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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처럼… 예민한 감각·날카로운 발톱 세워라”

임채무 기사입력 2020. 05. 27   17:25 최종수정 2020. 05. 27   17:27

[알쏭달쏭 군사상식] 유격훈련 ‘올빼미’의 유래는?

60년 초반부터 ‘훈련’ 상징化
현재는 ‘교육생’으로 대체 사용
훈련도 체력 위주서 종합형 진화 

 

유격훈련 2주 차 유격전술훈련에 돌입한 육군53사단 기동대대 장병들이 수색정찰 훈련 중 기초유격훈련 과제 가운데 하나인 ‘전우와 담장 넘기 코스’ 극복 방법을 바탕으로 암석지대를 극복하고 있다.  양동욱 기자

한층 더워진 날씨와 함께 코로나19로 제한적으로 진행됐던 야외훈련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면서 각 부대가 유격훈련에 돌입했다. 바야흐로 유격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유격은 통상 부대별로 4박 5일 동안 진행되며, 훈련 기간 중 계급과 이름 대신 방탄헬멧과 왼쪽 가슴에 적힌 번호로만 관등성명을 말하게 된다. 그런데 지난 19일 기자가 현장에서 본 육군53사단 기동대대의 유격훈련 모습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유격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게다가 훈련은 무려 2주에 걸쳐 진행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알쏭달쏭 군사상식, 오늘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유격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유격훈련의 상징


유격훈련은 혹한기훈련과 함께 육군을 대표하는 양대 훈련으로 꼽힌다. 특히 70~80년대 군 생활을 했던 예비역들이라면 ‘올빼미’라는 단어와 함께 눈물, 콧물을 빼던 ‘화생방훈련’을 잊지 못한다. 이 중 ‘올빼미’라는 단어는 현재 ‘교육생’으로 대체해 쓰이고 있다. 유격훈련장에서 언제부터 교육생을 올빼미라고 불렀는지는 의견이 분분한데 육군보병학교에 따르면 올빼미라는 단어는 1962년 학교 내 장애물 교장을 포함한 유격훈련장이 신설되고 소대장들을 대상으로 장애물 극복훈련이 시작되면서부터 쓰였다고 한다. 당시 미(美) 특수전학교에서 유격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국내로 돌아온 장기오(육사 12기)소령이 한국 유격훈련의 상징을 고안하게 됐고, 어둠 속에서의 시력과 미세한 소리감지 능력, 날카로운 발톱, 소리 없이 비행하는 능력 등이 유격훈련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해 ‘올빼미’로 정하게 됐다고. 이후 올빼미는 유격훈련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으나, 교육생을 올빼미라고 칭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의견 등이 나오면서 어느 순간 사용하지 않게 됐다.


부대 훈련인 우리 군, 개인 자격훈련인 미군


유격훈련에 얽힌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바로 미군 유격훈련과의 차이점이다. 우리 군에 유격훈련이 도입된 시기는 6·25전쟁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미군이 영도유격대 등 우리 군 장병들에게 유격훈련을 교육했다는 내용 등이 여러 기록에 남아 있다. 또 1951년 중순 미 교범 FM 100-5(1950)가 번역돼 최초의 유격교범인 『대유격작전』이 발간됐다는 부분도 유격훈련의 도입 시기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이 시기 유격훈련 과목은 미군의 훈련 과목과 유사한 개인화기, 독도법, 무전기 사용법, 위생법, 정찰, 공수훈련 등으로 구성됐다. 이렇듯 우리 군의 유격훈련 형태는 미군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으나, 현재 그 모습은 상당히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우리 군은 전 장병을 대상으로 매년 1회 이상 유격훈련을 한다는 것이다. 미군은 유격훈련을 개인 자격훈련으로 보고 지원자에 한해 보병학교에 입소해 훈련받도록 한다. 특히 훈련 기간이 무려 9주로 휴무일 없이 연속으로 훈련이 진행될 정도로 강도가 높다. 이 때문에 훈련 대상도 전투병과 지원자 중에서 입교자격시험 합격자에 한해 훈련기회가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훈련 내용도 다르다. 미군은 강인한 체력단련과 기초 및 종합장애물 극복에 더해 육상·해상·공중을 망라한 다양한 전투기술 연마에 훈련 중점을 두고 있다. 공중침투도 유격훈련의 일부이기에 공수훈련을 사전에 이수하지 않는 자는 유격훈련 입교자격이 부여되지 않는다.


6·25전쟁 당시 15일 이상, 현재 2주 훈련

반면 우리 군의 유격훈련은 부대별 임무 및 여건을 고려해 다소 차이가 있지만, 통상 ‘체력단련’과 ‘장애물 극복능력 배양’ 등의 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체력단련’ 과정에서는 유격체조와 참호격투·뜀걸음·행군을, ‘장애물 극복’ 과정에서는 기초 및 산악 장애물·종합장애물·야간방향탐지 및 유지 등의 훈련을 받는다. 훈련을 수료한 모든 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하는 화생방훈련도 이 과정에 포함된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우리 군의 유격훈련이 원래는 2주 이상 진행됐다는 것이다. 6·25전쟁 당시 기록 등에 따르면 우리 군의 유격훈련은 그 기간이 최소 15일 이상이었다. 물론 당시 급박했던 전황으로 인해 교육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작전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었다. ‘2주 훈련’의 흐름은 휴전 이후에도 이어졌으나, 1965년 훈련 대상이 육군 전 부대원으로 확대되면서 생도 및 후보생 등 간부 양성과정은 2주 훈련, 일반 야전부대는 1주 훈련으로 점차 변경됐다. 현재는 육군사관학교 생도 등 일부 간부 양성과정과 특공·수색·강습(기동) 부대에 한해서 2주 유격훈련이 이뤄지고 있다.


종합훈련으로 진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유격훈련도 많은 부분이 진화했다. 훈련의 중점이 단순한 체력단련과 장애물 극복능력 배양에서 벗어나 강인한 정신력과 전우애, 부대 단결력 등을 키우는 하나의 종합훈련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부대에서는 유격훈련을 부대의 작전 수행을 위한 전반적인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기회로 삼고 있다.

육군53사단 기동대대의 2주 유격훈련이 대표적이다. 사단은 육군 규정과 교육사령부의 지침에 따라 올해부터 기동대대 장병들을 대상으로 기초 유격훈련과 유격전술훈련으로 이뤄진 2주 유격훈련을 시행했다. 이 중 유격전술훈련에서는 산악과 해안선, 도심지를 맡고 있는 사단 작전지역에서 장병들이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METT+TC(Mission, Enemy, Troops available, Terrain, Time, Civilian considerations·임무, 적, 가용부대, 지형, 시간, 민간요소)를 접목해 훈련을 진행했다. 특히 유격훈련에서는 보기 드물게 실 자산을 이용한 공중기동 및 급속 헬기로프 하강, 수색정찰, 기동타격, 탐색격멸작전 등을 훈련 과제로 포함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임채무 기자 lgiant61@dema.mil.kr


임채무 기자 < lgiant6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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