것 같다. 당신에게도 그런 음식이 있겠지. 부디 더 많이 드시고 사랑하시라. 나는 영원히 짜장면을 먹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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