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MZ세대를 말하다

‘인플루언서’ 당신은 누구시길래

입력 2020. 05. 19   17:12
업데이트 2020. 05. 1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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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팔로인: Follow(따르다)+人(사람)


‘영향’ 뜻하는 영어 단어 influence에
사람 뜻하는 ‘-er’ 붙여서 인플루언서
SNS·동영상 서비스서 막대한 영향력
‘스타 모시자’ 기업·방송사 앞다퉈 협업 

 
지역 동장 추천 맛집 책자 낸 부산시
아날로그적으로 젊은층 관심 이끈 사례 

 
바람이 꽤 불기는 했지만, 기온이 영상 20도를 웃돌며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진수를 보여주던 지난 13일 서울 부암동의 한옥 레스토랑 뜰에서는 사진 촬영이 한창이었다.

“네, 좋아요”, “지금 그대로”라고 연신 모델에게 이야기하며 셔터를 누르는 이는 상당히 프로페셔널해 보이는데, 모델의 포즈나 반응은 살짝 어색한 티가 묻어났다.

실제로 촬영자는 꽤 알려진 유명 사진작가였고, 사진 찍히는 이는 건축 부문 디자이너였다. 한 화장품 회사에서 10대 후반의 대학 신입생을 포함해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100인의 여성들이 회사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함께 화장품을 추천하는 글을 올리는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를 위한 촬영이었다. 소비자들은 전문가나 프로 모델이 아닌 자신들과 같은 소비자로서 제품과 사용법을 추천하는 이들에게 친근감과 함께 신뢰를 느끼기에 벌인 캠페인이다.

큰 축구대회가 진행될 때마다 방송사들은 중계방송 전쟁을 벌인다. 그런데 2년 전 2018 러시아 월드컵 축구 중계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해설자는 국가대표 출신이 아니었다. 동영상 플랫폼인 아프리카TV에서 자기 맘대로 하는 축구 중계방송을 진행하던 BJ가 MBC 디지털의 해설위원으로 기용됐다.

여세를 몰아서 공중파의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국가대표 축구 경기의 현장중계 해설위원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축구 지식 등의 기본 자질과 성희롱 발언이 문제가 되면서 축구 중계는 뜸해지고 게임으로 소재가 옮겨 가긴 했다. 그래도 시청자들이 방송국의 권위보다 자신들이 잘 알고 편안한 아마추어 해설을 택했고, 그것을 방송국에서 받아들였다는 데서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기존에 이미 인정받고 있는 기관의 후광에 빠지지 않고,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을 선택해 정보와 서비스를 얻는 MZ세대의 새로운 기준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BJ에서 지상파 축구 해설위원으로까지 진출했던 이가 논란을 일으키며 물러나자, 동영상 플랫폼에서 인기를 얻은 이들 다수에 대한 비난과 폄하가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나왔다. 전문성도 없으면서 자극적인 소재와 표현으로 어린 세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사실 동영상 플랫폼의 스타들을 TV에서 보는 게 이제 이상하지 않다. 아예 그런 사람들만 집중적으로 내세우는 프로그램까지 나온 지 오래다. 아프리카TV BJ, 유튜버 등에서 ‘1인 크리에이터’를 거쳐서 이제 ‘인플루언서’라고 그들을 부른다. MZ세대에 대한 이들의 영향력과 그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한 이들에 대한 MZ세대의 평가는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올해 1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10대 청소년, 곧 Z세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청소년들이 가장 신뢰하는 직업군에서 ‘1인 크리에이터’, 곧 동영상 인플루언서로 볼 수 있는 이들이 4위에 올랐다. 이들보다 앞선 직업군은 교육자, 법조인, 언론인이란 전통적 지도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청소년들이 흥미가 있거나 관심 있는 소재를 검색할 때 이용하는 경로로 포털이나 검색엔진이 33.6%를 차지했는데, 1인 크리에이터가 만들어 올리는 동영상을 내보내는 동영상 플랫폼이 37.3%였다. 그만큼 MZ세대는 기존의 검색체계나 기관보다 특정인의 콘텐츠, 그중에서도 동영상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다.

미디어 시장과 사용 행태를 분석한 DMC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내 SNS 이용자 10명 중 7명이 인플루언서라고 하는 이들의 계정을 구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내일에서 2019년에 조사한 결과를 보면 MZ세대인 15~34세의 구독 비율은 90% 이상으로 나타났다. 2017년 51.3%, 2018년 70.6%에서 수직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Z세대의 경우는 95% 이상이다. 문자 그대로 ‘영향(influence)을 미치는 사람(-er)’이라는 뜻의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영향력이 광고모델로 뛰는 유명 연예인 상당수보다 크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니 방송사에서도 인플루언서들을 좀 더 많이 자신들의 프로그램에 출연시키려 하고, 기업들도 그들과의 협력 마케팅을 열심히 기획할 수밖에 없다.

인플루언서를 장래희망으로 꼽는 MZ세대도 당연히 다수로 나타난다. 2019년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조사한 초등학생의 희망 직업에서 유튜버가 운동선수와 교사에 이어 3위에 올랐다. 4위인 의사를 앞질렀다고 해서 크게 화제가 됐다. 그런데 다른 조사를 보면 청소년층에서는 1위로 나타난 것도 있다. 단순히 바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직접 영상을 만들어 동영상 플랫폼에 올린 경험이 있는 MZ세대도 2018년 대학내일20대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4명 중 1명(26.4%)으로 나타났다. ‘유튜버가 전문직업이 될 수 있다’라는 문항에도 70% 이상이 긍정 반응을 보였다. 그럼 MZ세대는 특정인의 동영상에만 반응하는 것일까? 그들이 팔로어하는 건 동영상 기반의 인플루언서뿐일까.

가수 윤종신은 2010년부터 매달 꾸준히 ‘월간 윤종신’이란 이름으로 곡을 발표하고 있다. 이제는 윤종신 이외에도 마마무, 유세윤, 빅타이거 등의 가수들이 ‘월간’이나 ‘월세’ 등의 이름을 붙이며 정기적으로 노래를 내놓고 있다. ‘일간 이슬아’는 한 달 구독료 1만 원을 내면 20편의 글을 메일로 보내준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하여 2018년 봄에 어떤 플랫폼도 이용하지 않고 직접 대중에게 호소하는 형식으로 시작한 서비스는 원래의 목적을 가뿐하게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단행본까지 이어지며 글쓴이를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여행 상품도 들르는 곳 위주의 패키지에서 여행 작가를 따라가는, 그야말로 ‘팔로인(follow+人)’ 하는 상품들이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쇼핑에서도 인스타그램이나 소규모 쇼핑몰로 자신만의 성격과 특성을 지닌 패션을 선보이며 단단한 팔로어 팬들을 지닌, 유명인에 준한다고 해서 ‘준셀럽’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기존 대형 업체에 고가로 인수되면서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며 화제가 된 소수도 있지만, 대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고 함께 즐긴다는 순수함과 진정성이 동기이자 견인차가 된다고 한다. 이런 MZ세대가 팔로어하거나 영향을 받는 인사들이 같은 연령대만은 아니다.

『동장님의 단골집』이라는 책을 2017년 부산시가 냈다. 흔히 지역 토박이들이 가는 음식점과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 다르다고 한다. 낯선 동네로 여행 가면 일부러 약국이나 가게에 들러 주인들이 가는 음식점 추천을 받는 이들도 있다. 이 책은 동네를 제일 잘 아는 이들이 지역 동장이라는 데 착안해, 부산 지역의 동장으로부터 추천받은 음식점들을 간단한 지역 안내를 곁들여 소개했다. 한 중앙 일간지에서는 2014~2018년 기초의회 관련 공무원들이 경비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조사했다. 특정 음식점에서 돈을 너무 많이 썼다고 의문을 제기한 지역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지역을 가장 잘 아는 공무원들이 그렇게 자주 갔으면 분명히 맛있는 식당일 것이라는 평판이 함께 나오며, 거론된 음식점들이 맛집으로 등극했다. 경험에 기반한 노하우와 지식을 가진 윗세대들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MZ세대의 ‘팔로인’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디지털 도구들도 함께 이용한다면 더욱 열렬한 팔로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박재항 대학내일 20대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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