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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 중국 법률전

입력 2020. 06. 16   14:11
업데이트 2020. 06. 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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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논단 1805호(한국국방연구원 발행)


   
이강규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kangkyulee@kida.re.kr

송화섭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songws@kida.re.kr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거세다. 코로나 19사태에 대한 중국의 배상책임 제기, 세계보건총회 대만 옵저버 복귀 촉구, 청나라 시기 중국 국채 상환 요구 등 최근 미국 내에서 전개되는 사례 들은 법률과 관련된 절차 등을 통한 압박과 우호적 여론조성을 위한 법률전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것이 미·중 양국 간의 갈등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법률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살피면서 대비하는 노력을 좀 더 기울여야 할 때다.


 
최근 홍콩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법률전(法律戰)’의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중국이 홍콩에 대해 국가보안법(國安法)을 제정하겠다고 하자, 미국은 홍콩에 특별지위를 부여하는 미국의 홍콩정책법(U.S. Hong Kong Poilcy Act of 1992)을 재검토하겠다며 맞불을 놓은 것이 좋은 예다. 심리전이 상대의 의사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여론전이 대중의 인식과 사고방식에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면, 법률전은 국제법이나 국내법을 이용해 법적 기반의 우위를 점하려는 것을 일컫는다. 물론, 이 세 가지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법률전은 중국이 심리전, 여론전과 함께 ‘삼전(三戰)’의 하나로 개념화시킨 것으로 본다. 그 유래가 2003년 12월 5일에 발표된 중국인민해방군 정치공작조례(中國人民解放?政治工作例)(이하《조례》)였기 때문이다. 이《조례를》 보면, 삼전은 전시 또는 적대행위가 발생하는 시점과 관련되어 있다. 제14조 중국인민해방군정치공작의 주요 내용 중 제18항의 ‘전시(戰時)’ 정치공작, 제17조 총정치부의 주요직책 중 제13항의 ‘전시’ 정치공작 지도, 제68조 군구급 단위 정치부의 주요직책 중 제13항 부대의 ‘전시’ 정치공작의 지도에 각각 기술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법률전은 중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무력 사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된 UN 성립 이후의 국가 간 분쟁들은 법률전을 수반한 것이 많았다. 하나의 사례로, 9·11 테러로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조차 무력사용 금지 원칙을 피해가기 위한 예외로서 자위권을 인정받기 위해 UN 안보리를 통한 절차를 밟은 것을 들 수 있다. 중국의 법률전 사례로 많이 거론되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중국의 행동방식을 보더라도 전시나 적대행위를 예정하지 않고 평시에 법적 지위를 강화하거나 이를 통해 타국의 지지를 얻고자 노력하는 면이 크다. 이처럼 법률전은 중국만의 특이한 전법이 아니며, 반드시 전쟁행위를 수반하는 것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목적으로 자국의 국내법이나 국제법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법률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국제사법재판소나 세계무역기구 패널에 제소하는 등 국제사법절차를 이용하는(use) 것으로, ‘협의의 법률전’이다. 다른 하나는 국내의 입법 또는 사법절차를 활용하는(exploit) ‘광의의 법률전’이다. 최근 미국 내 움직임을 보면 중국을 겨냥한 광의의 법률전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이하 코로나 19 사태)에 대한 손해배상 제기, 대만의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참여에 대한 적극적인 요구, 청나라 시기에 발행된 철도채권의 상환청구 움직임이 그것이다. 최근 코로나 19 사태를 둘러싸고 미·중 간의 공방이 격화되면서 실제로 미국이 대중 법률전을 본격화하 려는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년 차에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자 중국에서 는 미국이 법률전을 벌일 것이라는 견해가 일각에서 이미 제기되기도 했었다.

코로나19에 대한 배상청구

연방정부는 아니지만, 미주리주에 이어 미시시피주와 플로리다주에서 중국에게 코로나 19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이 연이어 제기되었다. 미주리 주의 에릭 슈미트(Eric Schmitt) 주 법무장관은 “정보를 숨기고, 내부고발자들을 체포하고, 코로나 19의 전염성을 부정하여 미주리주에 인명손실과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입혔다”는 이유로 중국정부와 중국공산당뿐 아니라 중국 관료들과 기관을 상대로 지난 4월 21일 소송을 제기했다. 미시시피주의 린 피치(Lynn Fitch) 주 법무장관도 중국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히며 미시시피주의 연방상원의원과 하원의원에게 이를 지원하는 법률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에 몇몇 연방의회의 의원들은 주권국가는 타국의 재판관할권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주권면제를 “생물무기의 살포” 등 예외적인 요건하에 부인하자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주정부의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다. 물론, 이를 통해 코로나 사태에 대한 중국의 책임을 묻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주권면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 제한할 수 있다는 견해가 근래 들어 대두되기도 했지만, 그 사유가 국제법상 강행법규의 위반 등으로 매우 좁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주권면제라는 국제법의 원칙이 상호주의에 기반하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의 주권면제를 부인하는 순간, 전 세계에서 미국을 상대로 제소가 일어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정부에 이어 연방의회도 일부 가세했고, 연방정부 차원의 주권면제 제한 방안이 일각에서 논의 중이라는 보도가 있는 것으로 보면, 산발적인 대중 법률전이 미 국가 차원으로 확대되는 과정으로 볼 개연성은 충분하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한 글로벌 패닉으로 중국에 대한 반감을 타고 더욱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중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영문판 언론을 통해 이런 제소는 어리석은 짓이라거나, 미국이 이를 남발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등 공방이 거세질 기미가 보인다.
  
대만의 WHO 옵저버 지위 요청

2020년 5월 18일과 19일 양일간 화상회의로 열린 제73차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 WHA)에서 미국과 중국은 예상대로 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국 측은 코로나 19 사태와 관련하여 자국 정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고 개도국의 방역과 경제회생을 위해 2년 간 20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반면, 미국은 정보공유와 투명성에서 실패했다고 하면서 팬데믹의 원인을 중국에 돌리며 비난했다. 양국의 행보는 법률전보다는 적에 대한 불리한 여론을 키우고 자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자 하는 여론전에 가까웠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번 회의에서 눈여겨볼 점은 미국이 대만의 WHO 옵저버 복귀 문제를 거론한 것이었다. 중국은 독립을 주장하는 차이잉원(蔡英文)이 총통이 된 것을 빌미로 2009년부터 이어져 왔던 대만의 옵저버 참가를 반대했고, 이로 인해 대만은 2017년 이후 WHA에 참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이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대만이 코로나 19 대응에 성공적인 대처를 했다는 점에서 명분을 확보할 수 있고, 대만과의 비교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중국의 책임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대만의 복귀 여부는 법률적 문제이며, 미국의 지원도 법률의 작동에 의한 것이다. 법률적인 문제라는 것은 대만이 WHO에서 회원국의 지위를 상실한 것이 1971년 10월 25일에 채택된 유엔 결의 제2758호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대만이 아닌 중국이 유엔에서 유일한 합법적 대표가 되었고, WHO에서도 중국이 유일한 회원국이 되었던 것이다. 옵저버 지위의 획득도 대만을 국제법상 국가로 볼 것인지, 아니면 국제기구에서 지위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 등과 관련된 법적인 문제다. 미국에서는 상원이 대만의 WHO 옵저버 복귀와 관련된 법안을 지난 5월 11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제임스 인호페(James Inhofe) 공화당 상원의원과 로버트 메넨데즈(Robert Menendez) 민주당 상원의원이 공동 발의한 법안은 국무장관에게 대만이 WHA에서 옵저버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전략을 강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통과 과정에서 상하원 의원들은 대만의 WHO 복귀와 WHA 참가를 지지해줄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55개국 정부에 보내기도 했다. 물론 상원을 통과했다고 바로 법률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법률전의 효과는 있다고 판단된다. 중국 언론은 대만이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국제사회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인한 것이라는 외교부 대변인의 말을 인용하는데 그치는 듯했지만, 미국의 이러한 법률전이 중국의 무력대응을 가져올 것이라는 경고를 하기도 했다.

이번 총회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올해 연말까지 논의를 미룸으로써 논의의 불씨를 살려두었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8국은 대만의 참여를 지지하고, 온두라스 등 15개국은 총회에서 의제로 삼을 것을 요구하는 등 미국의 입장에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볼 수도 있다.

청나라 시대 철도 채권의 상환청구

미국이 아직 꺼내지는 않았지만 후광(湖廣)철도 채권은 또 다른 카드가 될 수 있다. 청나라가 후난지역과 지금의 광저우를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당시 600만 파운드의 채권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4개국에 판매하였는데, 그중 일부에 대해 미국 채권자 재단(American Bondholder Foundation)이 미·중 갈등 국면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믿고 상환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후광철도 차관은 청나라 말기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싸움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1911년 신해혁명의 도화선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등, 중국 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이것이 최근 다시 미·중 관계에서 떠오르는 이유는 법적으로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유효한 채권이기 때문이다. 이 채권은 1911년 신해혁명이 발발하면서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였다가 1939년까지는 대만 정부가 이자를 지급했고, 일부는 1951년에 만기가 되는 등 그 성격이 모호해진 상태였다. 미·중 국교 정상화를 맞아 1979년에 9명의 채권소유자들이 소송을 걸었고 1983년에 4,100만 달러에 대해 원고 승소판결을 받았다. 중국은 주권면제를 주장하며 불참했지만, 법원은 국가의 상업적 활동은 주권면제의 대상이 아니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어진 두 번째 재판에서는 중국 이 미국인 변호사를 고용하여 소송에 참가했는데, 법원은 미국의 주권면제법의 시행 이전에 행해진 행위에 대해 판단할 권한이 없다며 소송을 기각했다. 1984년의 일이었다.

이에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미국 채권자 재단이 이 문제를 다시 들고나온 것이다. 이번에는 단순히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므누신 재무장관, 로스 상무 장관과 만남을 가진 것을 보면 미 정부 차원의 개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1983년 판결에서 법원이 승소판결을 내렸지만 배상액을 받아내지 못한 것은, 장기간의 국교단절로 주권면제에 해당하지 않는 중국 자산이 미국 내에 없어서 압류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에 상장된 중국 회사만도 200개에 달하는 등 미국 내에 중국 자산이 많기 때문에 원고 승소의 경우에는 상당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재판의 승소 여부와 배상액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이자 미지급액과 그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약 1조 6,000억 달러가 될 것이라는 게 미국 채권자 재단의 주장이다. 중국이 보유한 미 국채 1조 1,000억 달러를 상회하는 액수다. 무역전쟁 이전의 미·중관계를 놓고 볼 때는 미국이 구사하기 어려운 카드로 보이지만, 최근 미국 행정부의 강경한 대중정책과 금전을 가지고 거래와 압박을 마다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감안할 때, 법률전에 활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함의

법률전은 법적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상대에게 타격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리한 위치에 있을 경우 효과가 크다. 심리전과 여론전은 여기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국제법상의 법률전을 생각해본다면 이해가 쉽다. 국제법의 큰 축을 담당하는 국제관습법의 성립요건이 일반관행 (general practice)의 존재와 법적확신(opinio juris)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국을 지지하는 국가를 많이 확보할수록, 즉 여론을 유리하게 움직일수록 일반 관행의 존재 입증도 유리해지게 마련이며, 이 경우 상대가 심리적으로 타격을 입게 된다. 대만의 WHO 복귀에 대해 미 의회가 여러 나라에 지지 요청을 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도 언제든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번 법률전의 전개가 미국과 중국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국내 법률을 이용한 법률전이라고 하더라도 상대국가가 있는 전쟁이기 때문에 국제법적 영향으로 전파되기 마련이다. 앞서 살펴본 주권면제만 하더라도 일국의 국내 법원의 문제지만 그 효과는 타국에도 미치고, 이것이 일반관행으로 인정된다면 그것 자체가 국제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국 법률전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법적 전개의 추이를 잘 파악해야 한다. 미국의 대중국 법률전의 영향이 중국에만 국한될 것인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칠지를 가늠하면서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두가지 경우를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미국의 법률전의 적법성이 충분하여 명분이 확실한 경우다. 이때 우리의 선택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국이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게끔 논리를 내세우되, 중국의 자존심을 최대한 지켜주는 물밑작업에 공을 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미국의 법률전이 법적 타당성이 부족한데 단순한 단발성 협조를 해야 하는 경우다. 단순한 지지를 표명하여 미국의 유리한 여론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이되, 그것이 법적 행동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행동은 그 자체로 국제관습법 형성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란 점을 생각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미국이 단발성 협조가 아닌 법률전의 법적 타당성을 높이기 위한 지원을 요구하는 경우라면 명분과 정당성을 고려하여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슈와 연계하는 전략을 통해 미국에게 얻어낼 것을 얻어내는 것도 고민해 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도 미국의 대중 법률전을 지켜보면서 학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전에서 우리의 취약점은 무엇이 될 것인지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등을 생각해봐야 한다. 다만, 법률적 근거의 우위에 기하여 거기에 매몰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상대의 반발을 가져와서 전투에서는 승리하고 전쟁에서 패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수단을 결합하여 명분을 쌓아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 본지에 실린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본 연구원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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