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MZ세대를 말하다

참여할 수 있다면… ‘판’ 벌이고 논다

입력 2020. 05. 26   17:03
업데이트 2020. 05. 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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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판플레이: 판(놀거리의 집합)+Play(놀다)


콘텐츠 단순 소비에 그치지 않고
직접 멍석 짜고 깔고 거기서 즐겨
관짝소년단·‘1일1깡’ 밈 대표적

 
아이돌 팬들 덕질 놀이부터
‘보헤미안 랩소디’ 싱어롱 관람
‘기생충’ 포스터 대형 사진 찍기
더러운 자취방 선발대회까지
어디서건 어떤 것이든 놀거리로

가수 비의 ‘깡’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가수 비의 ‘깡’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스테이 앳 홈 오어 댄스 위드 어스(Stay at Home or Dance with us).”

직역을 하면 “집에 머물러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와 춤을 추어라” 정도가 될 터인데 무슨 말일까. 문구와 함께 나온 사진들을 보면 선글라스를 끼고 하얀 셔츠에 예복 같은 까만 재킷을 입은 흑인 청년들이 보인다. 이들은 아프리카 가나의, 우리로 치면 장례식을 주관하거나 일정 부분을 대행해주는 상조회사나 장의업체 직원들이다. 장례 의식이 나라에 따라 다르기도 한데, 가나에서는 전통적으로 망자가 즐겁게 떠나고, 남은 사람들도 위로해주는 목적으로 흥겹게 장례식을 치른다고 한다.

이 친구들은 BGM, 곧 배경음악으로 젊은 감각에 맞춰서 테크노뮤직을 활용하면서, 마치 아이돌 그룹과 같은 춤과 제스처를 선보이며 이미 2017년에 BBC를 통해 알려졌다. 최근 브라질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한 거리두기, 집에 머물기 캠페인에 그들의 사진을 가져다 쓰면서 브라질에서 사용하는 포루투갈어로 옥외광고를 만들었는데, 영어로 번역하면 처음의 저런 문장이 된다고 한다. 그 영어 번역이 바로 첫머리의 문장이다. 사진에 나온 인물들을 감안하면 이렇게 의역이 가능하다. “집안에 박혀 있어. 안 그러면 즉사야.”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말이나 행동 등을 재가공해 올린 이미지나 영상’을 ‘밈(meme)’이라고 하는데, 가나 친구들 공연과 이들이 나온 광고의 영어 번역 문구를 사용한 밈들이 속출했다. 티셔츠를 비롯한 관련 상품들도 줄이어 나왔다. 한국에서는 이들에게 ‘관짝소년단’이란 애칭까지 붙여줬다. X세대의 막내이자 밀레니얼 초입의 몇몇 인기 웹툰 작가들은 자신들을 ‘관짝중년단’이라고 하면서 게임 하다가 갑자기 관짝소년단의 BGM에 맞춰 철제의자를 관 대신 어깨에 얹고 춤을 추는 동영상을 선보였다. 굳이 다른 이들에게 보이려고 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이 새로운 소재를 자신들에 맞게 해석해 재미있게 노는 영상이었다.

가수 비(정지훈)의 ‘1일1깡’ 돌풍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비의 ‘깡’이라는 노래가 처음 발표된 게 관짝소년단이 BBC 방송을 탄 시기와 같은 2017년이었다. 유치한 가사에 랩인지 블루스인지 음악 성격도 불분명하고 안무는 과하다며 거의 조롱 일변도의 반응에 잊혔던 이 노래가 언제 누구에 의해 이렇게 온·오프라인을 모두 달구게 됐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오랫동안 가지고 놀지 않던 장난감을 우연히 발견해 새로운 놀이거리를 개발해 노는 듯한 판을 만든 건 MZ세대다. 장면 장면을 흉내 내는 영상을 만들거나, 댓글을 달고, 유머의 소재로 삼으면서, 하루에 한 번은 혹은 하루에 세 번은 ‘깡’ 뮤직비디오를 보거나 행동을 실행해야 한다는 ‘1일1깡’이나 ‘1일3깡’의 조어 능력까지 보여줬다.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면 갑자기 현재에 소환돼 나와서 열풍을 일으킨 연예인이나 콘텐츠들이 꽤 많다. ‘의리’를 외쳐댄 김보성, 영화 ‘타짜’의 ‘묻고 더블로 가’ 등등의 대사들로 광고판을 누빈 김응수, 2006년 드라마 ‘야인시대’의 장면을 되살린 ‘사딸라’의 김영철, 너무 앞서간 감성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는데 이제 제대로 시대에 맞췄다는 가수 양준일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공중파 방송이나 대중 미디어가 보통 연예인 스타 탄생의 통로나 무대가 됐다. 이제 MZ세대는 자신들의 스타들을 만들어낸다. 엄밀히 말하면 발굴해낸다. 발굴하고 키우는 과정 자체가 놀이가 된다. 더 많은 사람이 친근하게 느끼면서 다가가 응용하고 가공하며 놀기 위해서는 너무 낯선 인물이나 장면보다는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인물로 연상 작용을 일으킬 고리가 있는 게 좋다. 그래서 오래돼 기억이 가물가물한 영화나 드라마,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져버린 노래나 뮤직비디오 등이 소환되는 것이다.

기존에 어느 정도 알려진 인물이나 콘텐츠가 아닌데, 사람들이 놀 수 있게 하는 재료는 일상생활 공간에서 가져올 수 있다. 지난해 어느 페이스북 페이지에 “더러운 자취방을 보여주세요. 치킨 기프티콘을 드립니다”라는 게시가 떴다. 이는 곧 ‘더러운 자취방 선발대회’라는 이름을 얻었고, 7만 개 이상의 댓글과 ‘좋아요’가 달렸고 상상을 초월하게 지저분한 자취방 사진들이 올라왔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더러운 자기 방을 보이고, 그걸로 상을 받고 좋아한다는 악성 댓글에 주최자가 글을 올렸다. ‘당선자들은 어질러진 자신의 방을 보며 여러분이 웃고 놀라고 즐거워할 것을 알기 때문에 그에 수반되는 수치스러움을 참고 사진을 올리는 것입니다. 청결함은 상대적이니 당신의 방이 더 깨끗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욕해서는 안 됩니다.’ 콘텐츠는 상대적이고 그를 통하여 느끼는 재미에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는, 어디서건 어떤 것이든 가지고 판을 벌이고 놀 수 있다는 MZ세대의 ‘판플레이’ 정신을 잘 나타낸 문장이다. 치킨 기프티콘을 받게 된 한 당선자는 치킨을 먹기 좋게 깨끗이 청소한 자기 방의 사진을 선보이며, 반전의 재미까지 선사했다고 박수를 받았다.

댓글을 읽고, 스스로 달기도 하면서 댓글을 콘텐츠로 만드는 ‘댓글리케이션’ 트렌드에서 말했듯 참여 자체가 놀이가 되고 콘텐츠가 된다. 군대에서는 칭찬에 인색하다고 한다. 오죽하면 ‘프로실망러’란 말이 나왔겠는가. 사실은 한국인들이 대체로 그러하다. 고마움과 칭찬을 표현하는 데 어색해한다. 그래서 아예 누군가 던진 일상의 한마디에 모든 끝말을 ‘칭찬해’로 끝내야 하는 오픈채팅 ‘칭찬방’이 생겼다.

이를테면 ‘우산 잃어버렸어’라는 말에 ‘사람 안 잃어버렸으니 칭찬해’라고 하는 식이다. 관공서에서 게시판에 칭찬 코너를 따로 만든다든지, 칭찬릴레이 같은 행사를 했으나 딱히 큰 성과를 이룬 곳이 드물다. 모두 상명하복식의 캠페인 행태를 벗어나지 못해서 그렇다. 칭찬방처럼 놀이 형태로 만들어 그 자체로 재미있고 웃음을 나누며 함께 즐기며 참여하게 해야 한다.

MZ세대는 콘텐츠를 단순하게 소비만 하지 않고, 불쏘시개를 찾아서 직접 판을 만들어 뛰어든다. 예전에는 좋아하던 일도 멍석 깔아주면 안 했는데, 이제는 직접 멍석을 짜서 깔고 그 위에서 뛰어논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놀 판이 있으면 다른 이들의 참여까지 자극하면서 판을 키운다. 그렇게 키운 한국적인 놀이판, 판플레이가 많다. 팬들이 나서서 아이돌 그룹 멤버의 생일이나 데뷔기념일 등을 챙겨서 광고하고 포스트잇을 그 광고물에 붙이며 축하하는 아이돌 덕질 놀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싱어롱을 넘어서 ‘알라딘’의 댄스어롱 관람, 친구들과 영화 ‘기생충’의 포스터 대형으로 사진 찍기가 그런 예다.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의 ‘빠던(배트 던지기)’도, 야구 원로들은 야구 종주국이라고 하는 미국에서는 배트를 던지는 ‘배트 플립’이 거의 금기시된다며 막았다. 그러나 젊은 MZ세대 선수들이 간단하게 개성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즐기는 놀이로 정의하며 즐겼고, 미국에서 거꾸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단순하게, 재미있게’, 더 많은 사람이 아주 간단하게 참여하며 웃고 즐기게 해야 한다. 딱딱하게 이루어진 조직 운영과 교육, 훈련의 많은 부분에서 판을 열고 놀게 하면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세세하게 모든 것을 규정하려 하지 말고, 알아서 할 수 있는 여백을 조금씩 만들어보라. 특히 MZ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곳에서는 그런 판플레이가 필수다.   <박재항 대학내일 20대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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