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광고로 보는 사회문화

감사·사랑… 식상한 문구보다 브랜드 연상되는 위트가 더 뭉클

입력 2020. 05. 04   15:20
업데이트 2020. 05. 0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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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어버이날 광고


우리나라 광고는 ‘부모님 은혜에 보답’ 감성에 호소
서양은 차별화된 카피·슬로건으로 제품 이미지 각인
기념일 의미를 브랜드 특성과 연관짓는 노력 필요

 
5월 8일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자식들 마음도 조금씩 분주해진다. 부모님의 애간장을 태우던 자식들도 이날만큼은 순한 양이 되려고 노력하리라. 나머지 364일은 ‘자식의 날’이었으니까. 어버이날의 기념 의식은 동서양이 똑같지만, 우리와 달리 서양에서는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이 따로 있고, 광고 스타일도 다르다. 외국의 어버이날 광고에서 그 차이를 확인해보자.

터키 마르마라공원의 광고 ‘자부심’ 편(2016)
터키 마르마라공원의 광고 ‘자부심’ 편(2016)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마르마라 공원(Marmara Park)의 신문광고 ‘자부심’ 편(2016)에서는 아빠와 아들의 문자 소통을 광고 소재로 활용했다.

“아들, 어때? 아빠야”라고 하니까 아들이 이렇게 답신한다. “좋아. 아빠라고 말 안 해도 돼. 아빠 번호 아니까.” “오케이. 아빠야.”

아빠 입장에서 이보다 더 신나는 문자가 있을까? 어쩌다 문자가 와서 반가운 마음에 열어보면 “아빠, 엄마 왜 연락 안 돼요?”라는 문자를 가장 많이 받는 한국 아빠들로서는 부러워할 만한 상황이다. 광고는 “아버지임을 늘 자랑스러워하는 모든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의 날”이라는 카피로 마무리했다.

터키 마르마라공원의 광고 ‘사랑’ 편(2016)
터키 마르마라공원의 광고 ‘사랑’ 편(2016)


이어지는 ‘사랑’ 편(2016)에서도 똑같은 형식으로 공감을 유발했다. 아들이 아빠에게 먼저 문자를 보내온 상황이다. “자기야, 안녕?” 문자를 본 아빠는 아들에게 이렇게 답신한다. “좋아, 내 사랑. 넌?” 아들은 애인에게 보낼 문자를 아빠한테 잘못 보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아빠, 미안해요. 잘못 썼네요.” “상관없어. 난 바로 썼어.” 아빠의 답신이 일품이다. 마찬가지 “어떤 경우에도 사랑을 보여주는 모든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의 날”이라는 카피로 광고를 마무리했다. 이 광고를 본 자식들이 아빠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인도 메이크마이트립의 광고 ‘30년 후’ 편(2017)
인도 메이크마이트립의 광고 ‘30년 후’ 편(2017)


인도의 여행 사이트 메이크마이트립(MakeMyTrip.com)의 온라인 광고 ‘30년 후’ 편(2017)에서는 어머니의 날 로고를 광고의 한가운데에 크게 배치하고 어머니와 여행했던 어릴 적 추억을 소환했다. “엄마는 걷기 무서워할 때 제 손을 잡아주셨죠. 30년이 지나 비행기 타기를 머뭇거리는 엄마 손을 제가 잡아드렸죠. 축하해요, 내 첫사랑(Celebrating my first love).” 나이 든 사람이든, 어린 사람이든 모두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기쁨과 사랑의 원천이다. 이 광고에서는 엄마의 날을 여행의 경험으로 연결하면서 각자의 사연을 추억하도록 했다.

벨기에 칼스버그 맥주의 광고 ‘집에서 한 잔’ 편(2020)
벨기에 칼스버그 맥주의 광고 ‘집에서 한 잔’ 편(2020)


벨기에 브뤼셀의 신문에 게재된 칼스버그 맥주 광고 ‘집에서 한 잔’ 편(2020)에서는 아버지의 날에 칼스버그 한잔하라고 권하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칼스버그 맥주의 슬로건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맥주(Probably the best beer in the world)”다. 광고에서는 그 유명한 슬로건을 슬쩍 비틀어 아버지날에 알맞게 바꿨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 눈여겨볼 대목은 ‘아마도’를 뺐다는 점이다. 집에서 자녀들과 맥주를 마시는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 순간 집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맥줏집이 되지 않겠는가. 이 광고에서는 아빠의 날에도 맥주 브랜드를 연상하라고 권고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신문에 실린 듀렉스(Durex) 콘돔 광고 ‘경쟁사 제품’ 편(2001)에서는 아버지의 날을 맞이해 자녀가 잉태된 그날을 생각하도록 했다.

“경쟁사 제품을 쓰시는 모든 분께: 행복한 아버지의 날(To all those who use our competitors’ products: Happy Father’s Day)” 오로지 카피만 있는 광고인데 헤드라인을 지면의 한가운데에 배치했다. 다른 회사의 콘돔을 쓰는 사람들의 아버지날을 축하한다는 말인데, 의역하면 그들의 아버지가 듀렉스 콘돔을 썼더라면 세상에 태어날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경쟁사 제품을 쓰는 고객에게 전하는 메시지 같지만, 듀렉스 콘돔의 우월성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신문에 실린 바이엘 아스피린(Bayer Aspirina)의 광고 ‘엄마의 두통’ 편(1998)에서도 엄마의 두통과 출생의 비밀을 흥미진진하게 연결했다. 어머니의 날 아침에 이 광고를 본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고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날 당신 엄마가 두통을 앓았다면 당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If your mother had a headache that day, you wouldn’t exist).” 이런 헤드라인 밑에 아스피린 한 알을 배치하고, 엄마의 날을 축하한다는 카피를 조그맣게 덧붙였다. 아빠와 사랑을 나누던 그날, 엄마가 두통을 앓았다면 당연히 아스피린을 먹었을 테고 임신한 걸 나중에 알았더라도 그날 약 먹던 순간이 떠오르면 아이를 낳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대단한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어버이날 광고 스타일에서도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가 크다. 우리나라 광고에서는 브랜드의 특성을 어버이날에 연결하지 않고 “감사합니다” 또는 “사랑합니다” 같은 감성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데 치중한다. 브랜드와의 상관성(brand relevance)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상투적으로 감사 표현으로만 일관하니 안타까울 때도 많다. 외국 광고에서는 브랜드와의 상관성을 고려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앞으로 우리의 어버이날 광고도 좀 달라졌으면 싶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신 아버지와 어머니. 국군 장병 여러분! 터키 마르마라 공원의 광고처럼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께 먼저 문자를 보내세요. 지금 바로!

<김병희 서원대 교수/  전 한국광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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