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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인간안보 개념의 변화와 국제기구의 역할

기사입력 2020. 05. 19   11:01 최종수정 2020. 05. 19   14:08

동북아 안보정세 분석(한국국방연구원 발행)

5월 중순경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계적 확산 추적 그래픽. www.npr.org

이수훈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alexhoonlee@kida.re.kr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는 국제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정치이념 혹은 경제구조 변화의 정도를 넘어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사회구조를 통째로 바꿔놓는 수준이다. 일부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를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본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의 질병은 인간안보(human security), 그중 보건안보(health security)의 개념으로 해석되어왔다.

그동안 인간안보는 전통적 안보와는 달리 개인적 차원의 성격이 강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본 고는 이를 증명하고 이러한 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코로나19, 인간안보에 대한 위협

전 세계적으로 300만여 명의 코로나19 확진환자 가운데 미국 본토에서 집계된 확진환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 확진환자의 1/3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서 발병했다. 그 뒤를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영국, 프랑스, 터키가 잇고 있으며 확진환자수를 기준으로 상위 7개 국가 중 스페인과 터키를 제외한 5개국이 주요 선진국 모임(G7)에 속해있다. 세계적으로 전통적 안보(traditional security)에 있어 최고 우위를 점하고 있는 위 국가들이 오히려 코로나19 사태에서 비전통적 안보의 취약성을 나타내고 있다. 국제정치에서 ‘안보(security)’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사태는 안보의 또 다른 한 축인 비전통적 안보, 그 중 인간안보의 중요성을 소환했다.

인간안보란 무엇인가? 인간안보는 기존 안보의 개념을 확대하여 국가가 보장해줄 수 없는 국민(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안보를 일컫는다. 유엔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 UNDP)에서 1994년 발행한 인간개발보고서(Human Development Report)에 명시된 인간안보의 특징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인간안보는 첫째, 세계적인 문제(universal concern)이며, 둘째, 사람중심(people-centered)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셋째 인간안보를 이루는 요소들은 상호의존적(interdependent)이며, 넷째, 조기예방(early prevention)을 통해 보장이 수월해질 수 있다.


위와 같은 특징을 나타내는 인간안보는 세부적으로 식량, 보건, 환경, 개인, 사회, 정치안보로 분류된다. 인간개발보고서에서는 인간안보에 대한 위협이 더 이이에 반해, 인간안보에는 군사 또는 비군사적인 위협 요인이 존재하며, 그 피해자는 사회, 그룹, 개인이 해당 된다. 패리스는 인간안보의 한 예로 사회, 그룹, 개인의 생존에 대한 환경과 경제적 위협을 제시한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안보 중에서 특히 보건안보에 대한 위협이 개인, 그룹, 사회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초국가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인간안보와 보건안보의 변화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유엔개발계획에서 정의한 인간안보의 개념과 위협의 수준을 넘어섰다. 유엔개발계획은 인간안보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결핍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want)’와 ‘공포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를 구분한다. 전쟁으로 인해 목숨이 위험한 상황 또는 기아에 허덕이는 상황에서의 인간은 각기 다른 형식의 자유를 갈망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안보의 목적은 공포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비전통적 안보, 즉 인간안보의 목적은 결핍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가 개인, 그룹, 사회를 넘어 국가 나아가 세계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이다.

말라리아, 에이즈, 빈곤, 테러리즘과 같은 인간안보에 대한 위협은 그동안 전통적 안보 차원에서의 위협보다 비교적 덜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 이유는 아마 전쟁과 같은 안보 차원의 위협과는 달리 인간안보에 대한 위협은 적절한 예방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제어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전통적 안보의 위협요인이 인력(人力)에 기인하는 반면 인간 안보의 위협요인은 자연 또는 사회적 여건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그 위협이 전통적 안보의 위협에 비해 비교적 덜 도발적(provocative)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사태는 인간안보에 대한 위협이 전통적 안보에 대한 위협보다 인류에 훨씬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미 수백만 명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그중 약 21만 명이 사망했다. 선진국들도 속수무책이었다. 코로나19 치료 또는 예방을 위해 필요한 의료시설, 진단키트, 백신, 치료제 등이 부족한 가운데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 봉쇄가 이뤄지고 일부 국가에서는 지역 간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인류는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의 차원을 넘어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 인간안보 개념에서의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보건안보에서의 변화도 가져왔다. 보건안보는 인간안보의 다른 영역인 식량, 보건, 환경, 개인, 사회, 정치와는 달리 선진국(Global North)과 제3세계(Global South or the Third World) 간의 양극화 현상이 비교적 덜 나타난다. 즉, 질병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impacts both rich and poor),” 그 “경계가 없다(no boundaries)”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는 기근으로 인해 사람들이 굶어 죽고, 선진국에서는 영양 과다섭취와 운동부족으로 인해 비만과 같은 질병이 보건안보의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아가 개발도상국 또는 제3세계에서 발생하는 에이즈와 같은 질병은 이미 서반구에서도 오래전부터 보건안보의 위협요인이다. 코로나19는 급속도로 진행된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선진국과 제3세계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오히려 선진국에서의 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보건안보는 인간안보이지만 이제는 다른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 인간안보는 국가가 아닌 개인 중심의 안보이다. 그동안 국가는 국가안보를 뒷전에 두고 인간안보 증진에 매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보건안보가 무너지면 전통적 안보가 위기에 처했을 때만큼 세계가 위험한 상황에 놓인다는 점이 드러났다.


인류는 앞으로 또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를 겪는다. 그때 지금과 같은 사태의 반복을 겪지 않으려면 보건안보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vaccine)이나 치료제를 개발할 수는 없다. 주지했다시피 보건안보에 대한 위협을 줄이기 위해서는 조기예방밖에 답이 없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조기예방 필요성에 대한 규범(norm)이 전 세계적으로 형성되어야 하며, 국가와 국제기구 차원의 비상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보건안보, 국가 그리고 국제기구의 역할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보건안보에 대한 국가와 국제기구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먼저 국가차원에서는 보건안보를 국가안보에 준하는 사안으로 다뤄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적용되어야 한다. 


1997년 중국에서 조류독감(avian influenza: H5N1)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조차 보건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의 준비가 충분치 않았다. 국토의 양끝이 바다로 둘러싸인 미국의 안보는 외부 침략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조류독감 이후 1998년 발행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에서는 보건(health)을 국가안보이슈(National Security Issue)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 NSS에서는 세계보건안보를 10대 국가안보이슈로 격상시켰다.

레브런과 마호니-노리스(Reverun and Kathleen A. Mahoney-Norris)는 『국경 없는 세계의 인간안보』에서 보건안보의 가장 큰 위협이자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팬데믹(pandemic)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질병은 개발을 늦춘다. 둘째, 팬데믹은 전쟁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낳는다. 셋째, 팬데믹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정리하자면, 팬데믹은 한번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조기예방만이 이를 막거나 늦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미국은 1998년 ‘보건’을 국가안보이슈로 상정했다는 점에서 보건안보에 관해 선진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리더로서 당시 이 개념을 세계적으로 보편화시키고 위기 프로토콜(emergency protocol)을 준비했다면 현재의 미국 그리고 세계는 코로나19에 앞에서 이렇게 맥없이 쓰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은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와 협력 하에 각자 실정에 맞는 보건안보 체제를 수립해야한다.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각국의 보건에 대한 총괄감시(global surveillance)와 대응을 위한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목표 하에 1948년 유엔 산하기구로 출범했다. 에이즈, 말라리아, 에볼라 등의 질병 퇴치에 앞장섰던 WHO는 그동안 서구 중심적으로 운영이 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최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여행금지 조치에 대해 WHO가 이견을 나타냄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WHO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보건 국제기구로서 WHO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세계 최강대국과의 불협화음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장기화시킬 수 있다.

WHO의 권위와 역할은 국가들을 감시하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참여국의 규정 불이행을 관리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최근 미국과 WHO의 불협화음은 그 어느 조직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세계보건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70년 이상 해온 WHO가 미·중경쟁에 휩쓸리게 되는 현상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국가들이 보건안보체제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수립하고, WHO의 보건 거버넌스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시 발생할지도 모를 제2의 코로나19 사태 예방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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