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최신 군사학 연구동향

미국의 대전략, 고립주의로 되돌아갈 것인가?

입력 2020. 05. 29   16:55
업데이트 2020. 05. 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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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린 어페어즈』 최신호의 ‘미국의 귀환?’ 특집기획


아프간·이라크전 등서 실망감
대외적 군사개입 축소 쟁점으로
“中·러 등 강대국과 협력” 목소리도 

 
트럼프 ‘美 우선주의 축소론’ 초점
한국 안보전략 재검토 필요할지도 

 

러시아는 아무런 국가 표지도 부착하지 않은 병력을 파견하여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서방 언론에서는 이들을 ‘작은 그린 맨(little green men)’이라 불렀다. 사진은 병력들이 2014년 크림반도의 한 군사기지를  장악한 후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위키피디아
러시아는 아무런 국가 표지도 부착하지 않은 병력을 파견하여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서방 언론에서는 이들을 ‘작은 그린 맨(little green men)’이라 불렀다. 사진은 병력들이 2014년 크림반도의 한 군사기지를 장악한 후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위키피디아

미국의 대표적인 국제관계 학술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 최근 호(March·April 2020)는 ‘미국의 귀환?(Come Home, America?)’이란 제목의 기획 아래 미국의 대전략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들을 실었다. 핵심 쟁점은 미국의 제한된 능력을 고려해 대외적 군사개입을 축소하고 자제(restraint)하는 방향으로 미국의 대외전략을 수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패권을 포기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고립주의로 귀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中·러,갈수록 영향력 확대

 
탈냉전 이후 미국은 단일 패권국으로서 권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몰입한 사이에 러시아는 과거의 영광을 꿈꾸며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2014년 크림반도 점령은 서방을 깜짝 놀라게 만든 사건이었다. G2로 부상한 중국은 더욱 위협적인 존재다. 멀지 않아 미국의 경제력을 압도할 것이라는 예측은 미국의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 2018년에 발표한 미국의 ‘국가방위전략(NDS)’에서 “중국·러시아와 같은 나라와의 전략적 경쟁이 재현되는 것이 미국의 번영과 안보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도전이 될 것”으로 분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의 대전략 논의에서 미국의 귀환, 즉 대외적 개입의 자제와 축소론이 제기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실패했다는 분석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엄청난 비용과 함께 군사적 개입에 대한 실망만 안겨 주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러시아의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러시아가 발틱 국가들을 침공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위협적인 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대해서도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이나 이란의 핵 개발에 대해서도 무력하기는 마찬가지다.


군사적 개입의 한계

스테판 워싸임 박사가 ‘압도적 우위(primacy)의 가치’라는 글에서 강조한 것도 군사적 개입의 한계다. 우선 의도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확인됐다. 더 중요한 문제는 상대방의 더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란 군 지휘관을 사살함으로써 전쟁위기로 치달았던 이란 사태가 대표적 사례다.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패권 유지 전략은 현실적으로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략적 목표와 자원을 비교 분석한 랜드연구소의 보고서(2019)는 목표와 수단 사이의 ‘불일치(Mismatch)’를 강조한다. 기존 국방예산으로는 기대되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한국이나 중동은 제대로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의 군사력 지배는 일종의 ‘신화’라고 비판한다. 제1차 세계대전은 연합군의 일부였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주전장은 동부전선이었다. 일본 관동군을 궤멸시킨 것도 소련 군대였다. 한국전에서는 겨우 중공군을 막아냈고, 베트남전은 사실상 패배였다. 그나마 승리를 주장할 수 있는 걸프전의 경우도 광활한 사막에서 제대로 싸울 의지도 없는 군대와의 전쟁이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말할 것도 없는 실패였다. 국방예산이 많다고 해서, 훈련 강도가 높다고 해서 전투효율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대국 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미국 대전략이 기존의 자유주의적 패권 유지보다 대외적 협력에 기반한 ‘자제’로 돌아오게 될 경우,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쟁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점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저술로 유명한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이제 미국도 다른 강대국과 지구촌의 책임을 분담하는 것(Sharing the Globe with Other Great Powers)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편다. 패권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강대국의 경쟁’이 아니라 그들 간의 ‘협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영역과 권능을 인정해야 한다. 상호 인정 없이 협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대전략의 종언(the End of Grand Strategy)’을 거론하는 글도 함께 게재됐다. 기존 논쟁은 ‘패권 유지’ 대 ‘개입 자제’라는 대전략의 기본개념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대전략은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장기적인 경쟁 관계가 설정된다. 그러나 만약 권력 상황이 변동적이고 피아(彼我) 관계가 고정적이지 않다면, 이러한 장기적 대전략의 설정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안별로 연구와 토론을 통해 대응 방안을 찾아가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배적 패러다임이 가진 안정성보다는 상황에 따라 새로운 전략적 구상을 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역량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에 출판된 학술지(Survival: Global Politics & Strategy)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편 논문들이 게재됐다. ‘보다 신중한(prudent) 미국의 대전략을 향해’라는 논문에서 필자들은 이제 미국은 압도적 우위의 패권을 포기하고 보다 온건한 대외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군사력보다는 외교와 통상, 그리고 상호협력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외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미국 스스로가 자유주의적 가치와 행동규범에 부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대한 전쟁의 가능성

이러한 개입 자제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미국 패권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안보전문가가 미국의 패권적 역할이 중요하며, 미국이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버팀목 역할을 수행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국방 분야에서는 미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 중국이나 러시아를 상정한 전면전 상황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가방위전략’에서 강대국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설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후 미국 국방 관련 저널에서 ‘동급 국가(peer state)’ 간의 ‘중대한 전쟁(major war)’을 언급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중대한 전쟁을 전제로 한 전략기획과 전력구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점은 미국이 여기에 얼마나 준비돼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서바이벌’ 지에 게재된 ‘미국은 강대국과의 경쟁에 대비하고 있는가?’란 글에서 저자들은 부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이 내세우고 있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대내적 균형(예산과 국민의 지지 확보)과 대외적 균형(동맹과 집단안보 강화) 양 측면 모두에서 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방예산의 부족은 별도로 하더라도, 발틱 국가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지키기 위해 미국이 러시아나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 일에 미국인들이 동의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전략이 어떻게 변화될지 결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정책은 개입과 축소가 엇박자를 내는 모순된 형태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우선주의에 기반한 축소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자제와 축소가 대세가 된다면, 미국의 개입주의 대전략에 기반한 한국의 안보 전략 역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할지 모른다. 의당 주한미군을 비롯한 한미동맹의 성격과 내용 또한 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다. 주한미군 분담금을 둘러싼 논란이 단지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고집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영진 교수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최영진 교수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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